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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영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창 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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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 아브람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자녀를 제 때에 얻지 못했을 때 심각한 불안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길리 운 다메섹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야 겠다는 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을 때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은 그럴 듯 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성과 감정에 맞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두려움에 빠진 것을 알고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결정적인 위기에 빠질 때 외면하지 않고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보고 계십니다. 아무때나 나타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나타나셔서 격려해 주시고 다시 궤도를 수정해 주셔서 믿음의 길을 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의 두려움을 아시고 다시 그를 일깨워서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늘을 보게 하시고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면서 네 자손이 이렇게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불안과 두려움, 회의와 갈등 속에 빠져 있던 아브람의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의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나에게 호의를 베푸시고 친절을 베푸신다는 사실 앞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란 약속의 말씀을 계속 붙잡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싹이 납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어야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믿음이 회복되는 것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고 감격해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의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믿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믿음 하나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증거를 구하는 아브람
아브람의 믿음이 회복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것은 아브람의 위대한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여호와를 신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로워지는 유일한 비결은 믿음뿐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이 누구 신지 아브람에게 계시하십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 로라
인생의 참된 기초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시작도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끝도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8절에서 아브람이 당돌하게도 하나님께 그 증거를 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증거를 주십시오!라고 당돌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람의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들도 보이시고 말씀도 주셨지만 현실적으로 제게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제게 자식을 주신다면 먼저 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믿음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배웁니다. 첫 번째는 믿음이란 증거가 없어도 믿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번째는 그러나 그와 동시에 믿음에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증거란 무엇입니까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현실적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영적이고 내면적인 증거입니다.
영적인 증거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씀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님의 내적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순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환상이 있었기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주님이 오시기까지 내가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영적이고 내면적인 증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런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외적이고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증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내면적인 말씀과 성령의 증거가 우리 안에 있을 때 어떤 위기와 환란도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거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여러분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요구에 응답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증거를 달라고 했을 때 그래, 알겠다. 내가 증거를 주마.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의 형태가 좀 특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3년된 암소, 3년된 암염소, 3년된 숫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과 계약하시는 하나님
이것은 고대의 계약법이었습니다. 고대의 계약법은 짐승을 죽여서 쪼개어 마주보게 한 후에 그 사이를 왕래함으로 그 계약이 완성됩니다. 요즘에는 계약서를 쓰고 거기에 싸인을 하고 공증을 하면 그 법적 효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네가 만일 계약을 위반했을 때는 이 짐승처럼 너는 죽게 될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10-11절을 읽어 주십시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시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안한 방법에 대해 아브람이 순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그 모든 동물들을 취하며 그 시체를 반으로 쪼개어 양쪽으로 놓았습니다.
분명히 이것은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레위기 1장에 나타나는 제사는 짐승을 죽여서 불에 태우는 것이었으며 비둘기를 찢어야 했는데 여기서는 불태우지도 새를 쪼개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제사가 아니라 계약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상의 계약법대로 아브람과 계약하시길 원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적인 계약법을 통하여 아브람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가 약속의 땅과 축복된 자녀를 너에게 분명히 주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아브람은 과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계약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며 아침부터 이렇게 줄곧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시탐탐 시체를 노리는 솔개들 때문에 어디를 잠시 다녀 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 시체가 없어지면 그 계약이 완성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비우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오실 지도 모르기에 하루 종일 짐승의 시체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믿음이 생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현실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지라도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약속의 말씀이 주어지지만 그 말씀은 현실화되지 않습니다. 약속의 말씀과 현실 사이에는 벽이 있습니다.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믿음이요 기다림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오래 참지 못하는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참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12절에 보면 깊이 잠든 중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도 하루종일 기다리다가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한낮의 뙤약볕에서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아브람은 잠든 사이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캄캄함이 그에게 엄습해 왔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바로 그때에 예언이 들렸습니다.
13-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진짜 믿음을 가지면 예언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분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벗 아브람에게 무엇을 숨기겠느냐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을 압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언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미래에 대해서도 길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의 자녀에 대해서도 예언해 주시고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갈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좁은 길, 고난의 길을 가며 위기가 와도 그 길을 흔들리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말씀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요 예언의 음성이 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은 신약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예언과 성령님의 모든 예언은 계시록을 통하여 미래의 역사에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갈 것입니다. 사탄은 결국 패배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모든 예언들은 역사의 종말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이 지나가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환상 중에 예언을 듣게 된 아브람은 형용할 길 없는 놀라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바로 그때에 불이 나타났습니다. 연기 나는 풀무 곧 불을 담은 화덕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활활 타오르던 화덕 안에서 불이 갑자기 튀어나왔습니다. 그것이 타는 횃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쪼갠 고기 사이로 그 불이 지나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싸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인을 치셨습니다.
이 불은 하나님의 불입니다. 하나님의 불이란 그분의 임재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란 곧 그분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불로 임재하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2-5절을 보면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호렙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불을 만나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산에 오르는 도중에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그 떨기나무는 불이 붙었지만 타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이 불 속에는 하나님의 사자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 불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라. 이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발에서 신을 벗어라.
드디어 모세는 불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에서 모세는 또 한 번의 불을 경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바로의 손에서 탈출했을 때 그들을 인도했던 것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모세는 불기둥을 통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불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8절에 보면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을 때 또 한 번의 불을 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에 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연기가 나며 산이 진동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모세가 성막에 관한 말씀을 받을 때에도 이와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불은 모세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라 솔로몬에게도 임했습니다. 역대 하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봉헌식을 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가 봉헌 기도를 마치자마자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입니다. 땅에서 오는 불은 하나님의 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불은 하늘에서 내립니다. 인간으로부터 오는 불은 하나님의 불이 아닙니다.
그 불이 임할 때 하나님의 영광도 같이 임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가득해서 제사장조차 그곳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이 불은 솔로몬에게서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불은 엘리야에게 옮겨 붙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백5십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할 때였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짐승을 잡아 놓고 열심히 주문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춤을 추며 창으로 자기 몸을 찔러 피를 내며 소리 질러 기도하였지만 거짓 우상인 바알은 불로 응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쌓고 열 두 돌을 취한 후 그곳에 제물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에다가 물을 부은 후 소리지르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소제를 드리는 저녁 무렵 그는 간단한 기도를 올립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을 돌이키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드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 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그것을 모든 백성들이 보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 시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엘리야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불은 오순절날 다락방에서 전심으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도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은 지금 우리의 마음에서도 불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곳곳마다 성령의 불은 횃불처럼 지금도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믿음에는 불의 인치심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적극적 사고방식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이 불의 능력입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묵은 땅’을언약의 땅으로
18절을 보십시오.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계약에서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계약한 날짜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한 날에 아브람과 더불어 계약을 하셨습니다. 계약 전까지는 자유롭지만 일단 계약하면 후회해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날에 여러분을 지키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아들을 보내시기로 결정하셨고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과장이 없으십니다.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불의 계약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도 바로 이 계약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며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귀찮다고 그만두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강에서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을 받을 때의 현실로 돌아 와 봅시다. 그에게 아기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람은 이 때부터 15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만사 형통하거나 당장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받은 것은 겨우 막벨라 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현실에서 소유한 것은 그것 하나였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그의 인생이 끝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람의 자손 가운데 예수께서 태어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되리라‘는 말씀대로 구원받은 백성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씀이 그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들을 부르시는 그분의 놀라운 섭리가 바로 아브람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19-21절을 읽어 주십시오.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줄 땅이 바로 이 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땅은 새 땅이 아니라 묵은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이 살지 않던 땅이 아니라 이미 기존에 수많은 족속들이 살아왔던 그 묵은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새 땅을 주시지 않고 묵을 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묵은 땅을 주신 이유는 그곳을 기경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모든 이방 족속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천국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새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죄악으로 더럽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들어가서 여러분을 새사람으로 만들길 원하십니다. 묵은 땅을 기경해서 축복의 땅을 만들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 안에 모든 축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아브람이 받은 이 축복과 증거를 우리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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