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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행복(VIII) (마 05:1-11, 롬 0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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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팔복에 관한 설교 가운데서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두 번 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태 5:3) 5:3의 하느님 나라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요 5:10의 하느님 나라는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사람들의 나라이다. 하느님 나라는 내면적으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외면적으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나라이다.

 사람은 마음을 비우는 겸비와 사회적으로는 의를 위한 헌신을 갖출 때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마음이 겸허한 사람들은 사회정의의 구현에 소극적이요, 사회정의의 실천가들은 마음을 비울 줄 모르게 되는 폐단이 있 다. 그러나 진정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겸손과 정의감 을 겸비하여야 한다.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겪는 종교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예수를 사랑하고 흠모하는 것은 그의 기사이적 때문이 아니다. 그의 재치있는 대화의 기술이나 영감에 넘친 설교 때문이 아니다. 그의 죽음 때문이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해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 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로마 5:6)1940년대의 한국교 회는 수난의 교회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신사참배 강요정책 때문에 수 많은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의 정절을 빼앗겼었다. 어떤 이들은 신앙 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혹은 투옥되고, 혹은 죽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삼 척지역의 한 감리교도 최인규 권사도 희생되었다. 경찰당국은 그에게 온 갖 회유와 고문을 가했다. 그래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경찰서장은 마 지막 수단으로 최 권사에게 똥지게를 지우고 가슴팍에는 나는 신사참배 하지않는 최인규이다라는 팻말을 붙여 이 거리, 저 거리로 끌고 다녔다.

신사참배 반대자들에 대한 경고요 최인규 권사에 대한 형벌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 권사의 친구 가운데 차국성이라는 전도사가 경 찰서장을 찾아갔다. 최인규는 원래 정신병자였으니 용서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 이에 경찰서장은 차국성 전도사에게 예수를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으시오. 최인규가 미친 것이 아니라 미친 것은 바로 당신이요라고 말했 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최인규 권사의 고난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고난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한 고난이기도 했다. 일제 통치 아래 신사참배 강요 에 나약하게 굴복했던 한국감리교회로서는 최인규 권사 같은 순교자들에게 찬사와 경의를 표하며 그 유적을 찾아내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고난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는 그런 사람 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이 혼미하지만 하느님의 나라에서 는 그것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 세상에서는 쉬운 일을 찾아서, 편한 길을 찾아서 사는 사람이 잘 살고 출세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의를 위해 고난 받은 사람들이 잘 살고 주인이 된다. 하느님 나라가 영원한 생명의 세계 이든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된 지상천국이든 그곳은 의를 위해 고난받은 사람들이 사는 세계이다.

 (2) 의를 위해 핍박받은 사람이란 자기소유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사 마리아 사람(누가 10장)이나 삭개오(누가 19장)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화제인물이 되고 사표(사표)가 되는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은 시간과 재산을 서 슴치 않고 제공했다. 그것은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었다.

 최근 몇사람의 유지들에 의해 고김정준 목사 10주기 기념논집이 간 행되었다. 그 책 속에 게재된 한 글은 나에게 새로운 감동을 일으켰다.

대신대학장으로 계시는 김영실 선생의 글이다. 김정준, 그는 나에게 누구 인가 그는 나누어 주던 사람이다. 김 학장께서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의 이야기이다. 학비를 조달할 수 없어 공부를 중단하게 된 김영실 후배를 딱하게 여긴 김정준 선배는 자신에게 주어진 장학금을 그 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더 힘든 일을 하며 공부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김정준 목사님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분의 글을 즐겨 읽고 그분과 함께 기독교서회 편집위원으로 오래 일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분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해 늘 궁금하게 생각하던 차에 이 글을 접하 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분이 작사한 찬송가 53장을 찾아 불러 보았 다.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느님 땅에 충만한 존귀하신 하느님

주 앞에 나올 때 우리 맘이 기쁘고 그 말씀 힘되어 희망 솟아 오른다

주의 뜻 받들어 참되게 살아가며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며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바라는 것은 짐승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마태 9:13) 여리고로 가는 길에 서 벌어진 살인미수사건의 목격자 가운데는 종교인도 있었고 상류계층의 인사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현장에서 피해자를 돌보아 준 사람은 제사 장들과 레위사람들이 가장 천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예수는 인 류의 구원을 기득권자들, 상류계층에서 찾지 않았다.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약한 사람들, 천한 사람들, 없는 사람들에게서 찾았다. 사마리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의 견해이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 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추구하는 이상 사회, 하느님의 뜻이 실현된 하느님나라는 부의 축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의 분배에 의해 이루어진 다. 부의 독점이 있는 곳엔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마리아 사람이 있는 그때 그곳에서, 삭개오가 있는 그때 그 자리에서, 또다른 김정 준 목사가 있는 그때 그 현장에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

 (3)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란 자기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 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것이 곧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많으나 하느님께 자기자신을 바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여기에 오늘 의 교회가 머리 깍인 삼손 같이 된 까닭이 있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복의 사표이다. 모두가 아브라함 만큼의 믿음, 아 브라함 만한 복을 누리며 가지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까지 그가 지불한 피와 땀이 얼마인가를 헤아리지 못한다.

네가 하나 밖에 없는 네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너에게 한없는 복을 주어 네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알 처럼 많게 하리라.

네 후손들이 복을 받으리라(창세기 22:15-)최효섭 목사의 설교집 너무나 놀라운 일에는 참 신자에 대한 글이 있다. 나의 일 보다 하 느님을 우선하는 사람, 남은 것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바치고 그 다음 생활하는 사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 최 목 사님은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긴 사람이다. 그가 생과 사의 경계선상에서 남긴 글이라고 생각하면 그 진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말과는 달리 실제 에 있어 사람들은 자기 일보다 하느님 일을 앞세우지 못한다. 먼저 생활하 고 남은 것을 하느님께 바치고 있다. 주는 일 보다 받는 것에 더 만족하고 있다.

 미국에는 여러가지 백화점이 있다. 그 가운데 중산층들에게 널리 알려 진 백화점은 J.C.Penny이다. 미국전역에 자그만치 1,660개 점포망을 가진 대규모 백화점이다. 이 백화점 주인 J.C.Penny는 19세기말에서부터 95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이 백화점을 운영하는데 기본원칙을 고수하였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3)

사람들은 먼저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힘쓴다. 경제부흥이 있어야 사회정의도 구현된다고 주장한다.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어야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요청한다. 그리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 된다는 말씀이다. 백화점왕 페니(J.C.Penny)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성공했다. 자기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는 그런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겸손하고 욕심이 없다. 누구하고도 교제하며 누 구에게나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좋아 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사람들에게서 존경받거나 환영받지 못하다. 여기에 인간사회의 갈등이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 람, 누가복음에서는 생활이 가난한 사람을 다루고 있다. 그들이 받는 하 느님의 복은 하느님 나라를 소유한다는 사실이다. 이 일을 올바로 해결하고 연결시켜 주는 것은 의를 사모하며 의를 위해 고난받는 길 뿐이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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