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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것과 얻은 것 (마 07: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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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한평생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더랍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생각할 겨를 없이 무작정 바쁘게 일에 쫓겨서 살다가 그도 별수없이 죽었어요. 그런데 천국 문앞에는 베드로가 오른손에 생명책을 들고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당신 이름은 이 생명책에 없소”라며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바쁘게 살았는지 압니까 당신이 그것을 모르니까 이러는 것일까요. 잘 찾아보시오. 분명히 생명책에 내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나도 바빠서 당신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지 못했소.”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큰 사건도 많았습니다. 충격적인 사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또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잃은 것은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해야 될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취와 성공은 다른 것입니다. 성취라고 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이 열심히 공부해서 깨닫는 것이요, 일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요, 나는 이렇게 해야겠다, 이런 사람이 되야겠다, 하는 자기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유감이 없다, 최선을 다했노라--이것이 성취감입니다. 이것이 성취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공이라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또 그것을 내가 알고, 이를 만족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취와 성공, 둘 다 가질 수 있다면 합니다. 성공은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성취는 있어야합니다. 밖으로 나타나는 성공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남들이 어떻게 인정하든 말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성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애초에 가졌던 계획이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생각해 볼 때 엉망입니다. 바로 이것이 불행의 원인이요, 우리 마음의 고통의 이유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공을 논하지 맙시다. 성취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이루었느냐,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마음이 착해진다고 합니다. 이때에 대부분의 사람이 세 가지 일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뉘우칩니다.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그 첫째가 ‘좀더 참을 것을, 조금 더 참았으면 되는데’입니다. 자, 우리는 조금 더 참았으면 좋았을 것을 미리 입방아를 찧어버리고 말 때가 있습니다. 그게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어요. 조금 더 천천히 판단해도 되는데 너무 조급하게 판단해버리고, 평가해버리고, 또 너무 일찍 좋아하고, 너무 쉽게 절망합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고, 조금만 더 느긋하게 인내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참지 못한 것으로 인한 후회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년을 잘 참았다가도 한순간에 그만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는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되는데, 합니다. 보십시오. 참지 못했어요. 언행심사에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감이 많습니다.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지내온 생을 회고해보십시오. 넉넉히 참았습니까 그만 하면 잘 참았습니까 아니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는 없습니까
둘째는, ‘좀더 베풀 것을’하는 것입니다. 뭐 있다 없다 해도 그래도 줄 것이 많습니다. 아직도 베풀 것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이유, 저런 핑계를 대면서 베풀지 않았어요, 젊었을 때, 줄 수 있을 때에 안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늙어서 줄 것도 없어요. 베풀 수 있을 때에 베풀지 않았는데 이제는 시간이 없어요. 그것이 죽을 때에 한이 됩니다. 좀더 선하게 나누어주고, 이렇게 베풀고, 저렇게 나누어주고, 친척에게도 불쌍한 사람에게도 좀더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후회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이기심과 이기적인 행위에 대한 후회입니다. 역시 이기심은 자기양심도 성원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도 성원받지 못합니다. 죽음을 앞에두고 이기심은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을 생각할 때마다 이기적인 생각을 철저하게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후회스럽습니다. 좀더 베풀 것을, 좀더 넉넉하게 줄 것을 하는 마음이 후회로 남습니다.
셋째는 ‘그 때에 좀더 재미있게 살 것을’입니다. 집이 작으니, 살림이 어떠니, 월급이 적으니, 하고 불평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살아야 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며 살아도 짧은 세상인데 무엇 때문에 티격태격했나, 별것도 아닌 일에 무엇 때문에 남을 원망했고, 무엇 때문에 남을 괴롭히고, 내가 괴로워했나, 그말입니다. 좀더 재미있게 살 것을, 이제는 시간이 다 갔어요. 이제 돌이킬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 생을 재미있게 사세요. 지난 날의 일은 마음에 두지 말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삽니까 그런데 아직도 원망을 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좀더 재미있게, 좀더 즐겁게 감사하며 지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잃은 것과 얻은 것, 성공과 실패, 이것은 계산법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계산 규범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집니다. 이제 지혜의 책인 잠언을 놓고, 여러분이 한번 계산해보시기 바랍니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 보다 나으니라(잠 16:8).” 여러분이 소득을 얻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의를 잃어버렸다면 이것은 얻은 것입니까, 잃은 것입니가 또 비록 물질적으로는 얻은 것이 없어요. 그러나 의롭게 살았어요, 과거보다 좀더 진실했어요, 과거보다 좀더 의에 가깝게 살았습니다. 이것은 얻은 것입니까, 잃은 것입니까 여러분, 눈에 보이는 물질만 가지고 판단하지 마세요. 내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말하지도 마세요. 중요한 것은 의입니다. 비록 재산을 잃었다 하더라도 의를 얻었으면 얻은 것이요, 비록 지위는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내 진실을 얻었으면 얻은 것입니다. 결코 잃은 것이 아닙니다. 의를 기준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을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계산법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잠언 17장 1절은 “마른 떡 한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돈 벌었어요, 사업이 잘 되고 확장되어서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그런데 화목을 잃어버렸어요, 사람을 잃어버렸습니다. 서로서로 얼굴을 볼 시간도 없고, 얘기할 시간도 없습니다. 이것은 얻은 것입니까, 잃은 것입니까 참 이상하게도 재산이 많아지만 화평이 없어요.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운 때에 서로서로 위로하며 화평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마른 떤 한 조각만 있고도”--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더라도 아주 화목하게 됐고, 사업은 실패했지만 화평하게 됐다면 여러분, 이제 잃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때때로 우리는 그런 분들을 봅니다. 한참 바삐 살아갈 때에는 부부가 서로 밝은 데서 얼굴을 못 봤어요, 무엇을 생각하거나 이야기하고, 사랑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병들고 병원에 입원한 다음에 내외가 마주 않아 서로 위로하면서, 모처럼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잃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화평은 이 모든 것 보다 큰 것입니다. 화목을 얻었고, 화평을 얻었고, 은혜를 얻었으면 많은 것을 얻은 것이지 겨코 잃어버리셨다고 계산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하면서 화평이 깨지고, 가정이 깨지고, 부자지간에 불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완전 실패입니다. 가끔 어떤 돈 많은 집의 장례식에 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유산 문제로 형제 간에 싸웁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장례식이 빨리 끝나야지 이것 살인 나겠습니다.” 유산문제로 지금 장례식이고 뭐고 정신이 없어요.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이것을 무슨 성공이라고 하겠습니까 그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잠 22:1)”--재산은 잃어버렸어도 명예를 얻었으면 얻은 것입니다. 높은 의미에서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이 민족과 우리 젊은이들이 명예를 잃어버렸어요, 명예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되는대로 살려고 작정합니다. pride가 없어요. 좀더 높은 고결한 명예를 지니고 살아야겠는데, 명예를 잃어버리고 불명예스러운 오렌지족이라는 이름만 남았어요. 이것이 참으로 큰 낭패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명예는 돈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출세한 사람에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다 진실한, 보다 의를 위한 고난을 많이 겪은, 바로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잘 살고, 잘 먹는 사람에게 명예가 절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본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 1장 7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근본됨을 찾아 나갈 때, 보다 더 근본적인 경건을 얻었을 때에 우리는 잃었다고 평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얻는다는 것은 소욕의 충족으로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실 얻는다는 것은 살아남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으로 돌아가보십시다. 자, 집을 짓습니다. 집이 잘 지어졌는지, 못 지어졌는지, 얼마나 훌륭하게 지어졌는지, 그것은 알 바가 아닙니다. 홍수가 나고, 비바람이 칠 때에 그 집이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진이 날 때에 서 있는 집이 좋은 집이지, 무너지는 집은 잘 못된 집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 그 사람이 사람됨, 사업.... 이 모두가 다 집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모래 위에 지은 집,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래는 우리네의 진흙과 같습니다. 우리네 모래로는 집을 못짓습니다만 그들의 모래는 진흙과 비슷해서 그것으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비만 오면 진흙이 흩어지면서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문자 그대로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다. 그런고로 이 무너집에서 살아남는 것이 문제입니다. 충격적이고, 우주적이고, 무서운 사건들이 터지는 이런 종말적인 큰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부분이 얻은 것이요, 여기에서 무너지는 것은 잃은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얻을 것입니까
어빙이라고 하는 학자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도서관에는 역사적인 석학들의 초상화가 주욱 걸려있었습니다. 잠깐 잠이 든 그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자기가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면루관을 썼는데, 초상화에서 보았던 역사적인 석학들이 와서는 그의 몸에 걸쳤던 화려한 것들을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내 것이요”하며 면류관을 빼앗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지를, 또 어떤 사람은 팬티마저 가져갑니다. 저마다 자기 것이라며 빼앗는 바람에 그는 그만 알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러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맞다, 내 지식이라는 게 내 것이 아니로구나, 이것은 이 사람에게, 저것은 저 사람에게 다 빌려오는 것이었구나. 이제껏 남의 것을 입고 마치 내가 대단한 것인 양 자랑했는데,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여러분, 지금 뭘 얻었다는 것입니까 한번 흔들어놓고 나니까 된 게 뭐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국은 남은 것, 그것이 성공입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남을 것, 그것만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적자냐 흑자냐 하는 것은 계산의 문제입니다. 다 잃어버렸어도 믿음을 얻고, 경건을 얻고, 진실을 얻고, 사랑과 화평과 의를 얻었으면 얻은 것입니다. 결코 잃었다고 적자결산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제2차대전 때, 헤럴드 레셀이라고 하는 청년이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폭탄에 맞아서 두 팔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불구가 된 그는 참으로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망의 기도를 하는 그의 귀에 분명히 들려주셨습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지 않느냐.” 레셀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에게는 아직 생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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