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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병든 사회,병든 인간 (호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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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사건과 진통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나온 것들이 한꺼번에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립니다.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을 하나하나 보면 힘도 없을 뿐 아니라 금방 녹아버리고 맙니다.그러나 그 눈이 계속 내리면 1m나 2m로 쌓이기 시작하고 집을 무너뜨리고 눈사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여름이면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빗방울 역시 하나하나 떼어놓으면 한낱 물방울에 불과합니다.그러나 그 빗방울이 모이면 홍수를 일르키고 산사태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이치는 인간의 도덕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술 한잔 정도라면 그것이 그다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한잔이 두잔되고 두잔이 석잔되다가 결국 알콜 중독자를 만드는가 하면 패가 망신을 하게 만듭니다.한대 한대 피우던 담배가 결국은 니코틴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가 하면 폐나 호흡기를 망그뜨려 놓습니다.
얼마 전 제주를 떠나 서울로 오던 대한 항공 여객기가 김포 공항에 착륙하려는 순간 앞 바퀴가 나오지 않는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하는 수 없이 비행기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연료가 다 소모될 때까지 90분간을 비행했습니다.그때 그 비행기에 탔던 사람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탑승객들의 불안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아들과 함께 탔는데 나는 죽더라고 너는 살아야 된다면서 우는 사람도 있었고 메모지를 꺼내 뭔가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뭘 쓰냐고 물으니까 가족들에게 남길 말을 쓰노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기름이 다 떨어진 후 사고의 비행기는 가까스로 동체 착륙에 성공하여 김포 공항에 내려 앉았습니다.이토록 아슬아슬했던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 조사반이 밝힌 사고의 원인은 조그마한 나사못이 엔진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라를 것이었습니다.
수백 명을 태운 채 하늘을 나는 대형 비행기의 착륙이 적은 나사못 한 개 때문에 어려웠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큰 사고라고 해서 그 원인이 반드시 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원인들이 큰 일을 그르치고 나아가서는 개인의 운명을 망그뜨리고 한 나라의 장래를 뒤흔들어 놓는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합니다.나사못 자체만 가지고는 수백 명을 죽이거나 비행기를 파괴하지 못합니다.그러나 그 작은 나사못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할 때는 비행기도 파괴시킬 수 있고 수천 명 수만 명도 살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우리 사회를 이토록 어지럽고 수선스럽고 불안하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어떤 사회 심리학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심리 형태를 다음과 같이 진단한 바 있습니다.
첫째는 화를 잘 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거칠어졌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조급해졌다는 것입니다.
네째는 믿지 않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양극화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화를 잘 낸다든지 거칠어졌다든지 조급해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신경질적인 성향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줄을 서지 않습니다.먼저 밀치고 들어가는 것이 예사입니다.차를 몰아도 모두가 자동차 경기장의 레이서들처럼 기를 쓰고 몰아 댑니다.휴전선에도 완충 지대가 있는데 우리 사회에는 중간 집단이나 완충 지대가 없습니다.
검은 것 아니면 흰 것이어야 합니다.저는 이러한 현상을 “병든 사회,병든 인간”이라고 지칭하고 싶습니다.한 마디로 말하면 모두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칠 수 있습니까
시편 91:3이하에서 시인은 “이는 저가 너를……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윌리엄 콜드웰은 “치료자를 만나시오”라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어떻게 할까 인명 구조에 관한 책을 던져 주어갸 할까 그러기엔 너무 늦고 급하다.이 사람에게는 인명 구조원이 필요하다.어떤 사람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어떻게 할까 신유에 관한 강의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이 사람에게 치료에 관한 설교나 강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이 사람에게는 치료자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생명 자체이신 치료자 예수를 만나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6:1-3 속에서 우리는 고침받는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병든 것은 똑같이 불행한 일입니다.그리고 고침받는 길이 있다면 빨리 찾아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1.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절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말씀합니다.
“오라”는 것은 초청이고 “돌아가자”는 것은 부탁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오라”,“돌아간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오라”는 것은 떠나간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고 돌아간다는 것은 떠났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치료해 주시고 싸매어 주신다는 것이 1절의 약속입니다.창세기 3장을 보면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이 두려운 나머지 숨는 장면이 나옵니다.
3:8을 보면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고 했습니다.그들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마음이 떠나버렸음을 의미합니다.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순간 불안과 절망과 질병과 고통이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병을 고치려면 병운으로부터 도망칠 것이 아니라 명의를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영원한 치료자이시며 간호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그 행위를 가리켜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 드라마에 맹인 목사인 윤인수 목사의 간증 드라마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중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어린 소년 윤인수가 길거리에 나가 신문을 팔고 구두닦기를 시작했습니다.친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윤인수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어느 날 윤인수는 열심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기뻐하며 그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았습니다.돈을 받아 든 어머니는 윤인수의 등을 두들겨 주며 “십일조를 먼저 떼자”고 했습니다.윤인수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십일조는 무슨 십일조인가,하나님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단 말인가,나의 눈은 멀게 했고 엄마는 병들게 했고 공산당에게 쫓겨 피난민 신세가 되게 했고 재산도 다 빼앗기게 한 그런 하나님께 무슨 놈의 십일조를 내라느냐”며 항변했습니다.그러나 그의 병든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꼬옥 쥔 다음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원통하고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뭐가 남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이 이야기는 건강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그리고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와 잃어버린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교훈과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우리 모두는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힘써 하나님을 찾고 아는 것입니다.
3절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알자” 혹은 “안다”라는 동사는 단순한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전제로 한 지식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잠언 2:7에서 밝힌 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여호와를 알자”라는 말씀은 힘써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고치시고 싸매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라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중병을 치료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방법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간경화로 고생하며 투병 생활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좋다는 비방이나 처방을 가르쳐 주는데 1년 후에 꼽아 보니까 70가지가 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든 우리 시대를 고치고 병든 인간을 치료하는 길은 70가지가 아니라 단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그것은 하나님만이 고치시고 치료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절은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도 은혜와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예를 들면 우리를 고치시긴 하지만 10년이 걸린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여기서 말하는 2-3일은 금방,곧,즉시라는 시간적인 단축성을 의미합니다.
만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께서 3년이나 30년 후에 부활하셨다면 부활의 가치나 의미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금요일 오전 11시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날짜로는 3일이지만 시간적으로는 3일이 못 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연못물을 천사가 동하게 할 때 먼저 뛰어들면 치료된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 있었습니다.베데스다 연못을 찾아오신 주님에게 38년된 병자는 “물이 동할 때 나를 넣어 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누워 있다”고 신세 타령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님은 즉시 “일어나라 그리고 네 침상을 메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날 그 시간 이후로 38년된 그의 절망과 고통과 불행이 사라지고 찬란한 인생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우리 병든 사회와 병든 역사와 병든 정신과 병든 영혼을 고칠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창조하신 하나님에게만 그 능력이 있습니다.
주여,지금 우리를 고쳐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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