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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교육과 훈련 (고전 08:1-13)

첨부 1


여름입니다. 우리는 이 여름에 우리들의 믿음과 생활에 대한 경건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여름은 모든 만상이 흩어지고 정신 상태가 해이해 지며, 육체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때이기 때문에 개으르고 나태해 져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여름에 만상을 가을을 준비하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며,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은 새 힘을 얻기 위해 시간을 아껴야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 보면

1.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신문에 나는 광고 가운데 산업화는 늦었으나 정보에는 앞서 가자라는 광고가 있음을 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정보를 얼마나 빨리 많이 정확히 알고 응용하는 강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시대가 된다고 말합니다. 정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각종 지식입니다.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요 인생과 나라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지식의 홍수 속에 꼭 알아야 할 지식이 있고 알아서는 안되는 지식이 있으며 아나 마나 하는 지식도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이며, 알아서는 안되는 지식인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식은 식자우환이라고 알았기 때문에 화를 당하는 지식도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우리들이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하는 지식을 주님은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서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주고, 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서 주님을 잘 믿도록 하고,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아 죄인에게 내리시는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의인에게 주시는 축복이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를 알아 주님을 믿고 살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은 우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며 우상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우상이란 자기를 위해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에 돈의 신, 지식의 신, 권력의 신, 운명의 신, 쾌락의 신, 정욕과 욕망의 신, 과학의 신, 예술의 신들을 만들고 자기를 위해 이 신들을 섬기는데 이런 우상에 대한 지식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그릇된 신들에게 미혹이 되여 타락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해 져야 할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가 이런 수련회가 되여야 합니다.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지식, 스스로 잘난 척하는 지식은 사실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한 자기 모습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①. 그러니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법을 알아 그 법으로 자기 자신을 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선한 것이요 무엇이 악한 것인지를 모르고서야 자기의 선과 악함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 것입니까
②. 비밀이 없는 사람이 되여야 합니다. 사람이 비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아내 몰래 첩을 둔 사람이 비밀이 많고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비밀이 많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불의한 신자들이 비밀이 많습니다. 남에게 공개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그것은 우리들에게 한가지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듣건대 정치라는 것은 백성들이 알아서는 안되는 극비에 속한 비밀이 많다고 하는데 비밀이 많은 정치일수록 독재요, 비 민주주의적이 였던 것을 압니다. 이런 비밀을 우리가 신속히 처리하지 않으면 그것이 망하는 씨가 되고 고름이 되어서 결국 인격 전체가 상처를 받고 사회가 붕괴되고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금 우리 주변에서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존경할 만한 분이 남 모르게 비밀을 가지고 있다가 들통이 나서 사람들에게 지탄과 멸시를 받고 패가 망신하는 꼴을 봅니다.
③. 내가 어떤 일을 하려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는 일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요 훌륭한 지식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지식이면 그것은 좋은 지식이 아닙니다.
④.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지식이 여야 합니다. 축복을 해 주십사고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의 지식은 근본적으로 죄악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실하지 못하고 왜곡된 지식을 많이 가지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교만해 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읽고 쓰는 지식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만큼 높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잘 적용하는 생활에 적용하는 지식은 아주 낮아서 실제적인 문맹률은 아주 높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교만한 지식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사랑을 배우는 기회가 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아시는 바 되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고전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이 많은 현대인들은 하늘과 땅에 많은 신을 두고, 주를 두었는데 그들이 섬기는 신과 주는 모두 자기를 위한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신이나 주라는 것은 사실 자기를 위해 주는 종들이요 실제적인 주와 신은 자기 자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이 신이 되는 일은 말세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말씀에는 우리가 주의를 해서 보아야 하는 두마다의 말씀이 있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으니 우리가 그를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세는 술을 먹는 사람들이 “위하여-”하면서 함께 술잔을 드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하여 하지 않고, 그냥 위하여 하는 것을 보니 술 한잔을 먹는데도 누구를 위해 여 할 사람이 없는 모양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위하여 사는 것인가에 따라 엄청난 삶의 방법과 내용과 결과가 달아 집니다.

진실로 풍성한 삶이 무엇입니까 C. C. C의 사 영리의 첫 머리에 보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풍성한 삶을 예비하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많은 지식을 가지면 풍성한 삶을 살아갑니까 풍성한 삶이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이요, 영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 하지만 그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지식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부러워 하지만 그들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풍성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욕만 얻어먹는 부자. 저주만 받는 권력자, 교만한 지식인, 안아 무 인격인 종교인, 외식하는 사회 사업가를 누가 풍요한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전8: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하셨으니 여기 식물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바라는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적인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진다고 해도 만족함이 없을 것이니 어찌 세상 것에 풍족함이 있을 것이며 풍성함이 있을 것입니까
늘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고 그 사랑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서 장성한 사람이 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고백인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입니다. “(고전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3. 참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자유는 바로 구원을 말씀합니다.
미국의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는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운다. 그것은 우리의 독자적 신념이요, 우리의 유일한 타인에 대한 공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라나 자유라는 것이 무엇이냐를 따진다면 많은 모순이 그들이 말한 자유의 개념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8:9) 그런즉 너희 자유 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셨습니다. 내가 좋다고, 내 마음 데로 자유를 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내 돈주고 마음대로 먹고 입고 사는데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지나치게 노출이 된 옷을 입고 컵을 쩝쩝 씹으면서 이기적 거리는 꼴을 보면 다른 사람이 협오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끼칠 때 진실한 자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오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하시고 본문에서도 “(고전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고전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고전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전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전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 하다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라고 하셔서 자유 자이지만 종으로 사는 그것이 참 자유임을 말씀하시고 그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특히 약한 사람에게 거치는 것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고전7:22) 주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 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 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라고 하시므로 진실한 자유는 섬김으로 이루어 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벧전2:16) 자유 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라고 하시고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오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직접 명령과 간접 명령이 있습니다. 소극적인 명령과 적극적인 명령도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사랑하라. 감사하라. 성령 충만을 받으라. 모이기를 힘쓰라. 시간도 몸도 제물도 하나님께 바치라. 라는 것들이 모두 명령들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자유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명령에 대해 무조건 반기를 듭니다. 내 것인데 왜 바치라 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냐 라고 합니다. 그러나 참 자유는 하나님의 명령 하에서 성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인 것이며 그것은 죄악입니다.

일본의 어떤 샐러리맨이 그가 30년 동안 산 시간을 분석해 보았다고 합니다. 30년간은 100,950일이고, 담배 피는 시간은 1,140일이고, 테리비젼을 본 시간은 775일이고, 독서한 시간은 722일이 였습니다. 그리고 신사 시간은 707일이고, 전화하는 시간이 691일, 축제, 관혼상제, 남의 잔치에 참석한 날이 554일, 연회에 초청을 받아 술 먹은 날이 517일, 다른 사람 흉보는 시간이 441일, 술집에 간 날이 266일, 마작을 한 날이 258일, 개울 위에서 뒹굴고 다다미 위에서 뒹군 날이 197일이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의미 있게 살아 온 것입니까 30년 세월을 그 사람은 방종이라 할 허무한 인생을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유 하다 하여 그 자유를 죄 짓는데 사용하고, 다른 사람 못 살게 하는데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자유! 신체적인 자유, 거주의 자유 등과 정신적이며 영적인 자유를 값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자유는 하나님이 구원 얻은 성도들에게 주신 특별 보너스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번 기회에 이 자유를 누리며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자유를 가장 잘 사용하는 법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일이고, 하나님에게 드리며 사는 것이며, 사람에게 덕을 끼치며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많은 희생과 헌신, 사랑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자유 하다하게 하기 위해 값진 대가를 치르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시므로 얻어진 자유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 하다케 하고“라고 하시고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링컨은 말하기를 “우리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 주는 보류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우리의 험준한 흉벽도 아니오, 깎아 세운 듯한 우리의 해안도 아니며, 우리의 육군이나 해군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심어 준 자유에 대한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유와, 그 자유를 주신 하나님을 배우며 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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