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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노아와 피 (창 08:20-22)

첨부 1


인류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금하신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였습니다.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인류는 아담 이래로 계속적인 불순종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공의로우십니다. 악인은 멸하시되 선인은 건지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선인이 의를 인정받으며, 악인의 죄가 정죄당하는 것입니다. 그 심판에 있어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이라 할찌라도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의인 열만있으면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약속하시고 천사를 보내사 롯의 가정을 구원하셨습니다.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말씀에 순조하여 120년간 방주를 만들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노아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오직 노아의 8식구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40주야를 쉬지않고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내리고 땅에서는 깊음의 샘이 터졌습니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방주의 문을 열어 달라고 외쳤으나 닫혀진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노아 홍수의 심판은 우리에게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됩니다. 심판은 결정되었으나 그 시기는 몰랐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선포했듯이 오늘도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널리 선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신,불신앙에 따라 각 사람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믿는 자로서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요구되고 있습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자 비는 40주야를 내렸습니다. 지상에 가득한 물이 감해지고 다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어서 노아가 방주를 나온 것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로부터 정확하게 375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방주 안에는 정결한 짐승이 7쌍씩, 부정한 짐승은 한쌍씩 있었습니다.
방주는 교회로 이해됩니다. 방주 안에 정결한 짐승이 일곱쌍씩 있고, 부정한 짐승이 한쌍씩 있었다는 것은 교회안에 교인의 비율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 해 줍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신실한 일곱 사람 대 믿음이 없는 사람 한사람의 비율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 한사람의 비율은 지금 막 전도되어 나온 사람들을 말합니다. 모두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 교회는 전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늘 교회는 신실한 믿음의 일곱 사람이 초신자 하나를 건강하게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모두가 늙은 장닭처럼 알도 낳지 못하면 병든 교회입니다.
노아는 375일 동안 흔들리는 방주 안에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뒹굴며 발광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은 한번 배를 타면 6개월 1년을 바다에서 생활합니다. 그러니 자연 사람이 그리워 집니다. 원양어선이 항구에 들어오면 술집의 작부들이 나가서 호들갑을 떨며 온갖 유혹을 다하고 선원들은 망망대해에 떠다니며 목숨걸고 벌었던 돈을 하륫밤에 쏟아부어 버립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만큼 선상의 생활이 힘들고 지겨웠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 제사드릴 생각만 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 마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땅 위의 모든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 8:19-20)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피가 흘렀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피에 관한 말씀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피가 어떠한 피였는지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노아의 피는 자원의 피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네가 방주에서 나가면 정결한 짐승을 잡아 나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아가 드린 제사는 자발적인 자원의 제사였습니다. 세상에는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에 시키는 데도 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킬 때만 겨우 마지못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러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원해서 묵묵히 일하는 우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나는 왜 축복해 주시지 않는가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하나님이 라면 나같은 사람 축복해 주시겠는가’ 대답은 자명해 집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축복받을 일을 분명히 했습니다. 축복받을 사람은 축복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는 교회에 나오라고 하지 않아도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시키지 않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봉사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전도합니다. 열심히 기도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왜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모든 일에 자원하는 성도,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시는 분이십니다.
강문호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춘천 중앙감리교회에 집회를 갔는에 새벽에 이상한 감사헌금 봉투가 올라왔습니다. ”하나님 은혜 감사해 100만원 드리고 싶습니다. 10만원 먼저 바치오니 나머지도 속히 드리게 하옵소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예물을 드린 사람은 최재규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려 양손을 쓰지 못하는데 원주 세브란스 병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수술을 하면 완전하지 못해도 그런대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청년은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손한번 펴보고’였습니다 청년은 수술을 받기 위해 기쓰고 돈을 모았습니다. 손이 불구이므로 일을 하지 못해 집에만 있는데 어머니가 용돈을 주 시면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았습니다. 또 어떻게 돈이 생기면 다른 욕심 꾹 참고 저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겨우 1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려 참석했는데 하나님이 100만원을 바치라는 감동을 자꾸 주십니다. 최재규 청년은 ‘이 돈이 어떤 돈인데, 그리고 내가 100만원이 어디있어’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 바치면 네 손은 내가 고쳐주마’하는 강한 성령의 감동으로 그날 100만원 수술에 필요한 돈을 헌금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생명같이 모아 두었던 돈 10만원을 하나님께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90만원은 생기는대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은 감격해서 그 청년을 불러내어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1000원, 2000원 바치면서 나머지 금액을 바치면서 바친 만큼 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새벽 일어나 보니 오그라져 있던 손이 펴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해서 이 최재규 청년은 서울까지 강문호 목사님을 찾아와 ”목사님 보세요, 내 손이 펴졌습니다하며 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감격해서 예배 시간에 간증을 시켰는데 예배 후에 청년들이 와서 그의 손을 만져 보았습니다. 처녀들도 와서 만져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실 만한 그릇이 될 때 누구라도 축복하십니다. 그 축복의 주인공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노아의 피는 1/7의 희생의 피였습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8:20)”
방주 안에는 정결한 짐승이 일곱쌍씩, 부정한 짐승이 일곱쌍씩 들어 있었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짐승 중 한쌍씩을 택하여 하나님 앞에 재사를 드렸습니다. 지금 생존하고 있는 동물들은 그때 남은 여섯쌍과 살아남은 동물들이 퍼진 것입니다 자기 소유 가운데 1/7을 희생한다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억지로 못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많다고 해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고 부족한 가운데 기쁜 마음으로 희생하면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저는 가끔 교적부를 떠들어 볼 때가 있습니다. 5년 가까이 되는 세월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다가 떠났습니다 . 군복무 때문에, 직장때문에, 결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정말로 목회자의 마음에 못을 박고 상처를 남기고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떠난 분들의 형편이 전해져 옵니다. 불행히도 기쁜 소식은 하나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한때마나 그분들을 영적으로 인도하던 목회자의 입장으로 가슴이 아파옵니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바르게 잡아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못내 아쉬움이 남습니다. 최근에 기도하면서 깨달은 바입니다. 그렇게 떠난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십일조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십일조 예물을 드리는 것과 떠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축복 이전에 십일조예물은 내가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는 표시입니다. 말라기서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내게 돌아오라’ 하시면서 십일조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일조 예물은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드리도록 친히 명령하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은 것은 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둑을 축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을 도둑질한 사람이 주인 앞에서 떳떳할 수 없습니다. 십일조 예물은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 드려야할 예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책임을 다하십시오, 책임을 다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드릴 것을 드리고 당당하게 축복을 구하십시오. 십일조 예물을 드리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는 신앙의 고백이고 이 교회가 나의 교회라고 하는 고백입니다. 십일조 예물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제단에 드려야 합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떠난 최영선 집사님이 저희 교회에 처음 왔을 때 몇달 분의 십일조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제가 앞으로 이 교회에 다니겠습니다. 이교회는 저의 교회입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떠돌면서 몇달을 다녔는데 자기의 교회가 아니다 싶으니까 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 교회가 나의 교회라고 생각되면 십일조 예물을 드리십시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소득에서 1/10을 분명하게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드리고 나면 나의 교회라는 의식이 생길 것입니다. 그리고 헌신하십시오. 노아는 1/7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전제 조건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돌아왔다는 고백으로 기쁘게 열의 하나를 분명히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3.노아의 피는 정결한 피였습니다.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레 22:20-23)”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는 네 종류의 짐승만이 가능했습니다. 소, 양, 염소, 비둘기입니다. 다른 부정한 짐승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또 이 짐승들 가운데도 병든 것이나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습니다. 또 이짐승들 가운데도 병든 것이나 흠이 있는 것은 드릴 수 없습니다. 완전한 짐승만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을 위해 완전한 짐승이 대신 죽어야 합니다. 이는 죄악된 우리를 위해 죄없는 예수님이 대신 죽어야 했던 사실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4.노아의 피는 번제의 피였습니다.
레위기 1장을 보면 번제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이 나옵니다. 3-9절까지는 소를 번제로 드릴 때, 10-13절까지는 양과 염소를 번제로 드릴 때, 14-19절까지는 비들기를 번제를 드리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번제를 드리기에 앞서 제사장과 죄지은 사람은 제물에게 안수를 합니다. 안수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짐승에게 전달하는 예식입니다. 안수가 내안에 있는 것을 다른 존재에게 전달하는 것일라는 것을 다음의 성경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 34:9)“
번제는 인간이 자기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드리는 최고의 정성된 제사입니다. 번제를 드릴 때 비둘기는 목을 비틀어 끊어서 드려야 합니다. 죽은 짐승은 가죽을 벗깁니다. 우리가 가진 위선, 가식, 죄악들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해야 하므로 또 각을 떠야 하는 데 이는 손과 발을 끊는 것을 말함니다. 우리의 예배가 산 제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쁜 일을 했던 손과 그릇된 장소를 찾아갔던 발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깨끗한 물로 씻어서 드립니다. 시기, 질투, 미움 등을 씻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만 얼마나 번제로 드려지는 제물같이 끊을 것 끊고, 버릴 것 버리고 정결한 모습으로 드리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을 정리함으로 끝을 맺고자 합니다. 노아의 피는 자원의 피였습니다. 노아의 피는 1/7의 희생의 피였습니다. 노아의 피는 정결한 피였습니다. 노아의 피는 번제의 피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를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시켜야 합니다. 상달되지 못하는 예배는 인간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노아는 자원의 피와, 희생의 피와, 정결의 피, 번제의 피를 가지고 나아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상달시켰습니다. 노아의 제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셨다고 했습니다.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이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언약의 증거로 무지개를 받았습니다. 날마다 노아와 같은 신앙으로 우리각자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드려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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