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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밭에 떨어진 씨 (마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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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운동은 말씀운동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씀 선포와 그리고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과 그리고 들은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는 문제, 또 그 말씀을 깊이 뿌리를 내리는가 못 내리는가 하는 문제와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도 이 세상의 삶과 관련하여 침체되는 문제, 그리고 말씀을 듣고 깨닫고 받아들여 지킴으로 결실하는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돌밭은 산밑의 큰 바위위에 토사로 얇게 덥혀 있는 땅. 여기에 씨가 떨어지면 싹은 나오나 결실한 열매는 얻을 수 없다. 바위가 차단하여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뿌리가 없어 해가 뜨고 바람이 불면 말라버린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뿌리가 없는 문제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게 차단하고 막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바위)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먼저 결과를 살펴보자. 무엇인가 차단하여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씨는 즉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누가는 배반하는 자요. 말씀(혹 천국, 하나님 나라, 신앙) 때문에 어떤 손실이 올 경우 배반하는 자이다. 그러하다면 여기서 말하는 바위 즉 뿌리를 깊이 박지 못하게 차단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즉 自我이다. 자기라는 것이 도사리고 앉아 있어서 그 이상은 뻗어 내려가지 못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도 종교를 필요로 하고 또 종교적 신앙을 가지고 그 안에서 기쁨을 얻고, 감격도 하고,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피상적으로 보기엔 참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아무도 분간할 수 없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잘모른다. 말씀 때문에 큰 핍박과 환난이 일어나서 넘어지든지 배반할 때에야 돌밭임이 드러난다.
그들이 종교를 필요로 하고 종교적 신앙을 가지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이다. 종교적 열정, 종교적 활동, 모든것이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되는가 어떤 가치, 어떤 위안, 어떤 만족을 주는가에 관심을 둔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자기 손실과 자기를 포기하고 내놓으라고 할 때 배반하지 않겠는가 이런 사람들도 말씀을 기쁨으로 받는다는 점을 주의하자.
사변적이고 학문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자에게 만족을 줄만한 가르침을 주면 무척 기뻐한다. 그러면서도 그 말씀이 생명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수가 있다. 또한 종교적 감정과 열정이 감격하게 하고 기쁘게 하고 황홀한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자신들이 추구하고 요구하는 것을 얻을 때에 좋아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았다고 해서 길가나 가시떨기보다 나을바가 없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것이지 내가 중심이 되는것 아니다. 자신을 위한 모든 종교적 열정은 그것이 만족이나 위로를 주던지, 기쁨이나 감격을 주던지, 현실적으로 어떤 소득이 있던지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을 분깃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릴 때에 차단하는 요소가 제거되어야 어떤 경우라도 깊숙이 뿌리를 박게 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하고 이로울 때만 받아들이고 손실이 올 때는 막고 차단한다. 그것은 버린다. 어떤 결정적인 요구를 해올 때는 종교도 포기한다. 혹은 형식은 붙들고 있으나 적당히 타협한다. 신사참배-그렇게라도해야 문닫지 않는다고 논리전개.
전폭을, 전부를, 전체를 드리지 않으면 결정적일 때 배반하거나 넘어진다. 이것은 평소부터 그속에 바위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 바위는 속에 들어 있어서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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