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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로 오라 (마 11: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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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독한 말씀은 유명한 예수님의 초청장입니다. 세상사람들의 초청은 이름있고 지위가 있고 특권이 있고 돈이있는 자들을 초청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초청의 동기는 신세나 지고,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하는 수도 있지만,자기르리 과시하기 위한 초대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대개는 득을 보기 위해서, 부조를받게 위해서 초청하는 수가 많은 것을 봅니다. 그래서 청첩장을 납세고지서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즐거움을함께 나누자는 의미의 초청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一.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간관은 "무거운 짐 진 자"였습니다.

그러나 1,석가모니 인생의 사중고를 말했습니다.

(1) 사는 것이 고생이요 (2) 늙는 것도 고생이요 (3) 병든것도 고생이요 (4) 죽는 것도 고생이라고 말했습니다.

 2.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에도 네 가지 인간의 짐을 말했습니다.

 (1) 경제적인 짐입니다. 실직,빈곤,굶주림,헐벗음 등을 말합니다.

 (2) 정신적인 짐을 말했습니다. 불안,초조,고독,절망 등의짐입니다.

 (3) 생 자체에 일어나는 짐을 말했습니다. 질병, 이율 배반적인 모순,죄로 인한 죽음, 신음 ,괴로움,비명 등의 짐입니다.

 (4) 종교적인 짐이 있습니다. 율법적인 행위를 강요하는등 이라고 했습니다. 핸드릭(Hendriksens)은 마태복음23:4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에 근거하여율법에 규정된 과중한 요구를 짐이라 하였습니다.

 3.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 Jaspers)의 철학적 명제중에 한계상황 또 극한상황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은 우리 인간은 상황적인 존재로 반응할수 있는 상황도 있지만 그러나 절대로 변할 수 없고 면할수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의 한계상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한계 상황적인 성격이 무엇인가 하면, (1) 죄와 허물입니다.

(2) 고통입니다.

(3) 병입니다.

(4) 우연한 염려입니다.

(5) 투쟁과 전쟁입니다.

(6)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무거운 짐을 말한 성현, 철인들은 많지만 이러한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해결해 주겠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한 분은 오직 예수님 밖 에 없었습니다.

1) 예수님은 죄의 짐을 진자들을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죄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자를 찾아갔습니다. "획죄어천이면 무소도야라 (獲罪於天 無所禱也)" 즉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 사함 받을 길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석가모니에게 갔더니 "전생에 죄를 지었으면 이생에서 그죄의 업보를 받을 것이고 이생에서 죄를 지었으면 내생에 그 업보를 받아야 할지니라" 그럼으로 난행고행으로 그 죄값을 치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이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이사야 1:18)"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해결 받을 수가 있습니다. 살인강도가 예수님께 회개하고 낙원에 갔습니다. 세리마태나 세리장 삭개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창녀와 같은 막달라 마리아. 사마리아 여자 백주에 간음하다가 끌려온 여자가 예수님 앞에 나와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1:9에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8:12에서는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이사야 44:22에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엿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니라"고 했습니다.

 2) 질병의 짐을 진자를 초청하셨습니다.

 질병은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인간이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있지만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병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많이 행하신일이 병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이사야 53:4-5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고치는 은사를 주님의 몸된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르 ㄹ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이름으로 병고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생활고의 짐도 담당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삶들이 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고 말씀하셨고 고린도후서 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4)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자도 초청하셨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인간이 불안해하는 것을 죽음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25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소망이 있기 까닭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울사도는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죽음을 호령하였고 성 프란시스는 죽음을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5) 정신적인 모든 짐진 자를 초청하셨습니다.

 염려,불안,초조,고독,절망을 주께서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7에는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소원 하심이니라"고 했고 빌립보서 4:6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二.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신 목적은 1) 편히 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4:27에 "평안은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평안히 쉼으로 새로운 생기를 얻게 하시고 또 어떠한 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2) 사랑의 멍에 지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사랑하사 십자가의 멍에를 지셨습니다.

"인자가 온 곳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만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의 멍에를 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4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메라는 멍에는 참으로 쉽고 가볍습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예수님께 배우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의 선생님 중의 선생님이십니다. 인도의 썬다싱을 불교인으로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 가문좋고,부요했고, 몸도 튼튼했고, 여러 수도사도 만났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번뇌와 고민을 해결 못하고 자살직전에 본문 28절을 읽고 개종하여 성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과 같이 예수님에게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배웁시다. 예수님의 사랑과 봉사를 배웁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배웁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배운 것을 가지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합시다.

 예수님께서 인생을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초청하셨습니다. 죄,질병,생활고,죽음,염려,근심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초청하셨습니다.

초청하신 목적은 편히 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멍에를 매고 예수님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주님의 분부를 가르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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