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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시 16:5-11, 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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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4:에 보면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나서 발걸음을 돌이 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거기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외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 서 과연 살아나셨습니다"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흥분을 감출 수 없어서 외치는 엄청난 선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까지 이 말은 동방 정교회의 인사말이 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 "주 께서 다시 사셨습니다"라고 하면 다른 쪽에서는 "정말로 다시 사셨습니다"라고 화답합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인사를 나누어 보십시다. 제가 "주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하면 성도 여러 분은 "정말로 다시 사셨습니다"라고 화답하시기 바랍니다("주께서 다시 사셨습니다"-"정말 로 다시 사셨습니다" 아멘).

유명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개혁사역이 장애에 부딪혀 어렵게 되자 크게 낙심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터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낙심하여 누워있던 루터였지만 깜짝 놀라서 아내에게 물어 보았습 니다. "여보, 누가 죽었오" 그랬더니 그의 아내가 "예,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대 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버럭 성을 내면서 "아니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런 망령된 말이 어디 있단 말이오"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루터의 아내가 정색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좌절하고 절망할 수가 있단 말이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그러면서 다시 일어나 종교 개혁의 사역을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지킵니다. 우리 주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을 믿고 또 부활의 주님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어떤 현실, 그것이 비록 죽음과 같고 무덤과 같은 현실이라 고 할지라도 루터처럼 담대하게 일어나서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가 부활절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과연 오늘 우리 가운데, 그 리고 우리 각 사람 마음속에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그 분을 낮선 나그네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가정에서 주일 저녁이 되어 가족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 다.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각각 오늘 하루 있었던 감사했던 일들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었습 니다. 그 중에 교회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 늘 예배당에서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감사합니다. 근데 하나님도 거기 같이 계셨으면 참 좋 았을 텐데요"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성탄절도 그렇고, 부활절도 그렇고, 대체로 우리끼리만 즐기면서 그 날들의 주인이신 주님을 제쳐놓게 되는 일이 있다 는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이 부활절 예배를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이 열려지고 발걸음이 돌이켜 지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본문에 있는 대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는 말씀을 가지고 은혜 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먼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은 항상 모든 일에 우리 보다 먼저 가신다고 하 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부활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은 속히 안식일이 지나가서 주님이 묻히신 무덤에 가기를 기다렸 습니다.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렸기 때문에 안식일이 지나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무 덤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지난 금요일 장례식 때 황망 중에 주님의 몸에 제대로 향유조차 발라 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향유를 준비해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가면서 걱정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덤 문을 막아 놓은 그 육중한 돌을 어떻게 옮길 것이냐 하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덤에 도착해 보니 자기들의 준비와 걱정은 다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향유가 필요 없게 되었고 천사들이 이미 무덤 문을 열었으니 그 걱정 도 다 기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이 먼저 다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보다 먼저 해 주셨습 니다. 여기에 부활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세상에 나기 전에 이미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먼저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 다. 우리가 창세기 1:을 읽으면서 나룰 위하여 나보다 먼저 모든 것을 다 준비 해 놓으신 주 님의 은총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롬5: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와 화목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 고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기 전에 주님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부활절을 통하여 우리가 체 험해야할 것이 바로 이 놀라운 주님의 선행(先行)하는 은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요14:에는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현실 이 어떠하든지 상관할 것 없이 항상 소망이 넘칩니다. 왜냐하면 먼저 가신 주님께서 내가 있을 곳을 준비해 주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은 아들을 모리아 제단에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리아산을 향하여 3일 길을 갔습니다. 그 3일이 아브라함에게는 3년보다 30년보다 더 길었을 것입니다. 100세 에 낳은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 어찌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모리아 산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아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칼을 빼 어드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라고 급하게 부르시면서 아브라함의 행동을 제지시키 셨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삭 대신 바칠 제 물로 양 한 마리를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렇게 나보다 먼저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여호와 이레"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겠느 냐"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활의 주님을 믿는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시 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그런데 먼저 가신 주님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갈릴리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 활하신 우리 주님은 왜 갈릴리로 가셨습니까 갈릴리는 우리 주님께서 맨 처음 그 사역을 시작하신 곳입니다. 우리 주님은 왕의 도성이 있는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멸시받던 지역 갈릴리에서 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이 곧바로 찾아가신 곳이 또한 갈릴리였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신 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고 했습니다. 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열열이 환영하면서 "호산 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번도 이런 저들의 환영 때문에 그 목표가 흔들린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부귀나 권세나 영광을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의 영광이 그 목표였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이 그 삶의 내용이 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로 가신 것은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 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리고 오직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만이 주님이 하 실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여기 에 부활절의 의미가 있는 줄 믿습니다.

또한 갈릴리는 당시로서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땅이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 은 자신들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 멸시의 땅 갈릴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바로 그 갈릴리가 삶의 터전이었고 사역의 현장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신 땅이 바로 그 갈릴리였습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는 오늘 우리들도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갈릴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갈릴리에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갈릴리가 어디입니까 분단된 체 혼란 속에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바로 오늘 나의 갈릴리입니다. 어떤 사람 들은 이 땅이 싫다고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예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하여 해 산을 미국에 가서 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오늘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 신다면 미국이 아니라 바로 이 땅 대한민국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가정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까 직장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까 이 웃이나 성도가 싫어질 때가 있습니까 그래서 어디론가 도망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어 떤 목사님 사모님은 그래서 아무도 몰래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간 일이 있었노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여러분은 도망가고 싶은 바로 그 현실에 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올바른 부활 신앙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 다.

 3.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오리라"고 했습니다.

마28:16에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 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명하신 그곳에 가서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었습 니다.

그런데 거기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 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는 선교의 사명이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이라고 했습니 다. 사마리아인도, 이방인도, 죄인도, 부정한자도 다 주님께 용납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에서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 음입니다. 이 복음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통하여 아직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부활 현장을 맨 처음 목격하고, 부활 메시지를 맨 먼저 들었던 여인들이 맨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달려가서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때부 터 시작된 전도가 오늘까지 계속되어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빚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오 늘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우리들, 부활절을 지키는 우리에게도 주님은 역시 "가라"고 하십 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아가십시오.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모든 사 람을 향하여 나아가십시오. 가서 전하십시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 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믿고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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