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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립보에서 생긴 일2 (행 16: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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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빌립보에 갔을 때 두 가지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첫째는 기도처를 찾아다니다가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온 가정이 세례를 받은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이 여인이 유럽의 첫 그리스도인이기에 이 사건은 굉장히 뜻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귀신들려 점치던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여자는 점을 쳐서 주인을 이롭게 하던 여자였는데 바울을 좇아 다니면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너희에게 전할 자”라고 말을 하나 바울이 귀신을 쫓아 줍니다. 이것이 화가 되어서 소동이 일어나고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별히 이 사건이 빌립보 사건에 핵심을 이루는 사건인데 감옥에 들어간 후에 바울과 실라가 한밤중에 불평하는 대신에 찬양을 드렸는데 찬양을 부르다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니 옥터가 흔들리고 모든 쇠고랑이 벗어지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충격적이고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때 바울과 실라를 지키던 간수가 있었습니다. 간수가 너무 놀라서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습니다. 자결대신에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온 가정이 세례를 받게 된다는 내용이 바울이 빌립보에서 두 번째 경험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과 이 시간에 다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단이 바울과 실라를 어떻게 공격해 갔는가 두 가지 큰 공격의 방향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큰 공격의 방향은 오늘 나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를 공격하는 사단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전도하는 바울을 어떻게 공격하는가 첫 번째는 공격적이고 무섭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면적이고 아주 교활하고 간교한 방법을 사용해서 빛의 천사를 가장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녹여버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헌금을 다 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일부를 빼돌린 것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짚었습니다. 그런 작은 사건이지만 그것이 초대교회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사건이라 이것을 막아버렸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즉사를 하게 됩니다. 사건에 비해서 결과가 너무 컸습니다. 그 나름대로 영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탄의 공격입니다. 우리가 모르게, 우리가 쉽게 속을 수 있도록 달콤하게 영적으로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바울을 첫 번째로 공격했던 이 귀신들린 여자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귀신이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혼돈이 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바울을 좇아 다니면서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을 귀신이 계속하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여자에게서. 이때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비록 마귀라 할지라도 마귀를 이용해서 전도하면 될 것 아니냐 그리고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괜찮지 않느냐’ 이것은 마치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면 될 것 아니냐, 돈을 내가 어떻게 벌었던 헌금하면 될 것 아니냐’ 이것입니다. ‘내가 성경 읽기 위해서 초하나 훔치면 하나님은 봐주실 것 아니냐’ 이런 유혹들이 우리들에게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들이 교회에도 많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렇게 우리를 공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진리가 없는 자에게서는 결코 진리가 증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복음이 없는 어두운 세력에서는 어찌 구원의 빛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가 구원의 소리를 지르고 진리의 말을 하고 의로운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귀신들이 소리를 지를 때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며칠 시달리다 그는 귀신들의 증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에게서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함으로서 귀신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일들을 경험하셨습니다. 막5:5에 거라사인에게 들어간 귀신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물에도 들어가고, 불에도 들어가고 이런 악한 귀신입니다. 이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부터 뛰어와서 예수님을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얼마나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예수님은 주저하지 않으시고 그 귀신을 향해서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 명령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귀신의 증거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증거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거짓된 사람들에게서 달콤하고 거짓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세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빛의 천사를 얼마든지 가장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믿지 않으면서도 입으로는 다른 얘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 신학교 교수도 자기는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도 많은 아주 그럴듯하게 말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이 열매를 맺어지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몇 년동안 거짓으로 위장을 해서 좋은 말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서 증거가 될 것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거짓된 사람에게서 진리의 말이 나올 수 없으며 어두움 속에서 빛이 나올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진리의 가장을 하고 진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속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점쟁이나 무당이 아무리 용하게 가리키고 말한다 할지라도 믿지 마십시오. 어떤 때 보면 족집게 무당 보면 사람들이 놀랍니다. 그런가보다. 마귀에 관련된 사람들이 하는 말은 아무리 교회를 위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이라도 그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증거를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오늘 귀신들린 여자가 바울에게 나타나서 하는 말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여” 아무리 많이 증거해도 바울은 그것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여자에게서 나올지어다” 여러분에게 달콤하게 속삭이는 마귀의 소리에, 사탄의 소리에 일시적으로 여러분을 성공하게 하고, 일시적으로 여러분을 부요케하고, 일시적으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고, 일시적으로 여러분의 앞길을 터 준다고 느낀다 할지라도 거기에 따라가면 큰일 납니다. 그것은 결국 여러분을 죽이는 늪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주는 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지옥을 안겨다 줍니다. 그것을 보는 눈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물리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마귀가 이 방법에서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
본색을 들어냅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공격을 해오고, 압박을 가해오고, 손해를 끼치고, 병들게 하고, 파괴하는 그런 일을 합니다.
사탄이 들어내서 공격해 올 때 쓰는 공통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동원해서 여론을 만듭니다. 소란하게 합니다. 이런 종류의 방법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거부하십시오. 여론 선동. 사람들에게 이상한 말을 해서 사람들을 확 바꾸어 버린다든지 하는 사람, 다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쓰는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그 다음 방법은 이렇게 여론을 확보하고 사람의 민심을 잡으면 폭력을 행합니다. 법을 안 지킵니다. 힘을 써서 밀어붙입니다. 세 번째 권력이나 금력이나 여론을 써서 사람을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감옥에 집어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방법을 마귀가 바울에게 쓴 것입니다. 이 주인들은 점치는 여자에게서 귀신이 나간 것을 보고 사람들을 선동해서 재판도 하기 전에 그를 몰매를 때립니다. 그리고는 감옥에 집어넣어 버립니다.
이런 일은 바울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먼저 마귀는 금식하는데서 예수님을 세 번 유혹합니다. 아주 교활한 유혹으로 유혹합니다. 이것이 안되었을 때 마귀는 제자들을 사용합니다. 제자들을 사용해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갈지어다”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도 안되니까 마귀는 본색을 들어낸 것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예수님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을 전부 선동해서 ‘예수님을 죽이시오’ 여론을 만든 것입니다. 빌라도의 재판이 먹히지가 않아요. 정의가 먹히지가 않습니다. 그래서는 할 수 없이 불법 재판을 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맡겨버리고는 예수님을 죽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 패턴은 지금이나 그 때나 똑같습니다. 여론을 만들고 충격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언제나 어두움의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일을 하는 사탄은 자신이 하는 일이 승리하는 일처럼 생각하지마는 마귀가 무덤 파는 일입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고 감옥에 집어넣으면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이상하게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면 살아나옵니다. 펄펄 살아납니다. 진리가 살아납니다. 진리라는 것은 고난의 역경 속에서 힘이 있는 법입니다. 평온한데서는 진리가 힘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핍박과 고난과 역경 속에 들어가면 진리는 살아납니다. 어려워지면 힘이 생깁니다. 감옥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그 고난과 역경 속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역경도 그를 묶어둘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신이 일어나고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는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 여러분을 공격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첫 번째부터 공격 안합니다. 첫 번째에는 미끼를 던집니다. 여러분의 육체적인 정욕과 삶의 먹고 마시는 문제에 미끼를 던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공이나 “나에게 절만하면 세상 적으로 성공시켜 주겠다” 이런 미끼들을 계속 던지는 것입니다. 속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적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 말 자체를 보지 말고 누가 말했는가 마귀는 절대로 속입니다.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사탄으로부터 물리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대처한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기도와 찬양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돈이나 군사적인 힘이 아니라 기도와 감사와 찬양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이 고난 속에서 기도하며 찬양하고 나아가면 지진이 일어나고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집니다.
그들은 고난 중에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영어번역) 계속 기도하며 계속 찬양했다. 한 번 기도하고 한 번 찬양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세속적인 육체적인 고난과 질병이 내게 부딪혔을 때 계속 기도와 찬양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때 슬퍼하거나,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걱정해서 할 수 있다면 계속 걱정하십시오. 여러분이 염려한다고 머리털 하나 희게 할 수 없고, 키가 한자나 크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있습니다. 걱정은 오히려 여러분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을 자학하는 것외에는 아무 일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 이런 문제들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겪을 때, 특별히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향해 대항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런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과 대면하십시오. 사람을 상대하면 미워하게 됩니다. 미워하게 되면 내 얼굴이 먼저 추해집니다. 독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독이 나오기 전에 자기를 먼저 파괴합니다. 미움이 상대방을 파괴하기 전에 그 미움이 자기를 파괴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죽어요.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 가기 전에 그 사랑이 자기를 먼저 축복해 버립니다. 기도를 하면 중보기도의 축복이 다른 사람에 가기 전에 먼저 나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하면 그 용서가 내 영혼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낮에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매달리십시오. 기도하고,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좋은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상의 권력자들을 보겠습니다.
35, 36절,
감옥에 집어넣던 관리들이 어젯밤에 일어났던 소식을 들었는가 봅니다. 명령을 내려서는 ‘그 사람들을 내보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쉽게 그렇게 때려서 집어넣고는 그 다음 날에 쉽게 석방하는 것을 보면 겁을 집어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강한 것 같지만 힘이 없습니다. 권력에 의지해서 힘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권력에 제일 약합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없어지면 힘을 잃으니까요. 돈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돈이 사라지면 제일 약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돈의 힘에 의지해서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37, 38절,
바울이 평소에 안하던 일을 하나 합니다. “나가라”하니까 안 나간다 합니다. 내가 로마 사람인데 나를 재판도 안하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는데 이런 불법을 행했는데 못나간다는 거예요.
‘관리를 데려와서 나를 데리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없던 모습입니다. ‘나를 와서 데리고 가라’는 것은 뭡니까 공개적으로 잘못된 것을 사과하라는 겁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할까요 여기서 바울의 모습은 법은 반듯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그것에 대한 바울의 분명한 태도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벌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는 관리들이 와서 친히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빌립보를 떠나주시기를 요청합니다.
40절,
루디아 집에도 가고 형제들을 위로하고 빌립보를 떠납니다. 혹 바울이 빌립보에 더 머물러 있었다면 더 큰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축복을 발로 차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시시한 것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면서 붙잡고 있습니까 그리고는 정말 중요한 것들, 우리의 인생을 축복할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많은 기적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이 떠나시기를 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간관리를 잘 하십시오. 어디까지 시간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누구를 만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여러분 인생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유럽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셔서 우리 주위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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