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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에 이르는 회개 (행 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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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회개란 바꾸어 말하자면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가리킨 다. 구원을 얻는데는 믿음만이 필수적이 아니라 회개도 필수적이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그대로 가지고서는 천국에 이를 수가 없다. 죄를 버려야만 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회개란 믿음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데 있어서 신자가 통과해야만 하 는 관문인 동시에 필수요건이다.

 1. 구원에 이르는 회개는 어떤 것인가 대요리 76문의 정의 생명에 이르는 회개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인의 마음속에 이 루어진 구원의 은혜인데 그것 때문에 죄인이 자기 죄의 위험뿐 아니라 추하고 가증한 것을 보고 느끼게 되며 또 회개하는자에 대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게 되므로 자기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 여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며 새 순종의 길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목적하여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세가지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자기죄를 느끼는 것 즉 자기죄악의 추악성과 가증성을 느끼는 것 둘째는 자기 죄를 슬퍼하는 것 셋째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상 세가지가 곧 생명에 이르는 회개이다.

 2. 참회개와 유사회개 (1) 따라서 위 세가지를 구비하지 아니한 것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라 고 할 수 없다. 후회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다.

마27:3 가롯 유다는 예수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쳤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 죄로 느끼지는 아니했다. 자기 죄를 슬퍼하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가롯유다의 뉘우침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었다.

근신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아니다.

왕상 21:27 아합이 엘리야의 재앙선고를 듣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 로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했다.

그러나 아합 역시 그것을 자기죄로 느끼지는 아니했다.

자기 죄를 슬퍼하지 아니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아니했다.

(2) 이와는 반대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한 경우도 있다.

눅15:의 탕자야 말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한 경우이다.

탕자는 자기 죄를 느꼈다. 자기 죄를 슬퍼했다.그리고 하나님께로 돌 아섰다.

눅22:61-62 베드로의 회개 또한 생명에 이르는 회개이다.

베드로는 자기 죄를 느꼈다. 즉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자기 죄를 슬퍼 했다. 즉 통곡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섰다.즉 밖으로 나갔 다.

행 9:에 나타난 바울의 회개 역시 생명에 이르는 회개였다.

행9:9 바울은 자기죄를 느꼈다.그런고로 식음을 전패했다. 행9:11 바 울은 자기 죄를 슬퍼했다. 그런고로 기도한 것이다. 행9:22 바울은 하 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런고로 그는 나가서 다메섹에 복음을 전한 것이 다. 자신이 박해하던 그 복음은 전한 것이다.

삼하 12:에 나타난 다윗의 회개 또한 생명에 이르는 회개였다. 선지 자 나단의 책망을 듣자 다윗은 자기의 죄를 느꼈다 (삼하 12:13). 그 런고로 그는 내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노라고 선지자 앞에 자복했다.

그리고 시51:에서 자기죄를 슬퍼했고 온전히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 께로 돌아왔던 것이다.

욘1:에 보면 선지자 요나의 회개 역시 생명에 이르는 회개임을 알게 된다.

요나는 죄를 느꼈다. 깨달았다. 욘1: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했다.

욘1:11에서 요나는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이는 죄를 슬퍼함 이오. 죄에 대한 책벌을 감수하는 자세이다.

욘2: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왔던 것이다 (2:4). 결국 요나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했던 것이다.

 3. 구원회개의 과정 이대과정이 있다.

(1) 회심적 회개 이는 복음을 처음 믿게 될 때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중생시의 회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요13:10에서 주님의 말씀하시는 전신목욕과 같은 것이다.

믿기전의 모든 죄를 다 청사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 믿기전의 원죄 와 자범죄를 다 깨닫고 이를 자복,청산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회개는 단 1회적이다.

고로 딛 3:5 은 중생의 씻음이라고 한 것이다.

(2) 성화적 회개 요 13:10의 이미 목욕한자라 할지라도 발을 씻을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생적, 회심적 회개를 한 서도라 할지라도 부분적 회개는 필요하다. 왜냐하면 중생한 심령도 중생받은 후에 세상 죄악에 오염되 기 때문이다. 사언행 심사에 있어서 어느 부분이 죄로 오렴되는 고로 그 불결해진 부분은 그때마다 청결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속하신 주님과 가까와 질수록 작은 죄가 더 크게 보이 며 적은 죄도 많아 보이는 고로 회개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과는 멀어지고 거룩하신 주님과 밀접해 질수록 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고 죄를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성화적 회개는 반복적이요. 계속적이다. 마치 목욕은 하나 수세나 세 족은 여러번 하는 것과 같다.

고로 거룩해 질수록 더욱 회개가 깊어지고 회개가 철저해 지는 것이 다. 바울이 회심적 회개후에는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자로 자처했다(고 전 15:9). 그러다가 엡3:8에서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자보다 더 작은 자로 자처했다. 고전 15:8에서는 만삭되지 못하고 난자로 자처했고 딤 전1:15에서는 죄인중에 괴수죄인이라고 했다.

이는 바울의 회개의 심도와 철저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성화의 높이는 또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바울의 신앙생활이 완숙해 질수록 더 많이 범한 때문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범죄는 극소화 되었으나 반대로 성화가 극대화된 결과 자기를 괴수 죄인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의 단계는 단회적 회심과 반복적 회개 즉 성화적 회개의 단계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이 두단계의 회개의 과정을 통 과해야 하는 것이다.

사죄의 증거는 무엇인가 사죄 받은 증거는 없을까 이에 대해 A.F.Ballenger 목사의 체험을 들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 다.

Ballener 는 일시 범죄한 결과 영력을 상실하고 말았다.그러나 그는 은혜회복의 필요를 절감하였으므로 하나님께 죄를 자복했다. 그는 죄 를 자복하면서 사죄의 증거표로 무슨 이상한 일이 있기를 기대했다.

어떤 소리나 아니면 빛이 번쩍이지나 않을까 생각도 했다.그러나 그러 한 사건은 나타나지 아니했다.

그는 또다시 죄를 자복하고 두루 살펴 보아도 어떠한 표정도 나타나 지 아니했다.

그러나 나중엔 요일1:9을 읽게 되었다. 그는 이 말씀을 본 후에는 사 죄의 증표를 기대하지 않고 사죄받은 줄로 믿었다. 왜냐하면 저는 미 쁘고란 말씀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 고 했으니 틀림없이 그렇게 사하여 주실 것이로 그는 믿었다.

회개는 우리의 할 일이오. 사죄는 주의 할일이기 때문이다.

사죄 증거는 주님의 약속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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