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실인과 피 (민 06:1-8)

첨부 1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이든 관계없이 하나님은 인간구원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창세 이래로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구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제사장 나라로 선택하셔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 중 레위인을 택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은 나실인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전개하셨습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는 만인 제사장의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인간 사이에 중보로 세우셨던 나실인과 피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6장은 나실인 서원장입니다. 나실인으로 지켜야할 여러가지 조항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성도의 삶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고자 합니다.

1.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난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말지며(민 6:3-4)”
포도는 기쁨과 쾌락을 상징합니다. 주님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속담에 ‘포도주 없이 흥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듯 기쁨의 상징인 포도주를 금하신 것은 적어도 나실인은 주님을 위하여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살기보다는 자기 백성과 더불어 고난 받는 것을 더 기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그물을 버렸습니다. 잡은 고기를 버렸습니다. 직업을 버렸습니다. 가정도 포기했습니다. 나실인은 세상적인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을 통한 행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중보자가 되기 위하여 가장 큰 것을 버리신 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우리는 놀고 싶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을 버리고 끊어내야 합니다.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아까와도 헌금해야 합니다. 힘들어도 전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실인의 삶입니다.

2.나실인은 머리를 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민 6:5)”
하나님의 사람은 과팍하고 괴상해야 한다고 워치만 니는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그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실인이 왜 머리를 깍지 말아야 하는지 성경에서 그 답을 또 찾아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궁금한 것은 성경에서 또 그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 11:14-15)”
성경대로 하면 남자는 머리를 깍아야 하고 여자는 길러야 합니다. 요즘 여자가 짧게 깎고 남자들이 길게 기르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남자는 깎도록 여자는 기르도록 했는데 유독 나실인만은 남자임에도 머리를 기르도록 했습니다. 왜일까요 당시에는 종이나 노예만 머리를 길렀습니다. 나실인이 머리를 기른 것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자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나실인은 주님을 위해 멸시천대를 받을 각오가 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 영광과 분리 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사는 것도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그리스도니 사나 죽으나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요, 내 몸을 통하여 그가 존귀히 여김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만신창이가 되어도 후회가 없는 사람이입니다. 수치를 참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나실인은 시체를 가까이 하면 안됩니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민 6:6-8)”
나실인은 부모형제의 시체도 만지면 안됩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천연적인 애정, 본능적인 사랑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의 마지막 가는 장면도 주를 위해서는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부모나 처자를 나보다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말하라면 대개가 어거스틴과 성 프랜시스를 이야기합니다. 프랜시스의 일화입니다. 프랜시스가 성 다미엔 성전을 지을 때였습니다. 성전에서 돌아오는 길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성전을 수축하라!” 간절한 목소리로 세번이나 들려 왔습니다. 그가 독실한 신자였던 반면에 그의 아버지는 지독한 수전노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시장에서 고급 옷감을 장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외국에 물건을 사러갈 때는 프랜시스에게 장사를 맡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와 계산을 해보면 물건값과 물건에 항상 차이가 났습니다. 아버지가 자기에게 맡길 때마다 프랜시스는 장사한 돈을 성전을 짓는데 드렸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는 급기야 아들을 법정에 고소하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은 이런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훔쳤다면 3년형은 족히 받을 것이로되 아들이 훔쳤으니 그만큼 변상하도록 하라”
법정 아래서 돈을 내놓으라는 아버지와 한푼도 없다는 아들이 싸움이 붙었습니다. 한참을 싸우다가 프랜시스는 “아버지 잠깐만 기다리세요”하고 나가더니 2분쯤 지나서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때 그의 모습은 완전히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삐에뜨로피!(나는 당신과 인연을 끊겠소!)”외쳤습니다. 재판관이 달려와 벌거벗은 몸에 법복을 입혀 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완전히 결별한 프랜시스는 거지노롯을 하여 결국은 성 다미엔 성전을 완공하고야 말았습니다. 프랜시스가 죽은 뒤에 그의 옷을 세탁하던 사람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의 옷에는 예수님과 똑같은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46세로 그는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반찬에 양념을 해먹으면 죄라고 말했습니다. 양념할 돈이 있으면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용된 돈만이 돈이고 나를 위해서 쓰여진 돈은 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나실인은 그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4.나실인의 서원을 어쩔 수 없이 어긴 것도 죄가 됩니다.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 칠 일에 밀 것이며(민 6:9)”
나실인이 되기 위해서는 100여일을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나아가 위에서 제시한 나실인으로서의 조건들을 다 엄수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99일째 되던 날에 갑자기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죽으면 지금까지 성별예식을 행했던 것은 무효가 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포도주가 섞인 줄 모르고 먹었다가 사실로 밝혀지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내 잘못 하나없이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시 시작해서 깨끗한 세월을 보내야 합니다.

5.나실인은 남녀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민 6:2)”
나라 제사장과 지파 제사장은 20세 이상 남자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나실
인 제사장만큼은 여자도 가능했습니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전 생애를 드리기로 결정되고 결심되어진 사람들입니다. 나실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서원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3종류가 있습니다.
$.본인의 서원-자신이 자원해서 하나님께 스스로를 드리기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부모적 서원-부모가 자녀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드리기로 서원되어진 사람입니다. 하나의 아들 사무엘이 이에 속합니다.
$.하나님적 서원-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신이 쓰시고자 구별하시는 사람입니다. 삼손과 세례 요한이 이에 속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경로로 나실인이 되었든 그들은 세상과는 구별되이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헌신되어진 사람입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외면하지 말고 오히려 더 힘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당당히 나실인으로서의 사람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길이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는 영광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감사로 이 직분을 감당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