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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두 돌의 기념비 (수 04:1-9)

첨부 1


Ⅰ. 역사적인 요단강 도하
논지:어려울 때 공동체가 일치단결해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또한 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념하여 영원히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목표 의식을 잃지 말라. 목표를 보고 가는 자는 장애물을 겁내지 아니한다.’라고 누군가 말하였습니다.
저 가나안 행군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느보산에서 저들의 지도자 모세와 이별하는 슬픔을 씻고, 하나님께서 저들 가운데 세워 주신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모세를 붙잡고 이스라엘의 가나안 행군을 진행시킨 하나님은 또 다시 여호수아를 붙잡고 남은 이스라엘의 광야 행진을 계속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는 가나안 행군의 마지막 코스를 영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임마누엘의 사인을 받은 후, 요단강 건너편에 우뚝 서 있는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정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 유명한 역사적인 요단강 도하 작전을 감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의 요단강 도하 작전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을 향하여 출발하고(수3:3), 백성은 그 뒤를 따르도록 하였습니다(수3:3).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백성들 앞서 나아가 (수3:6,14), 강 언덕까지 넘치는 요단강 물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수3:8,15).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속에 잠기자(수3:13-15), 흘러가던 요단강 물이 마르고 그 강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수3:16). 이때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육지같이 요단강 바닥을 발로 밟고 지나가고 말았습니다(수3:16,17). 이것은 온 땅의 주 여호와께서 행하신 기적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향방은 분명히 요단 곧 가나안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온 백성이 모두 건넜습니다(수3:17,4:1,11). 건널 때 저들은 신속히 건넜습니다(수4:10). 하나님의 목전에서 건넜습니다(수4:11).
백성들이 말라 버린 요단강 바닥을 건너는 동안에 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강 바닥 가장 깊은 곳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수3:17). 그리고 백성이 건너기를 마쳤을 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올라왔습니다(수4:15-18). 저들의 발이 요단강에서 올라오자마자 멈추었던 요단강 물은 흐르기를 시작했습니다(수4:18). 그렇다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제일 먼저 요단강에 들어가고, 제일 마지막으로 요단강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물론 저들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자신의 명령에 의해서였습니다.
Ⅱ.열두 돌의 기념비
이 엄청난 요단강 도하 작전이 진행될 때 하나님은 또 하나의 작전을 진행시켰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한 사람씩 대표를 뽑아, 그 열두 사람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한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들의 곁으로 가게 한 일입니다.
저들로 거기 제사장들의 발이 멈추고 있는 요단강 바닥에서 각기 돌을 두 개씩 취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스물네 개의 돌이 됩니다. 그 중에 열두 돌은 요단강 한가운데 기념비로 세우게 하였습니다. 바로 그곳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멈추고 있는 그 장소였습니다(수4:9).
그리고 남은 열두 돌은 자기들이 유숙하는 곳, 길갈로 가지고 와서 거기에 기념비를 세우게 한 것입니다. 저들이 요단을 건넌 후, 진을 쳤던 길갈에 열두 돌의 기념비를 세운 때가 정월 10일이었습니다.(수4:19). 바로 이날은 이스라엘이 40년 전에 출애굽의 명령을 받고, 애굽 고센 땅에서 양을 잡아 마지막 식사를 하고, 저 유명한 유월절을 창조해 내던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출12:3). 그렇다면 열두 돌의 기념비는 두 곳에 세워진 것입니다. 하나는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서 있던 요단강 바닥 한복판이었고(수4:9), 또 하나는 저들이 요단강 도하 이후에 머물렀던 길갈이었습니다(수4:20).
여기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의 대표를 뽑았습니다. 저들은 백성 중에 열두 돌의 기념비를 위하여 부름 받고, 또 그 일을 성취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신 무거운 멍에를 메고 수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Ⅲ. 기념비의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요단강 도하 작전 중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요단강 한복판과 길갈에 열두 돌을 세워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본문 여호수아 4장6절과 21절에 「돌들이 무슨 뜻이뇨」고 후일에 역사는 질문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한 기념이 도리라(수4:7)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표징’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수4:6). 하나님은 말 못하는 돌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기념’이란 말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유월절이 출애굽을 기억나게 함과 같고(출12:14), 도움의 돌(에벤에셀)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나게 함과 같은 것입니다(삼상7:12). 부림절이, 유대인이 하만의 간계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음을 기억나게 함과 같습니다(스9:23,24,26,28,31). 그리고 성찬 예식이 우리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함과 같습니다(눅22:19).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그 영영한 기념이 무엇인가 표징이 무엇인가

1. 능력의 하나님을 영원히 믿는 것을 뜻합니다.
후일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길갈에 세워진 열두 돌을 보고 하나님께서 저들 조상에게 행하신 능하신 구원을, 베푸신 큰 사랑과 자비를 그리고 은혜를 입어 기적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4장24절에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믿음을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4장24절 하반절이 또 말하기를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요단강을 마르게 하신 것은, 저들이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굳게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세 시대에 홍해를 건넌 이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굳게 믿고 가나안 행군을 계속하게 한 것입니다. 저들의 후손들이 여호수아 시대의 요단강 도하의 이적을 본 것은 앞으로 전개될 여리고성 함락, 아이성 점령, 가나안 7족속과의 접전 그리고 기업지 분배라고 하는 대업들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단강을 마르게 하신 일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본 이스라엘 공동체는, 그 능력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저들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과업들을 수행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로빈슨 크루소가 항해 중에 파선을 당하여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닿았을 때, 사람의 발자국을 보고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을 찾아 항해하던 필그림들은 바다 위에 떠 오는 뗏목 조각을 보고 육지가 있다는 즐거움에 잡겼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 도하의 기적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의 구원의 역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임을 기념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대표자 한 사람씩을 뽑게 하였습니다. 그들로 그 수효대로 열두 돌을 취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열두 돌을 한 묶음으로한 기념비를 만들었습니다(수4:2,3,5,7,8,20).
바로 이것은 , 저들은 한 하나님과 한 조상의 한 자손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이 바로 여호수아와 저들의 하나님이요, 저들은 그 하나님의 한 백성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들은 한 하나님과 한 조상을 가졌고, 또 동일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열두 돌’이 함께 뭉쳐 있듯이 저들은 일치단결하고 대동단결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구원의 은총에도 하나요, 믿음에도 하나요, 하나님을 섬기고, 헌신하고, 따름에도 하나인 열두 돌이라는 사실입니다.

3. 그것은 옛사람의 장사(葬事)와 새사람의 새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대표들은 돌 열두 개를 취하여 요단강 바닥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수4:9). 나중에 물이 흐를 때 그것은 물속으로 잠겨 버렸습니다. 다시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옛사람, 옛역사의 죽음을 뜻합니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노예 생활의 마지막을 뜻합니다. 애굽의 고역과 가나안을 향한 행군의 종지부를 뜻합니다. 광야 40년의 진통의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육지인 길갈에 또 열두 돌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새출발, 새역사를 의미합니다. 새로운 여호수아 시대, 새로운 가나안 복지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약적으로 말할 때 옛사람의 장사, 새사람의 태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열두 돌의 기념비!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념이 되어 버린 열두 돌!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수4:6).
이것은 마치 군대의 행할 곳을 보여 주는 군기(민2:2)나, 일의 결과를 남겨 주는 표적(창4:15)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알리는 표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여호와 경외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공동체 의식의 상징(symbol)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새 결심, 새 출발, 새 역사를 알리는 소망의 신호탄이었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 중에 여호수아 시대를 허락하시면서 요단강 도하 작전을 나타냄으로, 구원에 능하신 분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적인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는 열두 돌을 세우게 함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기념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침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실 능하신 하나님을 알려 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한가운데 영원한 기념비를 세우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가지고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는 반석이요, 살아 계신 돌이시요(산 돌), 뜨인 돌이십니다.
예수 십자가는 ,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세운 영원한 기념비입니다. 구원의 기념비입니다. 생명(영생)의 기념비입니다. 사랑의 기념비입니다. 소망의 기념비가 되십니다.
바로 그 십자가의 기념비가 무엇인가 오늘 지상에 세워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 중에 영원한 ‘표징’이 됩니다. 교회는 이미 주께서 세워 주신 것입니다(마16:18).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주고 세워 주신 것입니다(행20:28). 그 교회는 이 지상에 흩어져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를 위하여 교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이루어 놓으신 구원 그리고 교회를 이룩해 나가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두 돌을 세우므로 요단강이 갈라진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세운 열두 돌은 요단강을 갈라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기념하고, 후대에 이것을 계승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역사 계승의 광장에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은 새성전 건축은, 바로 요단강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열두 돌 기념비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 구원의 능력과 사랑을 기념하고, 이웃과 후대에 알리는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새성전을 짓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교회는 우리 중에 영원한 구원의 표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영원한 기념의 장소가 됩니다. 능력의 주님을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구원의 능력, 사죄의 능력, 영생의 능력을 기념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교회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의 장소입니다. 열두 돌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의미하고, 그것이 하나의 공동체인 것과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사랑도 하나임을 고백하는 장소가 교회입니다.
뿐아니라 주 예수의 교회는 옛사람의 장사, 새사람의 태동과 출발을 알리는 장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 안에 거하는 집입니다.
그래서 우리 경향인 모두는 이 기념비적인 주님의 교회당을 세우는 데 열두 돌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예롭고, 복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만큼 이것은 또한 수고와, 죽음에 이르는 고통과 희생이 수반됩니다.
윌리암 펜(William Penn)은 ‘고통이 없으면 승리가 없고, 가시관이 없으면 보좌도 없으며,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열두 돌의 기념비를 세우고, 보이는 곳에도 열두 돌의 기념비를 세우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간직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교회, 곧 열두 돌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새성전 역사(役事)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영원한 기념비가 되고, 표징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축복의 역사에 충성을 다합시다. 이 역사는 경건자의 고장, 종말을 향한 세계 선교의 표징이 되고, 기념비적 산실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참고:월간 경향교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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