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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 삼으라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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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책 속에 있는 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살아 있는 현존의 인물입니다. 예수는 추억 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삶 속에 현존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예수는 결코 역사 속에 사라져 버린 분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역사의 한가운데서, 주(主) 중의 주로, 왕(王) 중의 왕으로 그가 세운 교회의 한가운데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주적 왕권을 행사하고, 그의 몸된 교회를 영화롭게 하고 계십니다. 그가 지금도 개인과 역사의 한가운데 살아계신 확증은, 바로 그가 남긴 최후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그 위대한 명령이, 그의 교회 운동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실 때문입니다. 아니 그의 이 최후 명령의 진행 때문에 역사가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내집하나님의 집)의 영광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최후명령, 곧 위대한 명령 앞에 전인격을 동원하기를 원합니다.

Ⅰ. 모든 권세자의 명령이란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인류속죄 사역을 완성하시고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에게 만왕의 왕, 만유의 주로서의 권세를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구속사의 대 전환점에 서 있는 예수께서는 자신의 메시야 왕국의 새 통치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자였습니다. 상천하지의 모든 권세를 말합니다. 하늘은 전 영계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땅은 존재하는 전 피조 영역을 가리킵니다. 하늘은 하늘의 영물인 천군천사들과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는 곳이요, 땅은 미래의 구원을 향해 전진하는 지상의 성도들이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미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를 통하여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요 19:30)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후(롬 1:4), 그의 지고하신 권세가 더욱 확고하게 되고 또 행사된다는 의미입니다(빌 2:9-10, 엡 1:21, 골 1:16-20).

그렇다면 그의 최후 명령은 바로 교회 존재의 전 의미와 목적이요, 영광이 됩니다. 아니 존재하는 전 피조세계와 역사 현존의 의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의 이 최후지상명령은 바로 전 존재의 힘이요, 존재하는 역사의 구심력이 되는 것입니다.

Ⅱ. 그 명령의 내용은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로 20절 상반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 예수와 관계된 제자라는 말은 세 가지 경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예수를 따르는 자, 좇는 자입니다.
이 경우 헬라어로는 아콜루데오(κολουθεο)라고 합니다. 예컨대 마태복음 4장 20절에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뒤따름을 의미합니다. 또 마가복음 5장 24절에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동반의 경우입니다.
또 마태복음 9장 9절에 예수께서 세관에 있던 마태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하는 경우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9, 22절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이 말은 특수한 목적을 두고 제자를 부르실 때 사용했는가 하면, 일반 군중들이 길에서 예수를 좇는 경우에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소경이 눈뜨기 위해서 예수를 따르는 경우나, 죄인들이 예수를 따르는 경우에도 사용하였습니다.

이 말은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의미하고,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는 새 방향과 목적을 두고 사용된 경우들입니다. 이런 경우 예수를 따름은 ① 거처나(고향), 친척이나, 세상 직업을 버려 두고 떠나는 값을 지불함이 있었습니다. ② 뿐만 아니라 집과 전토와 부모와 친구, 형제와 이웃과 세상의 영화를 내 버려야 되는 희생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③ 그것은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따름을 의미하였습니다. ④ 뿐만 아니라 그렇게 예수를 따름(좇음)은 그들에게 무상한 기쁨이요, 축복이요, 영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본문의 경우인 제자(μαθητ)입니다.
이는 생도로서의 제자를 의미합니다. 배우다, 익히다(고전 14:35), 알게 되다(행 23:27)라는 뜻인데, 이것은 어떤 이론적인 교훈보다 실제적 경험이나 실천을 통해서 깨우치다(히 5:8)라는 뜻인 만다노(μανθνω)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그 스승의 훈계나 교훈이나 주입식 교훈에서 뿐아니라, 그 스승의 삶과 행실에서 직접 몸소 체험되어지는 구체적 배움, 실제적 배움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가 바로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경우에 사용된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가르치는 단계의 제자(μαθτευω)입니다.
훈련시키다, 학습시키다라는 뜻인데, 이는 학습시켜 성도(제자)로서 명부에 올린 자들을 가리킵니다. 「천국의 제자」(마 13:52)라고 하였고, 아리마대 요셉을 말할 때 「그도 예수의 제자라」고 하였습니다(마 27:57). 사도행전 14장 21절에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라고 한 바울의 선교 사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좇는 단계의 제자에서 배우는 단계의 제자를 거쳐 가르치는 단계가 된 제자를 뜻합니다.

중대한 예수의 최후 명령의 내용은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삼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더 확실히 말하면 구원인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을 좇고,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을 만들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제자삼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을 알려 주었습니다.

첫 번째 요건은 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고 하였습니다. 명령형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지존무상하신 예수의 명령입니다. 그의 제자들 곧 「너희」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가야 할 영역은 모든 족속이 사는 곳들입니다. 이는 천국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모든 민족(마 24:14, 25:32)을 가리킵니다. 혹은 온 천하 만민입니다(막 16:15).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들입니다(계 7:9). 말하자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입니다(행 1:8).
다시 말하면 전세계입니다. 그래서 18세기 저 영국의 유명한 전도자 요한 웨슬레는 온 세계가 나의 교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는 주께로부터 세계를 받은 것입니다. 전세계로 가야 합니다. 육로로, 항로로, 해로로 가야 합니다. 때를 가리지 않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선교 운동입니다.

두 번째 요건은 반드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명령형입니다. 필연적인 명령형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인치는 행위입니다.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사 그를 하나님의 소유로 세상에서 구별시키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자에게 그 표징으로 물세례를 주어 주님 교회(공동체)의 일원(member)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를 세상에서 구별시키는 표요,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시키는 표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행사하게 하는 표가 됩니다.

세 번째 요건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중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가르치다(διδσκω)라는 말은 전투 임무 수행을 위하여 군인에게 전투 지식(이론)을 주입시킬 뿐 아니라, 훌륭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숙련되게 훈련시키는 실제적 교육을 말합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천국 복음)입니다(막 1:15, 16:15, 마 4:23).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기록된 계시로 나타난 성경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또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영생)을 얻게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5:39, 20:31).

그 다음 「지키게 하라」(τηρω)고 하였습니다. 이는 천국 복음의 파수와(행 12:4), 보존(요 2:10), 붙듬(엡 4:3)을 뜻하는 것으로 앞에서 나온 가르침에 대한 실행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칼빈(Calvin)은 참된 교회를 정의하기를 진정한 말씀을 전파하고(가르쳐 지키게 하고; 마 28:20), 거룩한 성례(세례와 성찬; 마 28:19)를 집행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개혁주의 교회들은 이 두 가지 사명을 예수님의 지상 명령, 최후 선언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최후 명령은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는 모든 족속에게 가야 하고, 세례를 주어 인을 쳐야 하고,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Ⅲ. 그 명령에는 예수의 최후 보장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하반절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γ μεθ μν εμι πσα τ μρα ). 여기에 예수님 자신만이 전용하시는 강조 용법 에고 …에이미(γ …εμι)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자신만이, 필연적으로, 꼭 그렇게 하겠다는 절대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보장입니다. 그 보장은 주님 자신이 모든 족속을 예수의 제자로 삼기 위하여 선교하는 교회나 사람들에게 함께 해주시겠다는 보장입니다. 바로 임마누엘의 약속이 아닌가!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임마누엘은 33년간 화육 강세로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그가 약속한 보혜사 성령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요 14:16, 15:26, 16:7). 그 보혜사 성령님이 교회 중에 임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가 교회 중에 함께 하시는가 교회는 모든 족속에게 가서 예수의 최후 명령인 제자 삼는 사명을 받은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중에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께서 기록한 주의 말씀(성경)을 따라 제자 사명에 충실한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임마누엘의 보장은 교회가 받은 세계 선교 사명 여부에 달린 것입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교회요, 선교가 없는 교회는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 보장은 세상 끝날까지입니다. 바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는 마지막 순간까지입니다. 그때는 세상 끝이 오고마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4:14). 세상을 향한 예수의 마음은 그 이상 계속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의 일이 끝난 그 시간은 세상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그때는 아무도 이웃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다시 중대한 말씀을 반복합니다. 주의 복음 운동을 하는 교회에는 항상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유는, 그 교회는 주님의 최후 명령을 준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 운동이 끝날 때까지 주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복음 운동이 끝나는 날에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관심도 끝나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세상 끝날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끝날은 복음 운동의 끝날이요, 또 세상의 끝날은 곧 심판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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