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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월적인 은혜 (행 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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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갈 때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걷게 한 사건입니다.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몇가지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는 바로 온 인류와 모든 믿음의 사람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해야 은혜의 말씀이 됩니다. 이 사람은 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모자라고 병든 사람입니다. 늘 주어도 모자란 사람이고 늘 얻어 먹어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의 심령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 보면 매일 성전에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매일 성전 미문에만 앉아 있는 사람은 성전 문턱까지 오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찬송이 없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감사와 감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단절된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판단해서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 미문까지는 나오는데 찬송도 없고 기쁨도 없어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이 없고 감격스런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내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나 너희들의 마음은 굳었고 얼굴은 뻔뻔스러우니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노라 너희들이 내 마당만 밟고 가니 너희 제물을 받지 않겠노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부지런히 성전에 나오긴 나왔으나 찬송이 없고 감격도 기쁨도 없었으니 마음만 답답했을 것입니다. 오늘 앉은뱅이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감사가 없습니까 왜 찬송과 기쁨이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왜 이렇게 감격과 확신이 우리에게 없습니까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영도 병들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 시험이 들었습니다. 처음 믿던 감격과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열심도 사라졌습니다. 어느새 스스로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꾸 앉고 싶어합니다. 뼈에 칼슘이 빠져서 골다공증 현상이 나타나 조금만 힘들어도 자꾸 자주 앉아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오래 할수록 계속 달라져야 합니다. 계속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제 그 앉은뱅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어섰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앉은뱅이에게 필요한 것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은 은과 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함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금 일어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일어날 수 있습니까

1. 바라보아야 합니다.
보아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왜 나를 보라고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보라고 한 것은 그 앉은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에는 '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내보내시어 저 별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보라고 하셨나요 네 자손들이 저 별들처럼 많게 하리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과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설교하시면서 보라고 했습니다. 백합화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보는 것은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바라본다는 그 자체는 그 심령속에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기대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앉은뱅이는 바라보았습니다. 바라볼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불신앙적인 태도에서, 병으로 시달리는 모습에서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의심의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실패와 의심, 고통, 교만의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키십니다.

38년된 병자를 향해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어서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향해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향하여 아이야, 일어나라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습니다. 바라보고 일어서는 여러분의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지금 나를 능력의 손으로 일으켜 세워 주옵소서! 주님은 간구하는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앉은뱅이에게 절대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가 일어난 후 그는 제일 먼저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성전 미문에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갈 생각을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무관하다. 나는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갈 필요도 없고 들어갈 마음도 없다' 늘 문턱에만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서자 그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예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는 성전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나는 성전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니까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의 신앙의 실패가 착각에 있습니다. 성전에 들어와 있어도 성전밖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에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 있는 자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후 그는 뛰었습니다. 최고의 기쁨의 표현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에 감격하여 뜁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보니 얼마나 기쁘고 신비롭고 은혜스러웠겠습니까 40년동안 걸어 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다리가 펴져서 그는 일어설 수가 있었습니다.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뛰었습니다. 손뼉을 치고 찬양을 합니다.

사망의 자리에서, 질병의 자리에서, 멸망의 자리에서, 저주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앉은뱅이와 같은 모습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일어나서 성전 깊숙이 들어가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그런 믿음의 삶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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