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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언을 들어야 할 자 (욜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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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상당히 안타까운 징조들이 뒤덮고 있습니다. 그런 징조들을 보통 증후군이란 말로 소개되곤 하는데, 지난 봄에는 사스를 통한 전염병 증후군이 온 세상을 뒤덮어 어수선하였는데, 요즘은 자살 증후군이란 사회적 병리현상이 우리 사회를 심각한 고통 속에 휩싸이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아침에 있었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분이 자살하는 날은 젊은이교회가 태국선교여행을 하고 있던 때인데, 태국의 신문을 보니까 정회장의 투신자살 소식을 그의 사진과 함께 대문짝만한 글자 크기로 1면들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자살한 건수는 13,055건에 이르는데, 이를 나누어보면 하루에 평균 36명이 자살을 한 셈이 됩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는 이제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또 하나 가지게 되었는데 바로 세계 5대 자살국가에 포함이 된다는 뉴스입니다.
사람들은 자살문제가 나올 때마다 대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경기가 침체되어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자가 늘어 자연 실업률이 높아지고, 그것 때문에 신용카드를 이용한 대출이나 사용이 급증하다보니 자연 신용불량자가 속출하게 되는 악순환을 겪을 때마다 그로인한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일들이 빈번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세계5대 자살국가 중에 대부분이 선진국이요 복지사회를 구현하고 있는 나라라는 점입니다. 못 사는 빈민국들에게서 자살률이 더 높아야 경제적인 이유가 설득력이 있는 것인데 상황은 반대라는 것입니다.
동구의 헝거리나 노인들의 천국이라는 복지국가 핀란드나 덴마크,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살지는 못해도 평생 한번은 가보고 싶은 나라 스위스, 그리고 한국이 세계 5대 자살국가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경제적 이유가 아닌 다른 측면에서 자살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감신대 종교사회학 교수인 이원규박사는 이 문제를 가리켜 정체성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잇습니다. 최근 기독교타임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상대적 빈곤의식이 발생할 때, 사회적인 모순으로 회의를 갖게 될 때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자살을 예찬한 니체는 자살을 자유로운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고, 특히 쇼펜하우어는 완전하게 책임질 수 있는 이성적 행위라고 자살을 부추겨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로 하여금 수많은 이들이 자살을 하게 했지만 정작 자신은 장수를 하는 아이러니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임마누엘 칸트는 자살은 자신에 대한 의무에 위반이라고 자살을 경고했고, 더구나 우리 크리스찬들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삶과 죽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자살은 그 하나님의 권리를 침범하는 행위로서 범죄해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곧 자살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아주 어리석은 행위라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복잡한 사상과 이념의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로서는 주님께서 요구하는 진리의 길을 걸으며 성결의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고백하면서 저는 오늘 아침 새로운 강해설교의 본문으로 요엘서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요엘서는 3장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성경이지만 남왕국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브두엘의 아들 요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인데, 그 시대와 오늘 이 시대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저는 요엘서를 통하여 여러분과 함께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먼저 브두엘의 아들 요엘은 1장 2절 말씀에서 이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을 분명히 선택하고 있습니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찌어다.’ 백성 중에서 나이 많은 사람을 구약에서는 장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에서의 장로와는 좀 구별되는 부분입니다. 백성들 중에 나이 많아 존경받고 지도력을 가진 분들을 향해서 요엘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 찌어다.
지금 이 사회가 하나님의 음성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지도자라고 하는 것이지요. 정말 이 사회의 문제는 바로 지도자들의 문제라는 믿습니다. 교회의 문제도 일반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 목사의 문제요 장로의 문제임을 고백합니다. 지도자가 타락하면 사회는 당연히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요엘 선지자는 제일 먼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으로 늙은 자들, 곧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까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하고, 국회위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하고, 장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정치적인 성향과 상관없이 그들은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마치 아닥사스다왕을 위해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던 느헤미야처럼, 우리는 지금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인줄 믿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 앞에 정의로움을 가지고 정치를 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백성을 두려워하는 정치를 하도록 구하는 일은 성도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백성들도 무시하게 되고, 그러면 당연히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이 중요합니다. 경건생활이나 윤리생활에 있어서도 지도자들이 본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끔씩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열심히 기도하는데 그 지도자들은 기도회에 보이지 않는 이상한 모습말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웃기는 일이지요.
예를 들면, 속회의 속도원은 열심히 전도하는데 속장이나 강사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주의 몸된 교회의 서까래라고 생각하는 집사님들은 열심히 기도하는데, 교회의 기둥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권사님이나 장로님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건 정말 웃기는 일이지요. 제발 이런 일로 웃음거리가 안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요엘은 ‘모든 거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함으로서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말씀 듣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패턴은 주로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하지요. 말씀은 짧게 대강하고 2부 순서 3부 순서는 화끈하게 합시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거민들이 말씀듣기를 원한다고 하면, 다름아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말씀을 청종해야할 주인공임을 믿고 우리의 삶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남왕국 예루살렘에서 활동하던 요엘은 유다의 범죄에 대해서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세상 끝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과 영광을 선포합니다. 다른 예언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요엘 선지자는 심판을 강력하게 선포하면서도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얻을 영광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장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성경이지만, 신약의 사도행전처럼 성령의 역사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강조하여 구약의 성령행전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너희 자녀들은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대단히 이 땅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망의 꿈을 갖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이미 천국의 삶을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갑자기 셋방살이가 맨션아파트로 변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그들은 뭐라고 찬송하고 고백합니까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고백이 이렇게 다른 거예요. 내가 초막에서 주님을 영접했다 할지라도 주님을 영접한 이후에 나의 삶은 그곳이 바로 천국이예요. 그러나 아무리 대궐 같은 곳에서 산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인생은 그 곳이 바로 지옥의 삶인줄 믿습니다. 죽은 다음에 지옥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알고보면 두려운 말씀입니다. 한 집안에서 배우자 중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찌 한 지붕 아래에서 천국과 지옥을 공유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천국의 삶을 누린다고 고백하면서 지옥의 삶을 살고 있는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한다면 이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나의 자식이, 나의 부모가, 나의 이웃이 그런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 만은 없는 일입니다. 전도의 심각성과 시급성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범죄를 참으로 심각하게 여기셨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사회적 병리현상을 대강대강 넘기거나 일시적인 유행현상으로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단히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정치인들도 중병에 걸려있고, 경제인들도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의 방법이 아니고서는 아무일도 되지않는 사회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부분은 종교계입니다. 심심치 않게 종교 지도자들의 부도덕한 일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뉴스화 될때마다 우리는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백번 부흥회 하는 것보다 더 큰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나의 문제요 우리들의 문제이기에 철저한 회개와 각성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잘못을 지적하는 메스컴을 원망만하기에는 우리의 부족함이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요엘서를 시작하기 앞서서 요엘서에 대한 시대적 바른 이해와 하나님의 음성을 이 시대에 적용하면서 앞으로 계속될 요엘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여러분들께서 들을 귀가 있어서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행하므로 이 땅에서 진정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날이 선포될 그 때에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아무도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무책임한 분위기속에서, 바로 나로 인하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성도들이 되어 진정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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