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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아 세레의 의미 (창 1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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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에 교회가 교회인 표징, 어떤 형태가 있어야, 어떤 것들이 있어야 교회가 교회인가 하는 것들을 성경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교회에서는 참된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이렇게 말로 선포되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도 나타나야 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세례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례 중에는 어른들에게 자기의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라고 해서 자기가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세례도 있지만 어린이에게 베푸는 세례가 있는 것을 여러분이 보셨고 지난주에도 목격을 하셨습니다. 자, 우리는 어린 아니들에게 왜 세례를 베푸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전부 다 아, 어린아이에게도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니, 세례가 뭔데, 다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니, 세례가 뭔데, 세례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밖으로 내보이는 표인데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은 세례의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있다고 하는게 우리에게 좋은 도전이 되어집니다. 그것은 왜 도전이 되어지느냐면 아, 세례는 왜 하는가 아, 그러니까 교회라는 것은 어린이들에게도 하던데요 그러니까 우리들도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데서 우리로 하여금 벗어나게끔 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전통 때문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전통이 우리 가운데서 지켜 질려면 왜 우리가 그것을 행해야 하는가 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서 행해야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물을려고 하는 질문은 왜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일까 어린아이들 에게 세례를 베푸는 그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린아이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런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너희들이 어린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어라,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에서는 저 사람들이 어린아이에게는 세례를 베풀지 말아야 된다, 라고 말하는게 옳은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하느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은 백성으로 삼으셨다 라고 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져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어린아이에게 세례 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그저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렇게 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해서 하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세요 여기 아름다운 꽃들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우리 교회도 꽃이 많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렇게 꽃이 있습니다. 이런 꽃들을 보면서 아, 꽃들이 아름답구나, 주님께 드리는게 아름답구나 그러니까 사람들 가운데서 더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주님께 그리면 어떻겠는가 그냥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듯이 꽃을 드리는 것처럼 어린 아이를 드리는 것처럼 드린다 그것은 다 쓸데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받아 주시지도 않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한다, 특별히 성례로 무엇을 행한다고 하였을 때는 성경 가운데에서 분명한 어떤 근거, 하나님께서 이것을 세우셨다 하고 하는 근거가 있어야지 만 행할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것을 사람들이 만들어 내서 하는 것은 아주 못된 일이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우리에게는 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내가 내 마음속에서 아,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성을 다한 것으로 해서만 다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에서 규정해 놓으신 대로 하나님께 섬겨 드려야만 그것이 의미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깨쳐 나가고 아,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에게 무엇하기를 원하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세례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것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을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슨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셔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어떤 식으로 약속을 해 주셨느냐 하면 자, 내가 너희들에게 너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제공해 줄거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 사실을 그냥 믿어라, 그 약속을 해 수신 거란 말이죠. 이 약속이 여러 가지 형태로 이제 변형되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가장 처음에 나타나는 형태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옛날에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사람을 부르셔서 그 사람하고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을 하셨을 적에 그 약속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내가 너 에게 뭐 잘해 주겠다, 그것이 아니고, 내가 너에게 이제 온 세상의 만민들을 구원할 수 있는 그 작업을 이제 시작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는데 너는 그저 이 사실을 믿고 너 자신을 이 사실 속에 던져 넣어라, 그것이 약속이 체결되어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그 약속의 의리를 이야기해 줍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을 맺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약속을 해 주시는데 이것은 결국은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런데 이 약속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아직 그 시기적으로 어린 상태이므로 두 가지 현세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제공해 줍니다. 현세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란 무엇이냐 하면 내가 너에게 자손을 줄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자손을 줄 것이다 그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 시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손을 줄 뿐만 아니라 자손들이 많아지기만 하면 안되고 그 사람들이 들어가 살 곳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 어떤 땅을 내가 너희에게 허락해 수리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온 세상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시고, 이 사실에 있어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도록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맨 처음에는 자식을 기다리게 합니다. 자녀를 기다리게 한다는 말이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가 오늘의 본문의 17장 1잘에 보시면 99세 였다고 그랬습니다. 99어때 그때까지 아브라함은 아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이야기하시느냐 하면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이것이 약속이란 말이죠 그 약속이 결국은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00세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 이 하나님은 참 믿음직한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참 든든한 하나님, 내가 그분에게 기댈 수 있는 하나님이구나, 그것을 깨닫게끔 하기 위해서 그로 하여금 이 생각을 하게끔 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자손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식을 얻음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성경 속에 있어서 우리가 이 이야기 속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경험을 해 나갑니다. 물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 이야기 속에 같이 들어가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이루어 나가시는 과정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야, 이 하나님은 정말 믿을 만한 하나님이구나, 내가 굳건히 믿을 수 있겠다 그 생각을 했을 때 우리가 이 성경을 읽으면서 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 믿을 만한 하나님이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시면서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예를 들어서 2절-자식이 자녀들이 많아진다고 그랬죠 그래서 언약이라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면서 세우신 언약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은혜의 언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사람의 조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겁니다. 사람은 그냥 그 언약을 기대기만 하면 된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4절에서도 보면 다시 한번 언약 이야기가 나옵니다. 4절-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될 것이다. 그것을 분명히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느냐 하면 아브라함의 이름에 대해서 개명 식을 하십니다. 이름을 바꿔주는 일을 한다는 말이죠. 여태까지는 “아브람” 그랬습니다. 이제부터 아브람이, 아브라함, 많은 무리의 아비다, 그런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이제 아브라함에게서 많은 무리, 많은 민족이 날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죠 그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배워야 할 것은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맺은 언약을 지켜 나가시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셔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 관계를 가지고 계시면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주시면 그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7절에 그 이야기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7절-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한다는 말이죠.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라고 그랬습니다. 이 말의 함의에 따라서 이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언약은 그저 하나님 앞에 언약을 맺고 있는 당사자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까지 들어간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성격이 있습니다. 그저 한 사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날 사람들이 다 언약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의도를 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 아느냐 하면 선생님들이 뭘 하다가 잘 안되면 칠판에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죠 그러면 이것을 학생들이 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이유가 뭡니까 또, 그것도 안되면 학생들하고 가서 직접 뭘 한다는 말이 예요 그냥 말로만 하면 사람들이 다 졸아 버리죠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처럼 다 졸아 버린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게 안될려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면 제가 돌아다니면서 이야기하면 이게 잘 되는데 그렇게 하면 걸려 넘어질 분들이 있어서 그렇게는 못하고 그런데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그 심정을 아셔야 되요. 하나님께서 이것을 정말 중요한 것이 다고 하신 것을 알기 위해서 어떤 석으로 하시기를 원하셨느냐 하면 실물 교육을 시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시청각 교육이 아니고 실물 교육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와 언약을 맺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도록 하시기 위해서 언약의 표를 너희 몸에 가져야 되겠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어떻게 하셨느냐 하면 남자들로 하여금 하례를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일종의 이것이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포경 수술입니다. 남자아이들은 언제나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도록 합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언약의 표를 자기 안에 갖는다는 말이 예요. 아, 그러면 여자들은 언약 속에 못 참석하는 것입니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는 사회가 어떤 사회냐 하면 남자들이 중심인 사회였기 때문에 남자들을 대표로 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성격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표로써 할례를 행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 몸에 아, 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라고 하는 표를 가지게 된다는 말이죠. 그걸 마음속에 딱 생각 하면서, 내몸에 이 상처가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은 아브라함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의식일 없는 난지 8일이 된 아이에게 다 행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따라서 모든 유대인들은 다 할례를 행합니다. 누가 행하느냐 그 사람들의 랍비들이, 선생님들이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목사님들이 할례를 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다,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 언약 관계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관계는 오늘 우리와 맺으신 언약 관계와 나주 동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언약 가운데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장차 하나님께서 누군가 우리를 위한 구원자를 보내주실 것이다, 하는 것을 믿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들어갔다는 말이죠.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우리는 아, 아브라함이 그렇게 바라 왔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그렇게도 바라 왔던 그 기다리던 그분, 메시야가 우리 가운데 오셨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셨다는 그 사실을 믿는 믿음 가운데서 우리도 어느 언약 속에 들어갑니까 아브라함과 하나님과 맺은 은혜 언약 가운데에 우리도 들어간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은혜언약,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전적으로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 혼자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언약 가운데 들어간다는 말이에요. 여기 우리가 행하는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언약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바깥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내 보이는 예식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그것이 세례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나는 같이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을 때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가지고 같이 살아납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살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이야기를 해도 이것이 그냥 말로만 있을 수가 있어요 사람들이 정말 마음속에 예수의 부활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지 않을 때 뭐하자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가끔가다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뿐만 아니라 모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활절을 기념하고 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예수의 부활 생명이 살아서 약동하는 그것이 있는가 그것참 생각을 해보면 여러분이 요즘에 들에 나가 보시면 그 파란 움이 솟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에 차를 타고 오면서 보니까 파란 움들이 솟아나는 그것들이 아주 아름답게 보여요. 한 가지 새롭게 발견한 것은 나뭇잎이 파랗게 되는 그 모습이 밑에 있는 가치에 있는 잎일 수록 더 파래지더라는 거예요 그에 아마 밑에서 수분은 빨아올리고 하는 거기에 먼저 가니까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이 따가 그 이야기를 잠깐 하죠. 하여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력이 자연에 있어서는 그렇게 아름답게 나타나고 있는데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에게 있다고 부활절날 이야기해 놓고서는 우리는 뭐 하는 것인지, 내 속에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이 있는지 우리가 한번 반성을 해봐야 합니다. 더구나 중요한 것은 이게 그저 우리 가운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정말 나로 하여금 기쁘게 하고 내 생활 가운데서 내가 예수와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루 은혜스러운 것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우리를 대우하셔서 내가 언약 관계 안에 들어가게 괴면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그렇게 괴면 예수님을 믿는다, 이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아주 은혜로우셔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와 언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 언약이 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너의 후손에게도 적용되리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의 후손도 무엇을 행했다고 했습니까 아까 할례를 행했던 것이죠. 이제 신약에 있어서는 그 언약의 표가 할례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믿는 사람이 다 할례를 행하는 것 아니잖아요 우리가 유대인이 되었다가 그 다음에 다시 예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할례를 안 행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을 밖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표, 세례를 행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 가운데 세례를 안 받은 사람들은 아, 하루빨리 내가 그 표를 바깥으로 내보이는 의식을 행해야 되겠다, 그런 의식을 가져야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 준비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만 할례를 행한 것이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게 하셨듯이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풀도록 하신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약속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자녀를 주시면 그 자녀는 그저 보통 자녀가 아니라 벌써 하나님과 언약 가운데서 주신 언약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입니다. 조건은 있는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을 경우에 하나님을 내가 믿고 있을 때 우리들의 자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가득한 축복 가운데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란 말이지요. 그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마음으로 이 아이를 우리에게 언약의 자녀로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것을 표현해 내는 의식으로써 세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세례를 행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행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그때 중생된 것도 아니도 세례를 행했다고 해서 우리가 모든 것이 다 보장된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이 아이에게 세례를 행하여서 그 다음에는 정말 이 세례의 의미가 그 아이의 생애 가운데에서 잘 드러날 수 있게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노력합니까 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아이에게 주의 교양과 훈계로 늘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아, 그것은 부모님이 알아서 하는 거겠죠 물론 그렇습니다. 일차적으로 책임이 부모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주간에 세례, 유아세례의식을 가질 때 부모님들만 세례의식을 행한 것이 아니고 온 교회의 회중이 다같이 주 앞에서 서약을 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그저 핵가족 식으로 움직이게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취급하십니다. 우리를 한 교회의 회원으로 묶어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아, 쟤는 딴 집 아이인데 난 책임 없어 그런 식으로 사유하게끔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끔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 아이에 대해서 부모님과 거의 비슷한 책임을 우리가 같이 져 나가게끔 해 주신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 가운데 이렇게 주의 언약의 자녀로 드려지는 아이가 있을 때 온 회중이 정말 기뻐해야 합니다. 아, 주님께서 이 언약을 분명히 해 주심을 참 감사드립니다. 하는 의식을 가져야 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 우리에게 굉장한 책임을 부여해 나갈 것입니다. 유아 세례를 행하는 교회는 반드시 기독교적인 교육을 교회 전체에 해야 할 필연성을 가자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해 놓고는 기독교 교육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일차적인 책임을 가집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주 앞에서 잘 양육할 것인가 그래서 그 아이가 성년이 되어서 자기의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그러고 나서는 정말 내가 언약의 백성이 되었음을 내가 인정합니다 고 고백할 때 우리가 그것을 입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아이들이 14세, 15세, 16세 어느 정도 의식이 성장해 가지고는 자기가 분명히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내가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 그 존귀한 자리로 내가 정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다 그런 표현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우리가 부지런히 그 아이에게 신앙을 잘 양육시켜 가지고서는 그 아이가 신앙을 고백하게끔 우리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교회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자라 나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과 함께 우리가 같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아, 유아세례를 옛날에 받았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부모님의 그런 신앙에 근거해서 옛날에 내가 세례를 받았었구나, 그런데 내가 지금 내 입으로 그렇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분명한 의식이 없으면 문제일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세월이 지나가면서 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모든 사람들이 큰 사람이거나 작은 사람이거나 나이 드신 분이거나 젊은 사람이거나 우리가 모두 마음속에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에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있기를 원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그런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에서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있기를 원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그런 언약의 백성들이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생활을 해 나갈 때 언약의 백성답게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렇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 언약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요구하는 완전의 표준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매일매일 노력을 해서 그것이 우리 가운데에서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보여지지 않으면 내가 정말 언약 백성의 원리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물어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대개 여기에 나오신 분들은 다 하나님의 언약 관계 가운데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아, 하나님이 나와 언약 관계를 맺으셨구나 잘 모르겠는데요, 아브라함하고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언약 관계를 맺으셨지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셔서 언약도 안 맺으셨는데 언약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아까 우리가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모든 조건을 다 제공해 놓으시고서는 너는 이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내가 여기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주어지는 언약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언제 이 언약 가운데 들어갔느냐 하면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서는 순간 우리는 언약 관계 가운데 들어온 백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이 매일 매일의 삶을 사시면서 이 의식을 갖는게 중요합니다. 주일날 아침에 이렇게 예배 드릴 때에만 아,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그것도 해야죠, 그것 안하면 참 문제인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그 의식도 없이, 그러나, 여러분들이 다른 교회에 갈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이니까 예배에 참석을 하십니다 그죠 우리가 동일한 언약 백성입니다, 하는 의식을 가지는 것이지요 이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이것 안하고 있다, 참 문제죠 이왕 할거면 우리가 분명히 하자고 그랬습니다. 그죠 5분뒤에 오시지 마시고 최소한 5분전에는 오세요 어떤 분은 제가 5분 그러니까, 왜 5분이죠, 최소한 15분전에 오라고 그러지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의도를 아셔야죠. 최소한 그렇게 라도 와야 예배가 제대로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뭐냐면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다 드린다고 해서 언약 백성의 의리를 다한 것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들은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에서 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하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이 의식을 여러분들이 심어 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자녀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그런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것을 심어 주어야 할 사람들인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하는 의식이 없이 내가 하나님과 거룩한 약속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의식이 없이 살아간다면 그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겠는가 내 속에 그런 것이 없는데 어린아이들의 마음속에 그 의식이 심어질 수 있습니까 내 속에 분명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에서 이루실려고 하는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내가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으로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그 의식이 있어서 매일 매일의 생활을 그렇게 해 나가셔야지, 그것이 어린아이들 에게도 전달되어지고 가르쳐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그런 언약 백성으로 충실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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