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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덤을 넘어서 (눅 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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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죽음의 고개를 넘어서면 그 사이에 깊은 구렁이 있어 서로 오고 갈 수가 없는 영생의 길과 영벌의 길 두 길이 있습니다(26).

I. 무덤 저 편의 세계는 무덤 이편의 세계에서 판결이 난다.
먼저 당시의 바리새인을 비유하는 부자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가 부정한 재물을 모았다거나, 잔인했다거나, 부도덕한 사람이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단지 이기적이고 세상적이며 자기를 믿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쾌락과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자기 집 대문 밖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거지 나사로는 어떻습니까 남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어먹고, 몸의 상처를 개들이 핥는 육신적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오직 무덤 너머의 천국을 그리워하며, 하나님만 믿고 산 이였습니다. 이들이 죽었을 때 이들의 상황은 어떻게 됩니까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세상 부귀영화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의 가치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II. 무덤 너머에서 되어질 일
부자는 죽은 후 세가지를 알고 하게 됩니다. 첫째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됩니다(23).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둘째 헛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24). 그러나 하나님께 하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한 기도,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 헛된 기도였습니다. 셋째 비참을 맛보게 되었습니다.(25) 결국 부자는 기회를 놓친 자로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아야 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 영혼을 사탄에게 판 Faust처럼 현대인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 열락을 취하면서 다가오는 기간 앞에서 전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무덤 넘어 세계를 보는 영안을 뜨고 믿음과 회개의 열매를 이 세상에서 맺어야 할 것입니다.

III. 죽었다가 살아난 자의 간증이 필요한가
지옥에 간 부자는 죽은 자가 살아나서 증언을 하면 믿을 것(31)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증거(성경)를 믿지 못한 이가 사람의 증거를 믿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모세와 선지자가 있으며(29), 다른 기적이나 징표는 필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무덤 너머의 세계는 확실히 증거됩니다.

맺는말.
성경은 죽음을 이세상과 저세상의 경계로 가르칩니다. 죽음은 생명의 끝이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시작임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성도의 죽음은 영원히 약속된 삶의 출발점이므로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합니다. 잘 익은 곡식 단을 창고에 들이듯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부르시는 날 감사하면서 죽음을 받아야 합니다. 태양에 비취는 곳마다 어둠이 사라지듯, 부활이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생의 수수께끼인 무덤의 의미를 풀고, 오곡백과 만발한 추석절기에 무덤을 바라보면서 영원을 볼 수 있는 축복의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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