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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화과 나무의 교훈 (막 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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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무화과의 비유를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배고 고픈 예수는 지나가다 한 무화과 나무에게 철도 아닌데 열매를 요구하 였다. 열매를 얻지 못하자 나무 자체를 저주해 버린다. 다음날 제자들 이 지나다 보니까 그 나무가 하루 사이에 완전히 말라 버렸다. 놀라는 제자들에게 무슨 말이든지 하고 의심치 말고 믿기만하면 그대로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몇 가지의 교훈을 받아야 하겠다. 무화과 나무가 그리스도에게 열매를 바치는 것은 철과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신자들을 나무처럼 비유하면서 언제나 준비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열매 대신 잎만 무 성하면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남에게는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신자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열매 가 있어야 한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의 이야기는 어린 나귀의 이야기와 함께 나온다.

무화과 나무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버티고 서 있는데 어린 나귀는 죽 을 힘을 다해서 예수를 모시고 걸었다. 이 두 이야기가 모두 사람이 아닌 생물을 이용해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같은 내용인 것이다. 신자 는 주를 모시고 사는 이들이요 그렇다면 반드시 특별한 열매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신자들을 만나서 신앙 생활에 좀 더 열심을 내라고 말하면 때가 아닌 것처럼 대답한다. 지금은 너무 바쁘고 사업이 부진하고 가정이 문제가 있고 건강이 나쁘고 꼭 해야할 일이 있고 등등 핑계를 대면서 어떤 염 래 내놓기를 거부한다. 봉사하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거의 하지 않 음을 물론 예배에도 도무지 열심을 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삶 전체 가 메말라 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일은 특정한 때를 잡아서 하는게 아니다. 언제든지 요구하 시면 복종해야 한다. 아니 언제고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한 님의 일을 위해서도 무엇인가 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결심하고 무엇인가 주를 위해서 해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교회의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잎만 무성 할 수 없다.

 다음으로 그리스도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방법을 통해서 제자들에 게 믿음을 가르친다. 예수는 나무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 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그러나 나무는 아무렇지도 않 게 서 있었다. 제자들은 곧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잊어버린다. 다음 날 그들은 완전히 말라 비틀어진 나무를 보고 놀란다. 전날 일을 기 억했기 때문이다.

 예수가 저주하자 나무는 그 즉시 마르기 시작했다.하지만 그것이 눈 에 나타나는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믿음의 일은 이와같을 경 우가 많다 실제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무화과 나무를 보면서 우리 신앙의 일도 이처럼 시간과 인내 가 요구됨을 알아야 한다.당장 나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면 실망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기도로 말할 때 그 효력은 즉시 나타난다. 우리에게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 효력을 보고 알아볼 것이다.

기도를 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즉각적으로 그때부터 일이 진행 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보이는 세계에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믿음의 법칙이다. 믿음의 사람은 이 사실을 알고 기다리 는 사람이다.

 만약 예수께서 이 세상만 보는 눈을 가졌다고 한다면 자신의 명령에 도 불구하고 끄떡없이 서 있는 무화과를 보고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 의 영적인 세상 동시에 주인이었다. 잎만 무성한 나무를 저주하고 그 저주가 영적인 세상에서 나무를 즉각적으로 죽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이러한 눈이 우리 신자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신자는 안보이는 세 계의 일을 믿음을 통해서 본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신자는 하 나님의 말씀 영으로 살아 있음을 믿는다.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그것 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고 믿는다. 영적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요 또한 이 믿음으로 우리는 영적인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말씀하셨 다. "무엇이든지 말한 것은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 로 되리라." 그렇게 하면 산이라도 움직인다는 말씀이다.문제는 의심 이다. 어찌말하고나서 의심을 하지 않겠는가우리는 죄인들이다. 음욕 이나 미움을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의심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우리의 본성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기에 무엇이든 명령하고 믿었다.그의 본성에 음욕과 미움이 없듯이 의심도 없을 수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에 대 해 추호라도 의심을 할 수 있겠는가 왕은 자신의 말에 의심할 수 있 다 실제로 왕의 명령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이루어진다. 그 말씀이 천지를 만들었고 또 우주의 방향을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적인 인간이 우리가 어찌 말한 것을 믿고 의심하 지 않겠는가우리가 어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하고 죽은 시체를 향 해서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그 말한 것을 의심치 않겠는가아무리 믿음 을 가지려고 노력한다해도 여전히 마음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어찌하 겠는가이는 우리가 음란한 생각, 미운 생각을 안하려는 노력과 하나 도 다를바가 없다.

 그러거에 우리는 믿음도 그리스도를 의지한다.그가 우리를 대표하고 그의 모든 하신 일이 우리를 위한 것이기에 믿음도 그의 것을 의지하 고 하나님앞에 선다. 우리 마음에는 의심이 한 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확신을 의지하고 섰기에 이처럼 연약한 믿음도 응답을 보 되 너무도 확실하게 보는 것이다.그것이면 족하다.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말하고 의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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