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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유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마 13:34, 막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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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중 해석을 필요료 하는 말씀이 많이 있지만 특별히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부터 비유로 말씀하것을 면밀히 살펴보고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것은 역사적인 격 차, 문화적격차, 철학적 격차, 언어적 격차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유 말씀은 더욱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야 말로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의 메세지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의 말씀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이러한 점에서 비유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비유의 본래 의미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느냐가 예수님의 말씀을 얼마나 정확히 알게되느냐와 예수님을 이해하느냐에 관건이 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비유라는 명칭이 붙여서 제시되고있는 것은 30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30개만 비유라고 이해하면 안됩니다. 비유라는 명칭이 붙오있지 않지만 내용상으로 보아 분명히 비유인 것이 17개나 들어있습니다. 합치면 47개가됩니다. 또 "같은", "처럼", "마치"란 말로 소개되는 2개가 있습니다. 합 치면49개가 됩니다. 이 외에도 비유로 생각할 수 있는 26개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모두 합치면 75개로 확대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 소개하는 첨가된 부분을 뺀다면 예수님의 말씀 그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비유는 성격상으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은 형태가 있습니다.

1. 실화체 비유입니다.
당시의 유대인 풍습이나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비유하고 계십니다. 이런한비유들은 보통 현재 시제로서 나타납니다. 장터에서 아이들이 놀이하는 장면(마11:16-19), 밀가룩 반죽덩이에서 발효하는 누룩(마 13:33), 양 떼를 떠나방황하는 한 마리 양(마 18:12-14)

2. 이야기체 비유입니다.
이야기체의 비유는 과거에 일어난 특정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보통 한 사람의 경험인 것입니다. 곡식을 뿌린 농부가 그의 밭 에 원수가가라지를 뿌려음을 알게되는 것(마 13:24-30). 한 과부의 끊임없는 요 청때문에원한을 풀어주는 한 재판장의 사건(눅 18:1-8). 이런 이야기는 계속 일 어나는사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이기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3. 예화체의 비유입니다.
예화체의 비유는 특히 누가복음에 많이 나타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비유(눅 10:30-37), 어리석은 부자 비유(눅 12:16-21), 부자와 나사로 비유(눅16:19-31), 바리세인과 세리 비유(눅 18:9-14) 등 입니다.

2.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먼저 말씀드린 성격 구분에서 이미 어느정도는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목사님과 요즈음 신문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신문을 볼 때 제 일먼저만화를 본다는 것입니다. 그 중 에서도 한 장면만 있는 풍자만화라고 합 니다.
한 그림에 그날의 중요 관심사에 대해 풍자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있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일간 신문 형태로 나오는 종교신문이

있는데 기독교인 이라면 이것을 보는것이 좋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세상 소식은 그 정도 나오면 되고 중요한 것은 종교면이라고 합니다. 종교면에 나오는 기독교 풍자만화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것만 보아도 은혜가 될 때가 있으며전도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현실적으로 상상되지 않는(천국, 종말) 주변 세계에 대해서 그림으로 보여주심과 같습니다. 이러한 비유적인 말씀은 오랬동안기억되어 두 복음서에서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 사건도 38개나 됩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밝히시는 비유사용 목적입니다.

막 4: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말씀을 가르치시되

막 4: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막 4: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막 4:33절은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막 4:11-12절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솔직히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난해한 구절로 손꼽히는 구절입니다. 여러신학자의 의견도 분분했습니다.
막 4:11 말씀에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비유는예수님께서 쉽게 말씀을 해석하시기 위함이 아니요 의도적으로 감추시기 위한비유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감사하나이다"(마 11:25)라고 기도하신것으로 보아 더욱 분명해 집니다.

(눅 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마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주의하라 하신대
(마 22: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할까 상론하고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을 몹시 시기하였으며 어떤 빌미를만들어 가지고라도 예수를 모함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으며 특히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가운데서 그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때문에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다 마치기 까지 순조롭게 여행하시려면 비유를 의도적으로 감추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세인들을 향해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라고 책망하 셨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도 눈치를 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마 21:45)그러나 여기서 비유의 뜻을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기들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에 대하여 알았던 것입니다.

막 4:12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의 말씀을 칼빈은 이렇게 표현하고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슴프레한 눈을 가진 사람이 태양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햇빛 속으로 들어갔을지라도 그의 눈은 여전히 어두을 뿐이다. 잘못은 햇빛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버림받은 자들을 우준하고 완악하게 하는 것은그들 자신의 타고난 부패성 때문이며 말씀에 관한 한 이는 우발적이다."

비유는 결국 어린아이 같은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으며 세상의 온갖더러운 것으로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어렵고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또 이러한 비유는 사람들이 너무 깊게 생각한 나머지 원래의 뜻을 잃어버리고이상한 말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단들의 특성이 비유와 같은 말씀을 자신의취향에 맡도록 마구 해석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얼듯 들으면 그럴듯 한 달콤함에도 유혹되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한때는 예수님이 성만찬을 드실 때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눅22:19)고 하신 말씀을 이는 그 물질들이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를 잘못 해석하여 그 물질들이 화학적으로 변화를 일으킨다는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요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 11: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무지 때문에 말의 뜻을 분명하게 해석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 11:14)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데 선물을 지나치게 포장하면 선물의본질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중고등부 학생들이 선물교환하는 것을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크게 멋있게 포장된 선물을 뽑았습니다.
그 뽑힌 선물은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는데 한 겹을 뜯어내고 또 한 겹을 뜯어내고얼마나 많이 뜯어내어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이제 선물이 나오겠지 하고 또뜯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작은 볼펜하나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크게실망하지 않은것은 고급만년필 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선물)을 지나치게포장하여 본질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특히 비유는 포장하기 쉽상입니다.
그것도 자신들 마음대로 포장할 때는 진정으로 주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상실됩니다. 비유 해석에 있어서 초대 교부 시대, 중세 시대까지는 알레고리해석으로 꽉차 있었습니다. 알레고리 해석은 각각의 부분들마다 단어마다 의미를부여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방법은 예수님이 단순한 진리를 전하는것인데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과대 포장된 선물과도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어진 말씀이 될 수도 있으며 들어난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특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영적감동과 역사로 함께하실 때는 문자적으로 공부하고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 보다 더욱값진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며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체험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아 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날도 바리세인과 같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책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혹시 이러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아닙니까만일 현재도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을것입니다. 깨달음이 없을 것입니다. 비유는 영원한 감추인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설명한것을 다 보았다고 또 바리세인 처럼 자기들을 향해서 하는 말인줄 알았지만 실제의 깊은 의미는 알지 못한것 처럼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이러한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달고 오묘한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통해 깊은 교재가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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