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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 잡으라 (갈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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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본문 2절과 5절은 서로 말의 표현이 맞지 않는 듯 싶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갈 6:5)”
어떤 사람이 죄를 짓거든 그러한 사람을 바로 잡고 너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1절에 남을 바로 잡으라는 말씀이 나온다. 바로 잡는다는 단어는 ‘틀린 것을 고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회복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2절에서는 ‘서로 짐을 지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말의 원어적인 뜻은 ‘위골된 뼈를 맞춘다’는 의미다. 우리는 우리의 지체 중 작은 부분은 무시하지만 그 역시 대단히 중요한 지체이다. 신자로서 다른 지체의 결손을 감당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무엇인가 다음의 성경구절을 통해 살펴보자.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
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2-13)”
여기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곧 부족한 것을 ‘바로 잡으라’는 말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4:13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
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는 ①첫번째 뜻은 병들어 있는 지체, 자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체들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서 온 몸의 기능을 ‘정상화’하라는 것이다. ②두번째 뜻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가 되게 하라는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일을 온전히 이루는 자가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번째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는 말씀의 의미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정상화의 요구이다. 여기 온전한 어떤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했을 때 그 머리에 부합된 ‘온전한 몸, 완성된 몸’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한다는 것은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하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은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 우리가 그 모든 지체로서 심신이 합일한 상태로 주께서 요구하시는 수준까지 시행하고 도달한 온전한 경지의 사람을 말한다. 교회 안에서 지체로서 불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지체 중에 불필요한 지체는 하나도 없다. 각 기능이 골고루 보존되고 합치되고 구비되어 발휘되어야 한다.
두번째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는 말씀은 바로 ‘발휘’되는 것을 말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
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 2:18-19)”
이것이 ‘온전한 사람’의 개념이다. 사람이란 결국 자기 머리로 알고 있는 것까지 요구한다. 이런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고 우리가 그 몸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며 바로 그것이 ‘온전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서로 짐을 나눠 져야’한다. 내가 크는 것과 동시에 같은 지체로 부름 받은 자들을 서로 싸매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질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나도 크는 방법이다. 온몸이라는 시각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경쟁적 차원에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한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갈 6:
3)”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써 완성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 몸을 일컬어 교회라고 한다. 교회란 결국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신자들이 합쳐서 한 몸을 이룬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몸’이다. 우리 개인으로 따지면 각자가 그 몸의 지체이다. 고로 지체가 지체끼리 경쟁하지 말고 지체가 각각 자기 일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른 지체와 조화를 이룬 정도가 온전한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로 지칭되는 우리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단체가 된다. 몸이라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써의 우리의 책임이 있고, 그것을 감당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성장하여 한 몸을 이루는데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한 몸이면서 다른 지체임을 인식하여 지체가 서로 경쟁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고 보완적이며, 조화되고 협력적인 위치를 깨닫는 데는 개인의 아집과 편견과 자존심을 깨뜨리는 아픔이 뒤따른다. 남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긴다. 함께 지체로 온전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 때문에 어려워 봐야 한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을 돌이켜 세워 놓고 함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리에 가야 하며, 그 경지에 가는 동안에 우리는 정말 말할 수 없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갈 6:4)”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온전한 몸이란 내가 다른 것을 대신 함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리가 팔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팔을 회복시켜 놓아야 한다. 말하자면 각자의 임무는 고유한 것이다. 대치할 수 없는 직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의 짐을 질 뿐만 아니라 남을 보완해 주어야 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는 나머지 지체라도 건강해야 된다. 그래야 결손 부분들을 버텨낸다. 팔을 다쳤으면 목이라도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만 결손 부분을 보충하고 회복시킬 수 있다. 그러나 목이 팔을 대신한다는 뜻은 아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묵묵히 와서 출석해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가만히 왔다가만 가도 참 대단한 것이다. 제일 못하는 사람은 아무 역할도 안하고 돌아다니며 비판하는 사람이다. 돌아만 다니는 것, 그것은 누가 하는 것인가 그것이 곧 ‘피와 신경’인데 그건 우리의 소관이 아니다. 피와 신경은 머리로부터만 명령, 즉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으로 우리 몸을 도는 것이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갈 6:4)”
여기 ‘남에게 있는 것이 내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각각 각자의 고유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말이다. 그렇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다’ 딴 것은 하지 말고 자기 짐이라도 제대로 져야 한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나 사회는 튼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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