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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사의 현장-사마리아 문어귀 광장 (왕상 2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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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장 10절에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이란 기록을 보게 됩니다. 여기 ‘광장( 베고렌)’이란 ‘평범하고 넓은 광장’이란 뜻으로 타작마당, 혹은 넓은 공터를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이 넓은 광장은 실상 텅 빈 공간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를 주름잡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니 역사의 갈 길을 묻고 있는 자들의 모임의 광장이었습니다.
거기에는 ① 저 유명한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아합 왕과 ② 남조 유다 왕 여호사밧이 각기 엄위로운 왕복을 입고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③ 그리고 이른바 이스라엘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자처하던 400명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수장인 시드기야가 왕 앞에 운집하고 있었습니다. ④ 물론 왕을 모시는 신복들과 또 이를 구경하는 백성들이 둘러섰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자리는 적어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저들에게 역사의 갈 길을 묻고 찾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룩된 곳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옛날 이스라엘의 영토였던 ‘길르앗 라못’을 도로 찾아야 되는가, 안 찾아야 되는가 하는 중대 문제를 결판 짓는 장소였습니다.

그때는 마침 남조 유다 왕 여호사밧이 북조 왕 아합을 방문하고 있을 때였습니다(왕상 22:2). 그는 아합 왕과 사돈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아합의 딸을 취한 것입니다(왕하 8:18, 대하 21:6). 아합은 자기를 방문한 여호사밧 왕에게 ‘길르앗 라못’의 영토 문제를 의논하게 되었습니다(왕상 22:4, 대하 18:1).

“당신도 아시다시피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아람 왕 벤하닷의 조부 때 빼앗긴 바 되었습니다. 그후 아람 왕 벤하닷 때 다시 이스라엘과 싸움하여 이스라엘이 승리하였고, 그때 아람 왕 벤하닷은 저들 조부 때 빼앗은 이스라엘 땅 ‘길르앗 라못’을 반환하기로 조약을 맺은 일이 있습니다(왕상 20:34). 그로부터 3년이 지났음에도 아람 왕 벤하닷은 그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전쟁을 치르고라도 우리의 잃어버린 영토 ‘길르앗 라못’을 되찾아야 되겠습니다. 때마침 사돈 되시는 여호사밧 왕께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우리 함께 동맹하여 잃어버린 영토를 찾읍시다.”라고 제의했습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우리는 모두 한가족이 아닙니까 함께 전쟁을 해서라도 그 땅을 찾아냅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남조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이런 대사를 논(論)함에 있어서 우리 사람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어 보자고 덧붙여 제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을 택하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을 모이게 하고, 시드기야를 수장으로 하는 400여명의 선지자들을 집합시켰습니다. 아합 왕의 이러한 도모 가운데는 백성들에게 ‘영토 반환’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게 하여 민심을 집결시키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책략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아합은 거기 모인 선지자들에게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왕상 22:6)는 역사적 문제를 제의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400명 선지자 무리 중에 수장인 시드기야는 어느새 철로 뿔을 만들어 휘두르면서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고 하였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올라 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 22:11)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든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 22:12)라고 하였습니다.
시드기야와 그 무리들이 철로 뿔을 만든 것은 ‘힘과 권세’를 상징한 것입니다(삼상 2:1, 삼하 22:3, 단 7:21). 이것은 아람 왕의 ‘힘과 권세’ 앞에 아부하고 또 그의 왕권과 국력을 추켜세워 아합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자 하는 인본주의적 충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전에 그의 신하들을 통하여 각본된 것으로 여호사밧의 동맹을 얻어내고자 하는 수단도 되었습니다.
중대한 교훈은,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은 아합이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역사적 현실 문제를 다루는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Ⅱ. 왕명(하나님)이냐, 인명(사람아합)이냐

그때 함께 보좌에 앉아서 그 현장을 목격하고 400명의 선지자들의 길한 승리의 예언을 들었던 남조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아합 왕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들 외에 우리가 물어 볼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시드기야와 400명 선지자들의 여출일구(如出一口)한 기계 같은 한목소리와 행동 앞에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아합이 답하기를 「오히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왕상 22:8)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의 청원으로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그 자리에 불러오게 하였습니다(왕상 22:9).
그를 데리러 갔던 아합의 신하들은 이미 일어난 사마리아 문어귀 광장의 사실을 미가야 선지자에게 사전에 다 말하고, 너도 그 사람들처럼 길한 예언을 하여 왕을 기쁘게 하라는 사전 세뇌 공작을 하였습니다(왕상 22:13). 저들은 선지자 미가야를 인간적으로 사전에 조율을 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이때 미가야는 대답하기를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왕상 22:14)고 하였습니다.

왕 앞에 나타난 미가야 선지자는 왕으로부터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때 미가야는 몇 가지 대답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대답은 풍자적 대답이었습니다. 저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왕상 22:15)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아합의 탐욕과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빈정댄 것입니다. 그때 아합은 대노하면서 「내가 몇 번이나 너로 맹세케 하여야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으로만 내게 고하겠느냐」(왕상 22:16)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는 진실한 예언만이 참된 선지자의 생명이 되는 것을 몰랐고 또 싫어하였습니다.
두 번째 대답은, 이스라엘은 패전하여 목자 없는 양같이 주인을 잃어버리고 각각 되돌아오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2:17). 이번 전쟁에 나가면 아합 왕은 전사하고, 백성(군인)들은 흩어지고 말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 번째 대답은 왕이 거짓말하는 영을 받은 선지자들의 말을 믿고 있다고 그 앞에 서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폭로하였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아합 당신을 죽음으로 꾀어내기 위하여 거짓말하는 영을 당신 앞에 서 있는 이 선지자들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모두 거짓말하는 영을 받아 지금 당신에게 거짓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왕상 22:19-23)라고 폭로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미가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죄인 된 사람 아합의 명을 따를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사람의 명령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고 말았습니다.

Ⅲ. 왕도(王道)를 걷는 미가야를 봅니다.

참 왕이신 하나님의 명을 받은 미가야는 불가불 그 왕명을 좇아 왕도를 걸었습니다. 미가야가 걸었던 왕도는 어떤 길이었을까

1. 좁은 길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6절에 400명의 선지자가 나옵니다. 수장은 시드기야였습니다(왕상 22:11). 열왕기상 22장 8절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였습니다. 400:1의 길이었습니다. 미가야는 ① 숫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저들은 다수요, 미가야는 소수였습니다. 왕을 위시한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이 시드기야와 400명을 따랐습니다. ② 행동적 활동에서도 열세였습니다. 철뿔을 만들어 흔들면서 400명의 선지자들이 어전에서 파워(power)를 행세하였습니다. 왕과 백성들도 저들의 편이었습니다. ③ 소위 예언적 권세도 저들에 비해 미가야가 열세한 듯 하였습니다. 400명의 목소리가 여출일구(如出一口)하였습니다(왕상 22:13). 더욱이 저들의 예언(말)은 현실 감각에 맞추어졌습니다. 아합 왕을 기쁘게 해야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입신적 예언()을 곧잘 하였습니다. 이른바 ‘길한 예언’(왕상 22:6, 11, 13)을 하였습니다. 정말 능한 처세술로 살아갔습니다.
그들과 반대로 미가야는 흉한 예언자로 낙인이 찍혔습니다(왕상 22:8). 다수에 소외를 당하였습니다. 현실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광야의 당아새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좁은 길을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어찌 왕도(王道)가 좁은 길인가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왕 예수를 좇는 길은 ‘좁은 길’, ‘좁은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길과 그 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 그 문은 ‘생명의 문’이고,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마 7:13, 요 14:6, 행 4:12). 반대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과 문은 넓고 커서 가기가 편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간다고 하였습니다(마 7:13). 그럼에도 예수님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고 하였습니다.

2. 말씀 지상(至上)주의의 길이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그것은 바로 왕명입니다. 이것이 왕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록된 말씀밖에는 넘어가지 말라」(고전 4:6)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도를 걷는 사람은 말씀에서 시작하고, 말씀으로 진행하고, 말씀에서 끝맺습니다. 왕명(어명)이 있을 때는 입을 열어 말하고 행동하고, 어명(왕명)이 없을 때는 침묵하는 것입니다.

3.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① 왕에게 미움을 당하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왕상 22:8)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이 왕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러나 미가야는 보이는 왕명보다 보이지 않는 왕명 앞에 살았습니다. 보이는 왕의 미움보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② 동역자들에게 구타를 당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2장 24절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라고 하였습니다.
③ 투옥되어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셨습니다.
열왕기상 22장 27절에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4. 필경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왕상 22:38). 그의 예언대로 아합은 전쟁터에서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고, 그 피가 병거 바닥에 고이고 말았습니다(왕상 22:34-35). 미가야의 승리는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의 승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왕명에 사는 사람들은 왕도를 걷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절대 충성의 대상과 목적과 의미가 언제나 확실하고 분명하였습니다. 왕명을 따라 왕도를 걸어가는 왕의 백성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경우를 만나도 자기가 섬기는 그 왕을 높이고, 그 왕명을 따라 왕도를 걷는 왕자(王者)적 인격을 전당잡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필칭 ‘침묵은 금이다’라는 금언을 따른다는 미명하에 왕께 나타내야 할 충성의 때에 잠잠하게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실상 ‘비겁’이라고 하는 강탈자에게 그 인격이 유린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화평이나 화목이라는 미명아래 중용의 길을 택하는 중립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실상 자신의 호신책의 무기로 ‘어물어물’, ‘머뭇머뭇’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왕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왕명에 따라 걸어가는 왕도의 왕자(王者)들입니다.
역사상에 참된 교회는 결코 ‘어용 종교’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적 예언자일 수도 없었습니다. 왕명을 따라 왕도를 걸어가는 교회는 결코 그 시대에 부는 바람을 따라 바람부는 대로 돌아가는 ‘풍차’가 아니었습니다. 역사상에 왕명을 좇아 왕도를 걷는 하늘의 왕자(王者)된 그리스도인들은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온갖 류의 바람 가운데도 양손을 높이 쳐들고 하늘의 왕을 쳐다보는 거룩한 노정표(路程標)였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시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아합의 계획을 좇아 아합의 이정표를 대변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계신 왕, 하나님의 계획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역사의 한가운데 예언하고 나타내는 왕도를 따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합과 그 주구(走狗) 400명의 선지자의 말보다 미가야의 말과 걸음이 옳았다고…. 그는 왕명을 좇아 말하고(예언), 왕도를 좇아 걸어갔던 왕자(王者)적 선지자라고 말입니다. 바로 오늘 지상의 교회가 말하고(전도) 걸어가는 교회사의 길이 왕명을 좇아 왕도를 걸어간 왕자(王者)들의 족적(足跡)이었다고 말입니다.-아 멘-(다음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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