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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1 (계 0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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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일곱교회를 향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잘나 타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말 안듣고 말썽을 부릴 때에는 무 서운 얼굴로 대하지만,자녀들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는 사랑의 얼 굴로 대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교회 교회마다 필요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편지를 보낸 일곱교회는 물론 초대 교회당시에 있었던 교 회들입니다. 그런에 이 교회들은 각 시대마다 존재했던 교회들의 모습 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에도 일곱 가지 종 류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교 회는 칭찬받은 교회이고,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받은 교 회이며,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함 께 받았던 교회입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을 공부하면서 우리 교회는 어떤 유형의 교회에 속하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2.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 에베소 교회는 에베소 지역에 위치했던 교회입니다. 에베소 지역은 항구 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따라서 이곳은 자연히 부유한 상인들이 많이 모이는 부유한 도시입니다. 에베소 지역에는 유명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다이아나 여신상입니다. 그 당시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바로 이 여신상입니다. 사람은 돈이 있으면 교만 해지고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제일 먼저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다 이아나 여신상 앞에서 절을 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곳에서 바울 사도 는 3년 동안이나 목회를 하였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봉사하였 으며, 아볼로는 유명한 성경 학자가 성경을 가르쳤던 곳도 바로 에베 소였습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 사대"(계2:1)

별의 중의 종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우리들은 바로 주님의 오른손 안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어 주신다는 것딥니다. 또 일곱 금촛대는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사이를 다니시는 예수님은 중보자이십니다. 교회와 교회를 연결 시키시고, 교회와 성도들을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 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리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

 에베소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도 어느 때는 예수님께서 내 사정을 알고 계실까'하는 의심이 생길 때 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행위와 사정과 수고와 인 내를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정통 교회로서 이단이 들 어올 수 없을 만큼 교리적으로 튼튼한 교회였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 니다. 종말론적 이단이 판을 친지가 이미 오래 전입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공중 휴거 사건이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이단이 많은 성도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충현교회가 교리상으로 보수적인 길을 가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의 신앙적인 지류를 살펴보면 위대한 신앙의 순교자 이기선 목사님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 분의 신앙을 김창인 원 로목사님께서 이어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복음적이고 보수적 이며 개혁주의적인 신앙이 우리교회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 습니다. 이단이 행하는 이 시대에 우리 교회는 악한 자들을 절대로 용 납하지 않는 정통 보수의 기치를 든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예수님께로부터 "그러나" 라고 하는 책망도 들 었습니다."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 니라(계2:4). 에베소교회는 신앙적으로는 정통 보수로서 칭찬을 들을 만하지만 사랑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처음 믿기 시작했을 때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뜨겁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 니다.

 처음 사랑은 순수하며,열심이고 뜨겁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처음 사랑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 열심히 새벽 기도와 봉사 활동에도 참여합니다.또 처음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가장 보수적이고 정통적이라는 우리 교회나 교단이 사랑 없는 교회, 사랑없는 교단이라는 말을 듣는 것을 원치않습니다. 주님께 대해서는 뜨거운 믿음과 열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성도들에게 대해서는 깊은 관 심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5절은 에베소 교회가 사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 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내게 임하여 네 촛 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와 교단이 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은 우리들의 위치를 분명히 깨닫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촛 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더이상 거기에 교회를 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귀 있는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아게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 라"(계2:7).

 사단과 싸움에서 이기는 자들만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려야 됩니다. 영적 귀를 가지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일곱 교회 중에는 예수님께로부터 칭찬과 함께 책암을 받은 교회도 있고,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께로 부터 칭찬만을 받은 교회입니다.

 '서머나'라는 말은 유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은 다 의미가 있고, 그 이름대로 되어집니다. 서머나 교회 는 그 이름과 같이 백합화와 같은 향기를 발한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 의 책임자로 있던 교부 폴리캅이 주후 155년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당 시 86세의 고령인 그를 로마 병정들이 체포하였지만 그 인격이 너무 아까워서 어떻게 해서든 그를 살려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폴리캅 감독에게 겉으로만이라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마디만 하면 살려주 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폴리캅 감독은 "내가 86년 동안 살아오면 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 분은 나를 단 한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 그 런 예수님을 내가 어라허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폴 리캅 감독은 결국 화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밖에도 서머나 교회는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계2:8).

 히브리인의 시간 개념은 현재를 강조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계시는 창조자이시면서 동시에 마지 막날 심판자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때때로 억울한 일이 닥쳐도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9절에는 서머나 교회의 형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 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2:9).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앞에 처해 있었습니다. 환난에 처하게 되 면 무서운 돌이 짓누르는 것과같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궁핍 이란 가난과 빈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은 더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집에서 살고 자가용을 굴리고 다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한다고 하는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있 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절대적 빈곤에 빠져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난과 궁핍속에 있는 서머나 교회 는 이름 그대로 아시아의 꽃이라고 불리웠고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교회로 자신들의 신앙의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4. 결론 환난 속에서 괴로워하는 성도들이 계십니다. 궁핍 속에서 울고 있는 성도들이 계십니까. 우리들은 조금도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주님 앞에 칭찬받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나 고난이나 역경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만을 바 라보며 주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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