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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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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을 나는 비행기와 대양을 항해하는 배는 출발하기 전 반드시 정비를 합니다. 만일 이 때 정비가 불량하면 인명과 재산의 엄청난 피해를 초래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출발하면서 인생을 정비하지 않으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만유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복된 삶을 살려면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정비하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연초에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가 정비해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1. 우리는 마음의 생각을 정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이 때문에 아무리 부요한 환경을 확보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의 생각이 부실한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엄 4:23)고 하셨으며 “우리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에베소서 3:20)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인간은 그 생각이 부패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빛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둠에 대한 생각을, 질서에 대한 생각보다는 무질서에 대한 생각을,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보다는 추함에 대한 생각을, 부요에 대한 생각보다는 가난에 대한 생각을, 사랑에 대한 생각보다는 미움에 대한 생각을 더 하고 그 생각을 마음의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부정적인 것이 하나도 없기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에서 빛을, 혼돈과 무질서에서 질서를, 추함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빈곤에서 부요를, 미움과 원망에서 사랑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에게 베푸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올 한 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둠 대신에 빛을, 무질서 대신에 질서를, 추함 대신에 아름다움을, 저주 대신에 부요를, 미움 대신에 사랑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없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적극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안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능력이 없다. 나는 망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고 말씀하고 있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열 두 정탐군을 가나안에 보냈을 때 정탐을 마친 그들의 보고가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먼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군은 ‘우리가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소극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보고에 백성들이 울면서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라고 하면서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야말로 얼마나 적극적인 생각입니까
하나님게서는 소극적인 보고를 한 열 정탐군을 죽이시고, 그들의 보고를 듣고 원망,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로 회진시켜 방황하다가 거기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적극적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 그 후손들만 택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적극적인 생각을 갖는 성도를 택해 주시고 축복의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이 새해 벽두 우리는 주 안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꿈을 정비해야 합니다.
꿈은 우리를 축복의 세계로 이끕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자신이 꿈을 가지면 그 꿈을 자신이 이끌고 가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꿈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꿈이 인간을 이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역사하실 때 꿈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로 여러분과 나에게 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요엘 2:28)
이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은 버림을 받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창조적으로 생산적인 꿈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굼을 갖지 않고 그저 막연한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주 안에서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꿈을 잉태하는 성도가 그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70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없는 것을 어떻게 있는 것같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오직 꿈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꿈이 아니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한 것을 어떻게 받은 줄로 믿겠습니까 우리가 구하는 그 대상을 찬란하게 꿈 꾸지 않고 믿을 수 없습니다. 바로 꿈은 믿음의 어머니 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올해 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안에서 그것을 찬란하게 꿈 꾸십시오. 여러분이 꾼 굼은 여러분을 그 길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도 막연하게 축복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고 말씀하심으로 찬란한 꿈을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꿈을 갖지 않고 막연하게 한 해를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건전하고 광대한 꿈을 안고 한 해를 출발하십시오. 그 꿈이 여러분에게 기적을 체험케 해 줄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자세를 정비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말씀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과 왕들과 사도들을 통해 완성하신 책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 과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나를 소상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현재 살아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생명의 책이요, 영원불멸의 책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어느 한 말씀이 우리 온 영혼에 회오리처럼, 걷잡을 수 없이 충격을 주는 방망이 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 기록된 말씀이 현재 ‘내게 주시는’특별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으면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주의 종을 통해 말씀을 들을 때 어느한 말씀이 불길처럼 혹은 비수처럼 혹은 아늑한 봄 기운처럼 심령에 다가오는 것을 체험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기도중에 혹은 찬송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깊은 기도중에, 찬송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입니다.
그런가하면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집사님이나 성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대화중에서도, 진지한 대화중에서도 ‘강력한 메시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받은 말씀은 우리의 믿음과 지혜와 지식과 판단력과 아이디어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성경을 통해, 설교를 통해, 기도와 찬송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연초에 세속적인 옷을 벗어버리고 거룩함의 옷을 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훈련이 된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 험한 시대에 힘이 되고 지혜가 됩니다. 오늘날 지혜가 없어 낭패를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얻으면 그 어떤 위기라도 극복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야고보서 1:5)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세속에 젖어 있으면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한 해를 출발하는 이 때 말씀을 청종하는 자세를 확실하게 정비하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4. 우리는 믿음의 선언을 하는 자세를 정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말에도 창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더욱이 회개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말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은 수많은 능력을 나타냈는데 그들은 모두 담대한 선언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미문 가에서 구걸을 하던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행3:6) 선언했습니다. 그 결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 그는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선행과 구제에 힘쓴 도르가가 죽었을 때도 그 시체를 향해 ‘다비다야 일어나라’(사도행전 9:40)고 선언했습니다. 그 결과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 그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말에도 권능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언 6:2)고 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담대한 믿음의 선언을 해야 합니다. ‘나는 못해. 나는 절망이야. 나는 무능력해’ 이런 부정적인 말을 우리의 입에서 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힘차게 시인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어둠으로 꽉 들어찬 말,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 땅에서 담대한 믿음의 선언을 하면 하나님께서도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선언해야 할까요 우리가 어떤 믿음의 선언을 하며 이 한 해를 살아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근거로 죄 사함에 대한 선언을 해야 합니다. ‘나는 의인이 되었다. 나는 조의 심판과 상관이 없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이런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평강의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은총을 근거로 성령충만에 대한 선언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으며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나 오직 성령님과 더불어 할 수 있다’는 이런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는 한해를 살게 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그 은총을 근거로 치료에 대한 선언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시는 야웨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올 한 해 아니 평생토록 ‘나는 주 안에서 치료함을 받았다. 나는 강건하다. 원수의 세력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라고 힘차게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선언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 치료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은총을 근거로 낭패와 실망, 저주와 빈곤에서 벗어난 것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저주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유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한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입버릇처럼 ‘요즘 사업이 어려워 죽겠습니다’, ‘물질이 없어 살기가 괴로워요’, ‘경기가 형편없어요.’, ‘죽지 못해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의 열매가 삶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저주에서 벗어나 복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비록 경기가 형편 없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된 자녀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 가운데 있습니다. 나는 부요합니다’ 이런 입술의 시인으로 올 한 해 복된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총을 근거로 사망이 철폐되고 천국의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선언해야 합니다. 우리는 눈물과 근심과 이별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는 영생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런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에 불과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불안과 공포와 초조 속에 맞이하지만 우리는 평안과 기쁨과 감격 속에 맞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린도전서 15:55)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올 한 해 끊임없이 천국의 소망, 부활의 기쁨에 대해 힘차게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의 삶 가운데 부활의 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항이 바로 우리가 정비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 네 가지 사항을 잘 정비하고 실천할 때 올 한 해를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부실하면 인생도 황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인생을 잘 정비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한 해를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
은혜의 감격을 안고 새해를 맞게 해주신 섭리를 감사 드리옵나이다. 기도하오니 주여, 저희들의 영의 눈을 밝혀 주시사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은총의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당장의 환경을 바라보고 절망하고 탄식하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저희들 오늘 하나님의 광활한 축복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주 안에서 변화를 받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각, 찬란한 꿈, 말씀을 경청하는 자세, 담대한 믿음의 선언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사옵나이다. 주여 저희들이 네 가지 사항을 반드시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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