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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창 2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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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브라함의 동역자인 사라가 향년 127세의 나이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이 때까지 자기 소유의 땅이 없었던 아브라함은 헷 족속으로부터 막벨라 굴을 사서 자기 소유 매장지로 삼고 사라를 거기 장사지내게 됩니다. 본문을 통하여 약속의 땅에 동역자를 묻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Ⅰ. 사라의 매 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1-6)
사라가 127세를 살고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 헤브론은 기럇 아르바라 고도 하는데 교제(fellowship)라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헤브론이라는 땅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눈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롯 에게 땅을 양보하고 연약해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縱)과 횡(橫)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은 땅과 자식을 줄 약속을 하십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바로 이런 곳이 헤브론입니다.(13:14-18)

사라는 바로 이런 유서 깊은 곳에서 죽었습니다. 이렇게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슬픔은 어떠합니까 2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했다고 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유일한 동 역자 였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지아비로 모시고 주(主)라 부르면서 62년을 동역하며 살다가 죽었습니다. 요사이 여인들은 남편 알기를 이상하게 압니다. 자기 남편을 부를 때 이름을 부릅니다. 00씨 , 자기 아니면 보이소 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라는 남편을 주(主)라 부르고 남편에게 순복 하므로 선을 행하고 자기를 단장하였느니 라고 베드로전서 3:5-6에서 밝혀 줍니다. 죽을 때까지 한 평의 땅이 있거나 내 집 한 채가 없어도 불평하지 않고 동 역하다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한마디 불평이 없이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이방 땅에 살면서 남편이 가자는 데로 따라 갔습니다. 이렇게 다니다 사라가 너무너무 잘 생기고 빼어난 미인이라서 자기 아내 때문에 아브라함은 죽을까 봐 사라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20:13)하면 행여나 남편이 다칠세라 오빠, 오빠 부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진짜로 두 번이나-한 번은 바로 왕에게, 한 번은 아비멜렉 왕에게 숙청 들러갔습니다. 거기 가서도 아브라함을 오빠라고 남편이 시키는 데로 했습니다.
늙기까지 자식이 없자 죄스런 맘이 있어서 몸종 하갈을 들여보내서 자식을 얻도록 하는-항상 당신(아브라함) 좋도록 하는 사라 였습니다. 65세에 부름을 받아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 이사해 가며 나그네로 62년을 같이 살다가 127세에 소천 하였습니다.

한 번은 손님이 오자 가루 세아로 떡을 만들고 음식을 만들어서 길손을 잘 대접하였더니 아들을 낳게 된다는 하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살다가 이제는 이삭까지 낳아서 며느리 볼 때가 됐는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에 갔습니다.

또 당시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으며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있어서 사라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계속 슬퍼하며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그 때까지도 땅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하고 나그네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지낼 장지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울음을 그치고 시체 앞에서 일어나 헷 족속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 한 이방인입니다.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파시오 그러면 내가 거기 장사를 하겠소 (4절)라고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볼 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약속의 땅 가나안에다 묻고자 결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고향 땅에 대한 애착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고향에 돌아가려고 하고 고향 땅에 묻히려 합니다. 객지에서 죽으면 객사 혹은 횡사라고 해서 아주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반드시 고향 땅에 묻히는 것이 동양인들의 바램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어떠합니까 사랑하는 아내의 시체를 이국(異國) 객지에 묻고자 합니다. 고향에서 2,000리나 떨어진 가나안 땅에 묻고자 했습니다. 그것도 한 평 땅도 소유하지 못한 땅에 묻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1) 첫째; 이 땅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약속의 땅에 아내를 묻고자 했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이 그 땅을 그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땅은 가나안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땅을 믿음으로 소유한 것으로 여기고 그 땅에다 묘를 쓰기로 했습니다
3) 셋째;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가리켜 나그네(stranger)요 우거하는 자(sojourner)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인생철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고 해서 가나안 땅에 그의 소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나은 본향(本鄕)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였습니다.(히 11:14-16)

아브라함은 사라를 매장할 땅을 허락해 달라고 헷 족속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아브라함은 내 주(主)여! 하며 주(主)로 칭하며, 당신은 우리 중의 방백 이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방백(왕)이라고 높이며 오히려 그냥 그 땅을 차지하라고 했습니다.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내 주여! 라고 6, 11, 15절에 계속 이렇게 부릅니다. 헷 족속에게는 이방인인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주(主)라고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방백(왕)이라고 높임을 받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그 신앙이 인정받았음을 말해 줍니다.

5,6절을 보면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크게 호의를 베풀고자 합니다. 우리의 묘 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십시오. 우리 중에서 자기 묘 실에다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지낸다고 해서 금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좋은 데로 좋은 곳을 골라서 장사하도록 하십시오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 살면서도 철저하게 믿음으로 살고 이웃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고 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회서 인정받기보다 사회와 이웃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Ⅱ. 막 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해도 아브라함은 몸을 땅에 굽히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몸을 땅에 굽히는 것은 겸손을 말합니다(7).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부탁하여 막벨라 굴을 내게 주되 준가를 받고 내게 주어서 우리 가족의 매장지가 되도록 해 달라 고 했습니다. 준가를 받고 우리 가족들의 선영(先塋)이 되게 해 달라 했습니다.

이 때 마침 헤브론이 헷 족속이 모인 중에 앉아 있는데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는 성문에 모인 자 중에서 일어나서 아주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밭에 있는 굴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내 주여! 내가 동족 앞에서 당신께 거져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례 지내십시오(10-11)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에 대하여 또 몸을 굽히고 백성이 듣는데서 에브론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돈을 받으시고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게 해 주시오 라고 했습니다.(12,17)

다시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그 밭 값이 은 400 세겔 쯤은 됩니다만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흥정하여 사고 팔고 하리이까 어찌 교계(較計) 하리이까 그만 좋은 자리 당신이 보아서 좋다 싶으면 거기다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그 밭은 거져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14,15)

그러나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헷족속이 듣는데서 말한 대로 은 400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고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밭과 그 속의 굴과 사방에 둘린 수목(樹木)을 다 헷 족속이 보는 앞에서 사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했습니다.(16,17) 이렇게 소유로 하고 막벨라 굴에 사라를 장사하였습니
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그냥 주겠다고 하는 땅을 구태여 막대한 돈을 지불하고 산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도 헷 족속이 진심으로 내 주여!(6,11,15)하며, 당신은 우리 중 방백입니다 하며 그저 주려고 해도 아브라함은 준가를 주고 샀습니다. 헷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아브라함이 사서 소유지로 삼았습니다.
1)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의 호의를 거절하고 기어코 막대한 돈을 주고 산 이유는 무엇입니까-빚진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그 땅을 그저 받았다고 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은 헷 족속에게 영원히 빚진 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2)또 돈으로 사지 않았다면 상속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에게 상속하기 위해서 돈주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그 땅을 샀습니다. 즉 싸인(Sign)을 남기기 위해서 샀습니다.

3)이 막벨라의 땅을 준가를 주고 사지 않으면 에브론이 살았을 때는 괜찮으나 죽고 나면 내놔라 할 수 있으니 보는데서 공개적으로 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기어코 매장 지를 값 주고 산 것은 그것을 분명한 자기 소유의 땅으로 정하고자 함이기도 했습니다. 막벨라 굴이 있는 땅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갖게 된 아주 작은 자기 소유의 땅이었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당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묻혔고 사라와 리브가가 묻혔고 요셉도 이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즉 막벨라 굴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고향이 되었고 나중에 온 가나안 땅을 얻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손들은 이 조상의 무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믿음의 표시로 가나안 땅에 사라를 장사 지내고자 하는데 남의 땅을 무작정 호의로 받아 묘를 쓸 수는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무작정 호의로 받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이 23장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래(來)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의 땅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정복한 땅은 너무도 적습니다. 그러나 장차는 하나님이 온 한국을 세계를 주실 줄 믿고 현재는 억지로라도 〈막벨라〉를 준가를 주고 사야 합니다.

내가 아브라함처럼 이만할 때,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을 때 막벨라를 사 둡시다. 이것이 전 가나안 땅을 얻는데 기초가 될 것입니다.

한마디:막벨라 굴을 사라.

[연구 과제]
A.사라는 성경에서 죽을 때의 나이가 언급된 유일한 여성이다(127세)(23:1)
B.아브라함과 함께 60여 년 동안 나그네 인생을 살아온 그녀에게도 결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16:2-6, 18:1

2. 21:10)
C.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의 여인이요(히11:11) 남편에 대해 순종한 아내(벧전3:6)이며 언약의 후손을 낳은 자로 구속사적 중요성을 지닌다

제목:왜 기도가 응답이 안되나요.(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야고보서 4:1-3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서 간구할 때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기를 원하고 계신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경우를 체험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죄가 있을 때.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이다.
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를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7일만에 곧 죽게 되었다.
다윗이 목숨을 걸고 7일 동안 엎으려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 드렸어도 그가 죄를 범해 하나님을 거역하고 낳은 아들이라 하나님은 그 아들을 치셨다.
이러므로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신다. 죄악을 하나님 앞에 청산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2.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신뢰받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은 것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에 도착했을 때 물이 없자 모세와 이론을 공박했다.(민 20:3-4).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문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 20:7-8)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지 않고 "우리가 물을 내랴"라고 말하고는 자기 자신을 드러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행위였고 아버지 하나님을 슬프게 했다. 또한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반석을 두번 쳐 물이 솟나도록 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신 3:23-29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 하나님께 간청하는 모습. 그러나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모세는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음의 시간을 맞이했다.

모세와 같이 위대한 종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을 때는 기도와 응답을 받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분명히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정면으로 불순종한다면 아무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부르짖어 기도해도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고 순종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도로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3. 고난 당하는 것이 우리 삶에 유익이 될 때.

바울이 교만해질까봐 사단의 사자, 곧 육신의 가시를 그의 몸에 허락하셨다. 사도 바울은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육신의 가시, 즉 사단의 가시를 떠나가게 해달라고 세번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았다.

고후 12:9-10 "내기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기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약한 것들에게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고난이 더 큰 유익을 가져다 줄 때 하나님은 그 고난을 없애 버리지 않으신다.

4. 더 나은 응답을 위해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여호와께 죽기를 구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천사들을 보내어 어루만지게 하시고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한병 물을 주시고 먹고 마시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더 좋은 응답을 주기 위해서 그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응답치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예수님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은 그 때 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기도가 어떻게 응답 안될 수가 있는가
그러나 그때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잔을 옮기지 않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잔을 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비참한 고통을 당하고 돌아가셨지만 삼일만에 부활하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고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은총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더 위대한 응답과 은총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조차도 즉시 응답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응답이손에 잡히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더 나은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 기도응답을 보류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잘못된 동기로 구하는 것

야고보의 어머니가 그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왔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 자신의 아들들을 예수님의 좌우 편에 각각 세워 달라고 간청을 했다. 예수님은 야고보의 어머니의 간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탐욕으로 구하는 자는 주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동기가 바르지 못하면 기도응답이 오지 않다. 우리가 탐욕이 동기가 되어서 기도하면 응답받지 못한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6.믿음으로 구하지 않으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이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고 두려워해서도. 고난의 폭풍에 난파되어서도.
어느 상황이든 믿음으로 기도할 때 응답은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아브라함. 나이 100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자.
말씀 위에 서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할 때는 마음의 확신과 더불어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까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내게 보이리라"(렘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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