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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럴 때 풍랑을 만난다 (행 2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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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위대한 사도바울 선생이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당시 전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 복음 전파의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알렉산드리아호]를 타고 지중해를 항해하다가 유라굴라라는 광풍(풍랑)을 만나 파선 당한 사지에서 구출 받은 스릴 넘치는 항해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주경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인생들이 고해 같은 이 세상 풍랑에서 시달려 신음하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유명한 인생항해 기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란 지중해 바다와 같아서 때때로 유라굴라와 같은 광풍이 일어나 인명과 재산에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풍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갈리리 바다를 향해하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엄습해 온 것처럼 이 세상 항구를 떠나 저 천성을 향해하는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도 풍랑이 엄습해 오는 경우가 없지 아니 하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엄습해오는 풍랑 속에서 우리 신앙인 들은 어떻게 처세해야 되겠는지 본문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세 번째 전도 여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동족들의 반대와 핍박으로 죄수가 되어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가는 길입니다. 바울과 일행을 태운 배가 로마를 향하여 가던 도중에 무서운 폭풍을 만나 배는 파선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으나 결국 파선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은 채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배가 출발할 때부터 파선 직전 배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알렉산드리아라] 하는 큰배가 [그레데]라는 해변을 끼고 항해 하다가 큰 풍랑을 만난다. 왜 이 큰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과 풍랑을 만난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한다.

1.이달리아행 출항로마-“가이사랴에서 그레데까지”(1-8절)
바울 일행은 항로를 이탈리아로마에 가기로 작정되었다 [가이사랴]에게 가기로 행25:12절에서 [베스도]가 이미 결재했고 행26:32절에서 [아그립바왕]도 승인한 사실이기 때문에 [로마]행이 실행된 것입니다1)2년간을 [가이사랴]에서 허송세월 하던 바울은 몇 사람의 죄수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인 몸으로 파도 높은 지중해를 건너게 되었다 [아드라못데노호]
동포의 박해로 결박되어 조국을 떠나는 바울 곁에는 우리들 이라는 동역 자들이 있었는데 본문 기자 [누가]와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동행하니 다행한 일이었다(2절)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노예로 명단에 올림으로서 바울의 수행원이 되어 바울을 도왔기 때문에 비록 죄수의 몸이지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2절에 보니까 작은 위로가 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마게도냐]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간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19:29에 보면 [에베소]에서 대소동이 일어날 때입니다. 바울이 피신을 해나가는데 대신 잡힌 사람이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입니다. 크게는 안 나타나는데 작게 나타납니다. 이 사람은 사도행전 20:4에도 핍박이 왔을 때 [드로아]에 미리 가서 바울의 길을 마련해 줍니다. 유일하게 [아리스다고]가 바울이 호송되어 가는 그 배에 같이 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바울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2)인솔자 백부장 [율리오가] 가이사랴에서 떠나갈 때 시돈 기항지에서 바울을 친절하게 대해주어 친구들에게 대접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3절)
사명을 감당 하고자 하는 바울에게 백부장 [율리오가]가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보게된다 [율리오가]가 이런 친절을 베푼 이유는 바울의 로마 시민권에 대한 우대가 아니라 사도의 인격에 감화되어 선대한 것을 보게된다
과연 우리는 주의 종으로서 사명 자로서 믿는 성도로서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있고 감화를 주고 있는지 반성 해 보라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절, 이러한 바울에게 또 하나의 위로가 있었는데 그것은 가이사를 떠나 시돈에 잠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서 전도했던 사람, 안면 있던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큰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크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보일 듯 말듯하게, 잠깐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3)바울의 일행이 처음으로 승선한 배는 아시아 연한 여러곳을 향해하는 [아드라못데노호]이다(2절)
이 배는 [시돈]을 떠나 [구브로]섬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 하여 루기아의 [무라성]에 기항하였다 소아시아 연안을 행선 하는 바울은 옛날 전도하던 곳을 바라보면서 나이 어린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고 [구보로]섬을 바라보는 바울은 전도의 전우 [바나바]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4)때마침 이 달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호의 배를 만나 승선했다(6절)
루기아의 무라성에서 [알렉산드리아] 배를 갈아타고 [니도] 맞은편에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미항에서 기항하였다 이 배는 곡물 운반의 무역선으로 276명에 승선 할 수 있는 큰배이다(37절)
5)이 배가 [무라]에서 220KM 거리에 있는 [니도]에 이르렀다(7절)
순풍이면 하루거리이지만 풍랑이 심했든지 여러날 행선 했다 일기가 불순하여 [살모네]앞을 지나 [그레데섬]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 하여 [미항]에 이르렀다(8절)

2.풍랑을 만난 바울의 일행(9-20절)
오늘 본문에 보면 [알렉산드리아]라 하는 큰배가 [그레데]라는 해변을 끼고 항해하다가 큰 풍랑을 만난다. 왜 이 큰배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과 풍랑을 만난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한다.
[미항]에서 과 동하자고 바울은 권했으나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라 [뵈닉스]로 가려고 [미항]을 떠나 가다가 얼마 안되어 풍랑을 만나 14일간이나 바다에서 시달려서 거의 죽게되었다 그 원인은....1)풍랑을 만난 원인(9-13절)
(1)때가 위험한 시기였으므로(9절)
금식 기간이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험하게 되었다(9절) 즉 9월 14일부터 11일 까지는 항해에 위험한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3개월 동안은 지중해 항해는 중지된다 28:11절에 석달 후에 우리는 그 섬에서 겨울을 지냈다는 것은 이 기간으로 지금의 11월 12월 1월의 석달에 해당된다
금식 기간이란 속죄 일로 티슈리(Tishri)달 10일 즉 성력 7월 10일이요 양력 9월과 10월 사이다 이때부터 3개월 동안 풍랑이 심해서 당시의 풍 범선으로는 지중해 항해가 어려운 시기이다
지중해 상에서 세번 파선의 경험을 가진 (고후11:25) 바울은 출항의 위험을 알고 생명까지도 잃은 것 같다고 하지만 [뵈닉스]로 가서 겨울을 지나자고 선장과 선주는 주장했다(10-12절) [뵈닉스]는 [그레데]항구의 하나로 서북풍을 막아 온화한 곳이다
오늘의 이 시대가 이런 위험한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이상적이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이미 낡은 사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세적이요 실리를 추구하며 국제적 관계로 신의보다 실리를 첫째로 하고 있습니다 현 사회 생활에서는 정직이라든가 성실보다 이기주의에 급급합니다
윤리만 하더라도 성도덕의 퇴폐 이혼율의 증가 등의 생활이 되어 가는 것이 오늘의 사회입니다 이런 퇴폐 한 윤리관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진실하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여튼 현세 문화 문명이 편의와 살기 좋은 세상을 가져 왔으나 항해하기에 심히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여 기도하고 영적으로 무장하여 세상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됩시다(벧전4:7-8)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자연적 인간적 영적으로 밤을 맞이하여 새벽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조심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야합니다(롬13:11-1

4.딤후4:7-8)
(2)일시적 불편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에(12절)
12절에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함으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 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여기의 과 동하다 말은 겨울을 지나기가 불편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레데] 항구의 지리적 상황은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한 고로 겨울에 찬바람인 서북풍을 막고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 그래서 [그레데] 항구를 선택한 것인데 가다가 가지도 못하고 중도에 풍랑을 만났던 것이었다. 육신 적인 안일과 일시적인 불편을 피하려는 생각을 했던 결과였다.
선장과 선주들은 빈약한 촌락 [미항]보다 번화하고 일기가 따스한 [뵈닉스]에서 과 동하다 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시적 고통을 피하려다가 돌이켜 어려운 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히11:24-26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영분 밖의 길이요 좁은 길이기에 이 길을 걷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마16:24) 그리고 주를 위해 죽고자하면 살고 나를 위해 살고자 하면 죽는 것이 성경의 진리요 역설적인 진리인 것입니다(마16:25-26)
1561년 [칼빈]의 기독교 강요 책 겉장에 두 문의 그림이 있는데 하나는 입구에 가시 덩 쿨이 있으나 그 넘어 에는 면류관이 있는 좁은 문이요 또한 문은 입구에는 꽃이 있으나 그 넘어 에는 활활 타는 불길이 있는 넓은 길이였습니다 좁은 길은 우선 보기에 괴로움이 있으나 마지막 영생의 축복이 있는 길이요 넓은 길은 우선 보기에 좋으나 멸망의 길입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좁은 길을 걷고자 하는 자에게 영광스러운 면류관과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3)때아닌 순풍에 속은 것입니다(13절)
13절에는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 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따라 가까이 하고 행선 하더니 때아닌 남풍이 순하게 불어 왔다. 남풍을 조심해야 한다. 순풍을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남풍이 순하게 불더라도 그것이 영적인 일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 순한 남풍일지라도 불때 불어야지 때가 아닐 땐 위험한 것이다. 순한 것이라고 반듯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때아닌 남풍을 믿다가 때아닌 순풍을 믿다가 백부 장과 [알렉산드리아]호는 풍랑을 만났던 것이다. 풍랑을 만났던 것이다.
세상에는 임시적 고난을 통해 항구적 평안에 이르는 길과 임시적 낙을 추구하다가 항구적 고난에 빠지는 두 길이 있다 전자는 지혜자의 길이요 후자는 어리석은 자의 길입니다 분명히 신앙은 전자에 속합니다 기회주의자는 오직 일시적 이권에만 의지하여 사리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들에게 항구적 신조라든가 지조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얕은 꾀 에 빠져 큰일을 그르치고 영원한 파멸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기회주의자는 일시적 이해 타산에서 행동하고 신앙 자는 영원한 천국을 향하는 자세에서 사는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를 보세요 [니느웨]성으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할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욘1“3) 마침 이라는 말에 주의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고 할 때에 안성맞춤으로 사탄이 배를 준비하여 우리를 기다리며 아주 힘써 우리를 돕는 척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요10:10)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고 불순종의 길로 가는데도 무슨 일이 잘 된다고 속지 마세요 사명을 망각하고 인본주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일이 잘된다고 속지 마세요 기도 안하고 자기 생각 데로 계산하고 나아가는 데도 일 잘된다고 착각하지 말고 속지 마세요 빨리 깨 달고 회개하고 정신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때아닌 순풍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일시적인 성공이 눈앞에 보인다고 아무 것이 마구 대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분명한 성공의 길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김에 방해가 된다면 아니 말씀을 순종하는 일에 장해가 되는지를 알아 보아야한다.
양심의 가책을 억누르고 출세하면 무엇하나 중상모략을 하면서 남보다 앞서면 무엇하나 잠시의 세상 락 보다는 내일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길 바란다.
(4)바 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지휘자 백부 장이 더 믿었기 때문이다(11절)
11절에 백부 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했다. 그럴듯한 말입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사실 바다와 기후에 대해서 선장과 선주만큼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 말로 그들은 전문가입니다. 여러분, 모든 얘기를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보다는 바다의 경험이 많은 산장과 선주의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이 백부 장으로서는 올바른 선택이었고 사리 분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죄수요 외모도 별 볼일 없는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이 착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별로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뭘 알아 하고 무시 해버렸습니다
이것은 백부 장이 세상 적인 지식을 바울의 말보다 더 중시했었다. 세상 적인 경험을 바울의 말보다 더 신뢰했다. 이 말은 세상의 지식이 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세상의 상식과 경험이 쓸데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이런 것들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믿은 결과가 풍랑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기까지 단 한 번도 저들의 영혼을 위한 것들 때문에 무엇을 했다는 말이 없다,. 전부가 세상 적인 일들이었다. 전부가 육신 적인 일들이었다. 육신 육신의 일만 하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다.
백부 장에게는 항해에 있어서 세 사람의 고문이 있었습니다 [선장]과 [선주]와 [바울] 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는 가자고 했고 죄수인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만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 장]은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믿고 출발했습니다
①선주는 돈을 중시했습니다-미 항에 머무는 것보다 출항하는 것이 경제적 이익이 된다고 믿었기에 빨리 출항하는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②선장은 오랜 경험과 항해의 지식 항해의 기술을 믿어 과신을 했던 것입니다-이쯤 되는 순풍의 여건이라면 로마까지 무사히 가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③바울은 신앙 인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그는 불어오는 순풍을 보지 않고 경제적 타산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든지 무엇에든지 어디에서든지 주님의 뜻대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여기 백부 장은 중요한 결정의 마당에서 선주와 선장의 말을 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인생의 승패는 결정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돈 기술 또는 신앙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라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백부장이 선주와 선장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는 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믿어야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의 말을 더 믿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선장 선주의 입장-많은 승객들의 주장-백부장의 [율리오]의 선택과 명령-결과는 [유라굴라] 광풍을 만남”
(5)다수의 의견을 앞세웠기 때문이다(12절)
민주주의 정치가 공산주의 정치보다는 월등히 우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불법을 자행한다면 선한 소수보다 훨씬 악할 수도 있다. 백부 장은 바울 한 사람의 말보다는 많은 다수를 앞세웠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백부장의 처신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늘 다수가 정당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교회일 수록 더 그렇다. 하나님의 일일 수록 더 그렇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을 하고 말았다. 예루살렘 성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심판을 면하지 못했다.(창18:22-3

3. 렘5:1)
구약시대에도 다수를 택하다가 망한 왕들이 있다. 대하18:12절 미가야 선지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 일 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중 한 사람처럼 길하게 하소서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실을 가리켜 맹세 하노니 내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이 말은 당시 미가야 시대에 왕에게 좋은 말만 전하는 선지자가 무려 400명이나 있었다. 그런데 [미가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을 곶이 곳대로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왕은 다수의 선지의 말을 택했다. 물론 결과는 다수를 택한 왕은 망하고 말았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다수를 위한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시기를 바란다. 기도교의 정치는 독재 정치도 아니고 민주 정치도 아니고 신정 정치임을 명심하여 다수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전10:5-6 “그러나 저희의 다수(多數)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풍랑을 만난 결과(파산 당한 내용)(14-20절)
(1)앞길이 막혔다(15-17절)-“유라굴로라는 풍랑을 만나 정상적인 항해가 불가능해졌다”
15-17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 루를 잡아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가라사대 한번 달으면 열 사람이 없고 열면 달을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가로막았으니 누가 어떻게 그 문을 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마는 것이다
계3:7-8절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 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 하였도다”
(2)물질적 손해를 봄(18-19절)-“화물과 선구를 바다 물에 다 버렸다”
18-19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갈 때 부자로 나갔지만 빈손이요 거지가 되어 돌아왔다 나오미의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베들레헴]에서 떠나 모압으로 내려가서 10년만에 남편과 두 아들과 모든 재산을 다 허비하고 비어 돌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을 떠난 결과는 더 물질적 손해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3)더 죽게됨(20절)-“삶의 소망이 다 끊어졌다”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하였다
거센 풍랑 앞에서는 인간의 문명도 속수 무책이고 인간의 지식과 경험도 무력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더 신본주의로 살지 못하고 이기주의로 살 때 잘되는 것 같지만 더 죽게 되는 모습을 보게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되어 주시고 능력과 소망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4)빈 털털이가 됨(21절)-“여러 날 오래 먹지 못함”
21절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다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일확천금의 욕심을 품고 외국 무역 길을 떠났던 무역회사 사장들은 적수 공권이 되었고 인간 항 락에 도취되어 호화선을 타고 로마로 여행 가던 많은 관광객들은 일장 춘몽이 되어졌고 학 박사의 꿈을 지니고 로마로 유학 가던 젊은 학도들은 문자 그대로 열매 없이 시들어버린 한 송이 꽃과 같이 되어지고 말았습니다 빈털터리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율적으로 살아 보려고 하던 인생의 마지막 길임을 입증 해주고 있습니다
현 하 이 세상에는 잔잔한 바람도 불어오지마는 때때로 [유라굴라]와 같은 광풍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6.25 전쟁이라던 지 I. M. F의 풍랑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제 3차 대전이라는 풍랑이 엄습해 옵니다
3)풍랑과 파선 위기에 신앙인 이 취해야할 태도와 처세 방법은...
(1)깨진 배속에서 깊이 기도하였다(21절)
사도 바울은 276명중의 한 사람이다. 다 같은 사람이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배 안에는 크게 대별되는 사건을 찾을 수가 있다. 한 사건은 큰 풍랑으로 인하여 아우성을 치고 짐짝을 바다에 내어버리면서 난리를 떨고 있는 사건이고 또 다른 사건은 그 풍랑의 와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 해서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이 대작할 때 사람들의 방법과 힘과 경력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믿는 무리들이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면서도 같은 풍랑을 만났으면서도 그 살아가는 방법이 얼마나 다른가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재주와 힘과 능력으로 발버둥치고 있을 때 고요히 전 능자 하나님을 향하여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여러분들은 예기치 못했던 어려운 일들을 만나면 무엇부터 하시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을 하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도하고 나서 그 일을 하시는가 지금이라도 기도로 시작하지 못한 일이 있거든 이 시간에 그 일을 위하여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사람이 가는 길에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바쁘기 때문에 기도한다 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 풍랑의 와중에도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평소에 기도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곳에서 이런 와중에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일 매일 정한 기도의 시간을 두시기 바란다.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오는 광풍에 깨어져 배속에 떨고있는 선장과 맥 잃은 백부 장 낙심한 승객들 사이에서 배 밑창 깊이 들어박혀 14주야를 여호와께 매달려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울이었다
[바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어려운 인생에 [유라굴라]라는 광풍이 불어오면 낙심치 않고 역사를 지배하는 하나님께 무릅을 끓어 시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시50:14-15,23)
시50: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22-26절)
지혜로운 선장은 항상 라디오에 귀를 기울입니다 또 중앙 기상대의 일기 예보를 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명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참 성도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두 가지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또 하나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우리가 어느 음성에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습니다
①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0-23절)
이방 수도 [니느웨] 전도의 명령을 거역한 [요나]는 지중해 바다에 던 지움이 마땅하지만 복음 전파를 위해 이방의 수도 로마를 찾아가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을 지중해에 던질 이유가 없으니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②너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는 것이다(24절)
바울은 로마 전도를 위해 결심했고 또 계획하고 있었다 [에베소]에 있을 때 “내가 거기 갔다가 꼭 로마로 가 보아야겠다”(행19:21)고 결심했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그 날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용기를 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거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해야 한다”(행23:11)고 체포된 상태로 로마까지 전도하려 갈 것을 보여 주었다
[가이사랴]에서 바울은 “나는 가이사에게 상소한다”(행25:11)고 했는데 지금 풍랑 중에 처음으로 주의 사자가 “너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설 것이라”고 사명을 보증하는 것이다
③너와 함께 타고 가는 많은 사람을 다 네게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24절)
이 배의 주인은 백부 장이나 선장이나 선주가 아니라 바울이 그들의 생명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신령한 생명을 맡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파숫 군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ㄱ. 지키는 것-보호하는 것(기도)
ㄴ. 전하는 것-알리는 것(전도)
(3)신음하는 276명에게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25-26절)
바울은 풍랑 속에 허덕이는 그들을 향하여 안심하라 용기를 내라(22-25)고 했다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으니 안심하라고 위로했다(25) 그리고 안심할 구체적인 증거로 이 배가 한 섬에 걸리리라고 했다(26) “세상에 풍랑이 심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곁에 서서 안심하라고 하신다”
(4)전 선원이 사도 바울의 말에 행동하고 그들을 끝까지 배에 머물러 있었다(31절)
만일 바울의 환상에 대해서 전 선원들이 순종하지 않았던들 구원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바울이 받았던 하늘의 환상에 그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바울이 떡을 먹으라 할 때 그대로 순종하여 떡을 떼어먹었습니다 이제 바울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또 순종하지 않았다가 멸망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종으로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나 자기의 고집과 욕심으로 살다가 마침내 저버림을 받아 멸망한 것이다
그들은 환상을 봄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순종하여 그 뜻이 완성된 것이다 31절에 이 사람들이 이 배에 잇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중쯤 배가 육지에 가까이 오자 풍랑에 시달리던 사공들은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을 치려고 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이야 죽거나 말거나 저희들만 살면 그 만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사명은 바울 일행은 어려운 풍랑 속에서도 로마에까지 인도하는 일인데 그만 그 사명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한 사람도 도망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도망치면 살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내가 풍랑 속에 살아나는 비결은 교회 안에 머물러 있어야 되지 떠나면 더 멸망당한다 하나님께 속한 성도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기관이나 혹은 구역에 묶이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환란 중에도 나의 신앙을 지키며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시험을 당해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붙어 있어야 한다 가령 노아의 방주를 생각하건대 천하를 뒤엎는 대 홍수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오직 그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8식구만 구원과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3.풍랑 속에서 구원받음(27-44절) 1)34절-음식을 먹으라고 권고합니다.
저들은 14일 동안 공포 속에 제대로 식사도 못했을 것이다. 주린 체력으로는 육지가지 헤엄칠 수 없기 때문에 체력을 회복하여 마지막 구원에 대비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리털 하나라도 잃지 않은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그들은 안심하고 받아먹고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는 바울이었다
신앙생활에 육신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혼에는 영 력이 있어야하고 육신에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음식을 먹고 건강하여 힘을 내야 어려운 풍랑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딤후2:1 엡3:16-20)
2)35절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먹기 시작하매
여기에 모든 사람이라면 배 안에 있는 전부를 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 이들의 종교가 다양했을 텐데 저들 모두를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하고 있는 바울이다.
바울의 지시대로 모든 사람들이 다 순종하고 따랐다. 선장도 선주도 그리고 백부 장과 군인들도 다 바울이 시키는 대로 하고있다. 당시의 관례로는 하나님께 축사를 할 때는 축사를 받는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아드리아] 바다에 표류하다가 사공들이 육지 가까운 것을 짐작한 후 많은 선객들을 구출할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네만 살려고 “이 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30절) 바울이 이를 눈치채고 백부 장을 시켜 거룻 줄을 끊어 때어 버리게 하였다
그리고 열 나흘이나 먹지 못한 선객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고 배에 있는 276명의 생명의 안전을 약속하였다 드디어 배는 파선되었다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도 도망할까 하여 죽이려는 것을 백부 장이 바울을 구하려고 이를 만류하고 우선 헤엄 칠 줄 아는 사람들은 먼저 물에 뛰어내려 육지로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상륙하게 되니 한 사람도 희생자가 없이 다 구원되었다
3)39-41절, 여기서 의미 있는 것은 배는 인간의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진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안 깨지게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배는 깨져 버립니다. 짐도 배도 다 깨져 버립니다. 여러분 소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지 못합니다. 의지할 것이 있으면 그것이 사람이건, 돈이건, 권력이건, 인간이 의지할 것이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내게 많은 소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 소유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4)결국 그 배는 깨지게 됩니다. 배가 깨지게 될 때 사람들은 그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물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죄수가 탈출하면 간수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인들은 죄수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를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바울을 죽이지 못하게 합니다.
5)42-44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입니다.
인생의 결론은 다 좋게 될 것입니다. 지금 고난이 있지만, 역경이 있지만 마침내 사람들을 다 구원한 것처럼, 짐은 다 없어 졌지만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부장을 이용하십니다. 유라굴로의 광풍도 이용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다 구원을 받았더라. 바울 한 사람 때문에 276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몇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유라굴로]의 광풍이 있지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을 지라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결론
이 풍랑은 “기도하라는 신호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는 소리요” “복음 전파하라는 신호요” “교회 안에 더 붙어 있으라는 신호입니다”
인생은 풍랑을 만나게 되는 항해와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유대인의 미움을 받고 죄인으로 포로가 되어 [율리오]라는 백부장에 맡겨져 로마 [가이샤]의 재판을 받기 위해 [알렉산드리아호]라는 배에 태워져 로마로 가게 될 때 [유로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 배가 파선되는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바울에게는 이 광풍이 얼마나 고마운 광풍인지 모릅니다. 물론 바울에게 고생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풍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특히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성령 충만 받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는 광풍은 하나님의 보호요, 은혜요, 기적의 기회요, 축복이 되며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음으로 산다면 풍랑을 무서워 말고 풍랑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을 구하십시다.

알렉산드라아호의 파선(행27장)
“이럴 때 풍랑을 만난다”
로마 행
알렉산드리아호의 파선(행27:9-26절)
무역선 276명이 탐

1.이달리아 행 출항(로마)

2.풍랑을 만난 바 울의 일행1)원인-위험한 시기, 안일주의, 순풍에 속음.
선주. 선장. 말을 더 믿음, 다수의 의견을 따름
2)결과-앞길이 막힘, 물질적 손해를 봄, 더 죽게됨,
빈 털털 이가 됨
3)자세-기도함, 하나님의 음성, 말씀을 전함, 끝까지
순종

3.풍랑에서 구원받음

알렉산드리아호의 파선(행27:9-26절)

1.이달리아행로마-가이사랴에서 그레데까지(1-8절)
가이사랴
율리오가
아드라못데노호
알렉산드리아
이 배가 무라에서 220KM 거리에 있는 니도에 이르렀다

2.풍랑을 만난 바울의 일행(9-20)1)풍랑을 만난 원인(9-13)
때가 위험한 시기
일시적 불편을 피함
다수의 의견을 따름
때아닌 순풍에 속음
선장 선주를 더 믿음
2)풍랑을 만난 결과(14-20)-파산 당한 내용
앞길이 막혔다(15)
물질적 손해를 봄(18-19)
더 죽게됨(소망이 끊어짐)20
빈 털털이가 됨(21)
3)풍랑과 파선 위기에 신앙 인이 취해야할 태도와 처세 방법은
(1)깨진 배속에서 깊이 기도하였다(21)
(2)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22-26)
무서워 하지 말라
꼭 로마에 가리라
네게 다 맡겼다
(3)신음하는 276명에게 복음을 전함(25-26)
(4)전 선원이 끝까지 배에서 머물러 있었다(31)

3. 풍랑 속에서 구원을 받음(27-44절)1)음식을 먹 으라
2)축사하는 바 울
3)배는 깨지고 말았다
4)배에서 나와야한다
5)마침내 다 상륙하여 다 구원을 받음
풍랑 중에도 담대한 믿음
무디 신학교 학장 [죠지 스웨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위기를 접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의 깊이가 비로소 들어 나게 된다 평시 순탄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신앙의 깊이를 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삶의 진정한 위기가 부딪쳐 왔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들어 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가 미국 선교를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을 때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선교사였습니다. 풍랑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선실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아련히 갑판 쪽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무나 의아해서 나가보니 [모라비안] 교도 몇 사람이 풍랑이 이는 그 와중에 갑판에 꿇어앉아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웨슬레]는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당신들은 풍랑이 두렵지도 않소 그들이 대답합니다. 두렵기는 요, 오히려 더 빨리 갈 수 있으니 감사하지요. 훗날 [웨슬레]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때 풍랑보다 그들의 고백이 더 큰 충격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라비안 형제들과 같은 담대함과 평안함은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서 사도신경을 암송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 사 오며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적용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삶이 풍랑을 만났을 때 ,내가 벼랑 끝에 섰을 때에도 이 고백이 아직도 가능하신 지요 정말로 가능합니까 어느 부부가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풍랑이 닥쳐오자 아내는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지만 남편은 너무나 태연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이 풍랑이 두렵지도 않습니까 남편은 대답대신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고 아내를 죽이려는 듯 칼을 겨누었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어 버렸습니다. 이때 남편이 아내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내가 칼을 겨누고 있는데도 두렵지 않소 아내가 대답합니다. 두렵기는 요 당신이나를 사랑하는 데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그때에 비로소 남편이 칼을 거두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바로 그거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이 풍랑으로 우리를 죽이시겠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 오며 하는 고백이 풍랑 속에서도 여전히 적용된다면 여러분은 풍랑 속에서도 능히 평안 할 수 있습니다. 풍랑중의 평안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이 있기에 생명력은 더욱 강합니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 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런던에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가지고 갈까 하는 것이었다. 모든 어부들이 아무리 잘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 해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꼭 한 어부만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들을 싱싱하게 산채로 런던에 가지고 와서 큰 재미를 보는 것이었다. 동료 어부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어부가 고민 끝에 말하기를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모든 어부들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모두 잡아먹지 않소 라고 이구 동성으로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만 두 세 마리밖에 못 먹지요. 그러나 그 통에 있는 다른 많은 어부들은 잡혀먹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열심히 헤엄치며 살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청어들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다. 고난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삶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주신 의미는 욥에 그 고난의 의미와 이유를 알게 하는데 있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간의 아무런 항의나 요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으로 더욱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신 것을 믿고 고백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욥이 고난 후에 이전에 말로만 듣고 생각만 하던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에서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평안이라고 하는 것은 걱정과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참된 평안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조금 아프면 울 수 있지만 많이 아프면 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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