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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기도와 권면 (살후 03:1-17)

첨부 1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사였던 재림의 교리를 2장에서 다시 밝힌 저자는 3장에 와서는 기도에 관한 말씀과 실제 생활에 있어서의 교훈을 준다 본문은 기도와 생활의 권 면을 말하고 있다

1.기도 생활(3:1-7절)1)바울의 기도 요청(1절) (1)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고 (2)지금 그는 그들에게 자기와 동 역자들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3)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성도들이 남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가장 크고 힘있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받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는 성도간의 교통이 유지되는 한 방편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아무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함께 만날 수 잇는 피차간의 교통이 기도하는 것으로 유지되는 것이다(고전5:

3. 골2:5)

사역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역 자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주의 사역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엡6:19)

2)바울의 기도의 요청의 목적(1-2) (1)복음의 진보가 계속되기를 위하여(1) 그는 개인적이고 어떤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를 요청한 것이 아니고 오직 복음을 널리 전하려는 데 있었다 땅위의 무수한 영혼들이 날마다 멸망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주의 복음은 신속히 전파되어야 한다는 불타는 사명감이 그에게 항상 있었다

그 당시 복음은 불신 유대인들의 핍박과 이방인들의 광신 주의와 로마 권력의 시기에 의하여 복음 전파는 심각한 방해를 받았다 바울 사도는 간절한 소원은 복음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빨리 성공적으로 빨리 전해진 것처럼 다른 곳에서도 속히 전해져서 하나님의 이름이 빛나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되도록 기도를 부탁한 것이다(고전9:12)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맡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을 위한 기도를 특별히 부탁하고 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에서 처럼 다른 곳에서도 복음의 진보가 계속되게 하는 것이었다(Bruce). 여기서 '달음질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트레케'()는 경주와 관련된 용어다. 바울은 때때로 자신의 사도 적 노력을 경주로 비유하였다(고전 9:24;갈 2:2;빌 2:16). 본 절에서는 하나님의 복음이 빠르게 전파되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또한 '영광스럽게 되고'란 표현은 승리에 대한 묘사로서 사람들에게 미치는 말씀의 영향력에 중점을 둔 말이다. 이렇게 두 동사가 함께 사용된 경우는 신약성경에서 본문이 유일한 예이며 그 의미는 "계속해서 달려가서 영광에 이른다"는 것이다(Robertson). 그래서 라이트푸트(Lightfoot)는 "승리의 질주를 하여"라고 본문을 번역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이 온전히 이루어짐으로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다른 곳에서도 계속적인 복음의 진보로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Morris).

 (2)악한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기 위함(2) 바울은 예의도 염치도 양심도 이성도 없는 철면피한 사람들과 악의에 찬 악질적인 인간들에게서 방해를 받고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다 그런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있었다(행14:

2. 16:1

9. 17:5-

9. 18:5-6) 그는 몇 번이고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후11:23-28)

여기서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이란 하나님의 법과 나라법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제멋대로 하는 완 악하고 오만한 사람을 뜻한다 또한 더 악하고 무수 운 공산주의자들에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라

(3)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2) 이 말씀은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믿지 않고 대적한다는 뜻이다 이 땅위에 신실한 자들의 수는 옛날부터 적은 것이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이 말씀이 본문 중에 나와 있는 것은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이 이 믿음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본 구절은 바울이 대적자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서 복음에 응답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칼빈(Calvin)은 본구절을 '신앙이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번역하여 그 대적자들이 외견상 경건의 흉내를 내면서도 실제로는 그것과 거리가 먼 자들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그래서 헨드릭슨(Hendriksen)은 '믿음의 결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복음 자체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진술했다. 한편 '믿음'(, 피스티스)이란 명사가 본 구절에서 관사(, 헤)와 함께 사용되어 기독교의 '그 믿음'을 가리키며(갈 1:23), 복음에 대하여 믿고자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Bruce).

 3)바울의 기도의 결과 (1)주님이 굳게 하심(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본 구절은 믿음이 없는 바울의 대적자들에 대한 묘사(2절)와 대조적으로 주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Thomas, Hendriksen). 바울은 하나님의 참되심(롬 3:4)이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말로서 '미쁘사'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신앙 고백적 표현으로서 그의 서신을 통해 자주 언급되고 있다(고전 1:9;10:13;살전 5:24). 이와 같이 바울이 주님을 신실한 분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울이 자기 자신보다 타인에 대해서 더 많은 염려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이다(Calvin).

 (2)주님의 보호(3)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본 구절은 바울이 주기도문 중 '악에서 구하옵소서'(마 6:13)를 회상한 것으로 짐작된다(Bruce, Robertson). '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포네루'()는 주석가들 사이에서 세 가지 견해로 나타난다. (1) 이 명사를 남성으로 취급하여 '악한 자'(the evil one) 곧 사단의 대리자로 보는 견해이다(Calvin, Meyer, Bengel). 그 이유는 이 말이 롬 12:9와 살전 5:22에는중성 형용사로 나타나지만 신약성경에는 남성형용사로 쓰인 것이 중성 형용사로 쓰인 것 보다 4배나 많기 때문이다(Lightfoot). (2) 이 명사를 중성으로 취급하여 롬 12:9에서처럼 '악'(evil)로 보는 견해이다(AV, RSV). (3) 이 명사를 중성(악, evil)인지 남성(사단, the evil one)인지 분명히 단정하지 못하는 견해이다(Bruce, Robertson). 이상과 같은 주석가들의 견해에서 첫 번 째 견해가 지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본 서신과 첫 번째 서신에서 사단이 자주 언급되기 때문이다(2:9;살전 2:18;3:5).

 (3)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순종(4)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안에서 확신하노니-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사도 적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갈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 확신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될 것을 말하고 있다(Bruce). 즉, 그의 확신은 계속적이며 진행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다(Morris). 이와 같은 그의 확신은 '주안에서'라는 신앙의 기초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롬 14:14;갈 5:10;빌 2:24). 그들은 주님과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가 그들에게 권고한 것을 행할 것이다. 나아가서 그 일을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완성시키시는 주님의 신실 성(빌 1:6)에 의해서도 그들은 바울의 명령을 준행하게 될 것이다.

 4)바울의 기도의 부탁 (1)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기를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본 구절은 앞뒤 사상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Morris). 즉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의 사도 적 가르침을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 행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지 아니하고서는 그 가르침을 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 구하고 있다. 여기서 '인도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카튜뒤나이'()는 미래 능동 희구 법으로서(눅 1:79;살전 3:11), 장래에 대한 강한 소원을 나타낸다. 이것의 원래 뜻은 길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해 버리고 '직행하게 하다'의 뜻이다. 한편 '마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르디아스'()는 속 사람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바울은 주님만이 사람들의 속 사람을 주장하시며 변화시키는 분임을 믿고 있기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님께 호소한 것이다.

 (2)하나님의 사랑을 알도록

하나님의 사랑-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텐 아가펜 투 데우'()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냐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냐로 다르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혹자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사랑'(Calvin, Meyer, Hendriksen)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바울이 그 서신 서에서 사용하였던 표현 양식이기 때문이다(롬 5:5,8;8:39;고후 13:13).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문맥상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이라고 주장한다(Alford, Hiebert).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전자(前者)와 후자(後者)의 개념으로 분리된 의미가 아니라 이 두 가지 개념 모두를 포함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의 대상으로서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지배 원리로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사랑하게 하는것을 말한다.

 (3)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인내-'인내'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모넨'()은 혹독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의 목적과 신앙에 대한 충성을 지키는 사람의 특징을 지적하는 단어이다(Grim-Taylor). 본 구절도 앞 구절과 같이 두 가지, 곧 '성도를 위한 그리스도의 인내'와 '그리스도를 향한 성도의 인내'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모든 박해를 참고 견디신 그리스도의 인내를 의미하며, 이차적으로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인내하는 태도를 가리킨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Morris).

 2.규모 있는 삶(3:6-18절) 본문은 규모 있는 생활을 권하고 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거짓 스승들의 영향을 받아 규모 없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6절에 “규모 없이 행하고”란 말이 있는데 [규모 없이]란 말은 [아탁토-스]란 말로 게으름뱅이 또는 질서나 예의 같은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본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 규모 없이 행하는 무리가 있다는 소식에 의한 것이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명령함에 있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근거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진정한 사도 적 권위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서 그 명령의 절박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데살로니가 교인들로 하여금 그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함이다(Morris). 그러므로 이 명령은 바울 이라는 한 개인으로부터가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인 만큼 반드시 정중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Calvin).

규모 없이 행하고-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아탁토스 페리파툰토스'()로 '빈둥거리며 무질서하게 노는 것'을 특별하게 지칭하는 단어이다(Morris). 여기서 헬라어 '아탁토스'는 원래 군사 용어로 '대열을 이탈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Robertso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릇된 재림 관과 임박한 종말의 지나친 강조로 인해 불성실하며 무위 도식하는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살전 5:14).

 우리에게 받은 유전-'유전'(, 파라도신)은 문자 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넘겨진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교훈', '가르침'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이에 대해서는 2:15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체류할 때 그들을 향해 선포했던 복음을 비롯하여 본 서신을 통해 제시한 교훈과 권 면까지도 포함한다(살전4:11, 12;5:14).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여기서 의미하는 '떠남'은 출교(excommunication)와 같은 공적 추방이 아니라 개인적인 교우 관계를 멀리하라는 말이다(Calvin). 즉 이것은 모든 교제의 단절이 아니라 의심받고 있는 범죄자로부터 자신을 멀리 떼어놓으라는 의미이다(Morris). 이러한 바울의 경고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못된 교리에 미혹되어 부패하게 될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1)수고하며 일하는 삶(3:8-12) (1)노동은 신성한 것이다(8-9)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일하게 하셨고 더구나 범죄 이후는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일하게 하셨다(창3;19) 십계명에서도 엿새동안 힘써 일하라고 하셨다(출20:9) 주일을 지키는 법은 엿새동안 힘써 일해야 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신관은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 일하시는 하나님 노동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다

막3;20을 보면 예수님은 “식사하실 겨를도 없이 일하셨다” 또 그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 라고” 하셨고(요9:4)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다(요5:17)

(2)일하고 먹어야 한다(9-10)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이러한 바울의 명령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수 있고'(창 3:19)라는 말씀에 기초한 것으로 짐작된다(Bruce).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모범을 보인 것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함축성있는 교훈을 통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다(Morris). 바울은 여기서 자신과 그의 동역자들이 스스로 노동을 하면서 복음 사역을 감당했음을 들어, 노동의 중요성을 분명히 강조하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노동에 대한 책임을 좀더 설득력 있게 권면하고 있다. 하나남께서는 게으르고 나태한 행동을 싫어하신다(시 128:2;잠10:4). 그리고 노동은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창 1:28)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교리로 자신들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제의 떡을 나눌 자격이 없다.

 (3)게으름은 죄악이다(10) 사도 바울은 무분별한 자선을 금하셨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눅6:30)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여기서 구하는 자란 게으른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과 병자들과 무력한 사람들 활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주라는 것이다 또한 고통 당하는 자들을 동정하고 관용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들을 도와주어서는 아니 된다 게으른 사람은 배고 품이란 엄격한 교훈을 그들의 잘못된 삶의 방식을 고쳐야 한다 게으른 자들을 도와주는 것은 이중적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된다 첫째는 게으른 자에게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이 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게으름을 정 죄하고 있다 잠6:6절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하셨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 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6:10-11)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4)세 종류의 일군(11-12) 너희 가운데...일만 만드는 자들-바울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표현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 속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바울이 비난하는 대상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을지라도 본절에 언급된 구체적인 사실로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이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일만 만드는 자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에르가조메누스'(, '참견하다')는 신약성경 중 본문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래서 모페트(Moffatt)는 '일에 참견하기만 하는 자들'이라고 번역하였다. 이와 같이 데살로니가 교인 중 재림이 임박했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하지 말고 재림을 준비하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권하기를-'명하고...권하기를'이란 표현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엄하게 경고조로 말하는 반면 인정이 넘치는 따뜻한 훈계조로 호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Hendriksen).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여기서 '종용히'로 번역된 혤라어는 '메타 헤쉬키아스'()로 이것은 일반적으로 말썽을 피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가리킬 때 쓰여지는 단어이다(Bruce). 그렇다면 본구절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못된 종말 사상으로 인해 야기된 현재의 동요와 흥분된 상태를 멈추고 자신의 양식을 얻기 위해 스스로 일을 하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아량이나 관대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직 자신이 일한 것의 대가만을 기대해야 한다. 이렇게 될때 데살로니가 교회가 굳게 설 수 있는 것이다.

 A.일하지 않는 일군(11)-있으나 마나 하는 일군 B.일만 만든 일군(11)-없으면 좋을 일 군 C.종 용히 이하는 일군(12)-꼭 필요한 일군

2)선을 행하고 낙심치 않는 삶(3:13-14) (1)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약하기에 낙심함(수1:7-9) (2)환경과 여건이 나빠서 낙심함 (3)종교 생활의 염증을 느껴서 낙심함 (4)속히 거두어 드리는 것이 없기에 낙심함 (5)알아주지 않고 배신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갈 6:9에서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권 면한 후 글을 맺기 전에 본 구절과 같은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바울은 게으른 자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성도들은 요동하지 말고 각자 행동에서 하나님 계명에 의하여 최고선을 행해야 함은 물론 어떤 어려운 국면에 처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낙심치 말라'는 이와 같은 의미를 잘 대변해주고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엥카케세테'()로 '겁내다', '시들다', '약해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 동사는 데살로니가의 경건한 교인들이 게으른 자의 행동으로 인해 실족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의미를 지닌다(Calvin). 한편 '선을 행하다가'는 헬라어로 '칼로포이운테스'()인데 신약성경 중 본문에서만 사용되었다(Bruce). '칼로포이운테스'란 말은 단지 '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좋은 일, 명예로운 일을 행하라'라는 의미로서 모든 삶의 국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을 말하며, 악행과 대조되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영광이 되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일을 가리킨다(롬 7:21;고후 13:7;갈 6:9).

 갈라디아서6:7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선을 많이 행해야 한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이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거두는 때가 있다 그런데 선을 행하다가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참고 행해야 열매를 거두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련과 유혹 속에서 선한 일을 계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중단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낙심케 되는 이유는 자신의 무력함이나 허물과 죄 실망 오해 배은 망덕 배신등 일을 하여가는 가운데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 이유는 “때가 이르매 거두어 드리기 때문입니다”(갈6:9 전3:1)

3)불순종자들을 권 징하고 권하는 삶(3:14-15) (1)사귀지 말라(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이 편지'는 본 서신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명령하거나 권면한 모든 교훈을 가리킨다. 한편 '순종한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파쿠에이'()로 원래 '듣다'라는 의미인데(행 12:13), 주인의 명령을 듣고 다음에 그 들은 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바울은 앞에서 그의 명령은 주님으로부터 기원된 것임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그의 말에 순종치 않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다(Calvin).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바울은 불순종하는 자들과 교제를 끊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지목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세메이우스데'()는 '상징', '표적', '징후'라는 명사 '세메이온'()에서 파생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 중 본문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당시 영수증이나 공문서의 서명에 일반적으로 통용된 단어이다(Milligan). 문자 적으로는 '불순종하는 자에게 표를 붙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지목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러한 자들의 행동을 주목하여 본 후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멀리하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또한 '사귀지 말고'의 번역된 헬라어는 '메 쉬나나미 그뉘스다이'()로 '아무도 친밀이 교제하지 말라'는 의미로서(Frame),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권고했던 징계인 출교(고전 5:9-13)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불순종의 정도가 고린 도 교인들처럼 극도로 패역 하고 완악 하지 않았기에 바울은 징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불순종하는 자들을 선도하는 입장에서 또한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징계를 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Morris).

 (2)부끄럽게 하라(14)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히나 엔트라페'()이다. 여기서 '엔트라페'()는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 중간 태로 '어떤 사람에게 대들다' 혹은 '모욕을 주다'라는 의미이다. (2) 수동태로 '수치를 당하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타당하다고 본다(Robertson). 바울이 이러한 징계를 사용하고자 한 목적은 이처럼 죄인을 회개의 부끄러움으로 인도하여 그를 돌이키도록 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Morris). 그렇지 않으면 수치가 죄악을 깨닫는 첫 단계이기에 게으른 자들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함으로써 교회에 더 이상의 혼란과 불순종의 파급을 피하며 이러한 본보기를 통해서 다른 성도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Calvin).

 (3)형제같이 권하라(15)히3:13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앞 절과 본 절에서 징계 자에 대한 바울의 일관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규모 없이 행하고 빈둥거리며 참견만 하는 자들을 원수같이 여기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기독교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대우하라고 권고한다(Bruce). '권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누데테이테'()는 '훈계', '경고'의 의미를 가지고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장로들에 의해서 행해질 수 있다(살전 5:12, 13). 이처럼 진정한 의미에서의 징계는 형제같이 생각하고 권 면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할뿐만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딤후 2:25), 의를 배우며(사 26:9), 참된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데 있다(히 12:6). 그러나 이 징계가 받아들이지 아니할 경우 공식적인 출교(excommunication)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마18:17;고전 5:11-13).

 3.결론(3:16-18절)1)평 강의 하나님(주)께서 성도에게 평 강을 주시기를 기원하였고 평강의 주-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퀴리오스 테스 에이레네스'()는 신약성경 중 본절에서만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공통적으로 '평강의 하나님'(, 호 데오스 테스 에이레네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롬 15:33;16:20;빌 4:9). 그러나 이 두개념은 큰 차이가 없다. '평강'(,에이레네)은 모든 사람의 안녕과 질서를 의미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들(게으름과 불순종)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Thomas). 이 같은 평 강은 인간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일 뿐이다. 그리고 '평강의 주' 만이 실제로 신자들 사이에 화평을 주는 동시에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는 데 기초가 되신다(엡 2:14-18).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 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여기서 '때마다'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 판토스'()는 신약성경 중에서 종종 합성되어 '디아판토스'()로 사용되었다(막 5:5;눅 24:53;행 2:25). 이 단어는 '계속적으로'(continually)라는 의미로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어의 평 강이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변치않는 영원한 평강을 가리킨다(Morris). 즉 주의 평 강이 계속 유지되고 단절이 없기를 요구하는 것이다(요 14:27;16:33;골 3:15). 한편 '일마다'로 번역된 헬라어 '엔 판티 트로포'()는 '모든 면에서'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때마다'란 표현과 함께 강조 적인 표현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평 강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주의 평 강은 외부의 상황과 조건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평 강이다(Morris).

 2)평 강의 하나님 (주)께서 성도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였고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바울은 주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보증하신 약속을 간구하고 있다(Thomas). 하나님은 결코 그의 백성을 버리거나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마 28:20;히 13:5). 실제로 주의 평 강은 주의 임 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마 1:23). 성도들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있음과 그가 자기를 신뢰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심을 알 때에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소유하게 된다(요14:27). 한편 본문에서 '너희 모든'(, 판톤휘몬)이란 표현이 경건한 자들만을 가리키는지 게으름을 피우며 바울의 가르침을 불순종한 자들도 포함하는지 본 문맥에서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런데 바울이 편지하는 대상이 데살로니가 교인 전체이므로 양자를 모두 포함하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바울은 자신의 가르침에 따르는 자들뿐 아니라 불순종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축복에 동참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기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진실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원 하엿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 하노니-이것은 바울 서신을 통해서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표현 양식으로 본 서신이 그의 친서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바울은 일반적으로 대 필자로 하여금 자신의 편지를 쓰게 한 후 마지막 부분에 가서 자신의 독특한 필체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Morris). 본 서신도 마찬가지로 대필시켰지만 인사말만은 친필을 사용했다. 빌레몬서와 같은 짧은 서신에 있어서는 전문(全文)을 바울 자신이 직접 쓰기도 했다(몬 1:19). 그러나 고린도 전서(고전 16:21)와 골로새서(골 4:18)는 본서와 같이 끝 부분에 자신의 친서임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친필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의 이름으로 위조된 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Thomas).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여기서 '표적'(, 세메이온)은 '서명'(signature)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예수의 메시야 되심의 증거를 나타내는 이적을 가리킬 때 '표적'으로 번역되었다. 아무튼 이전의 그의 편지에서 뿐 아니라 이후에 쓰여질 모든 편지에서 그의 서신의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 증거임을 뜻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바울의 서명과 같은 효력을 지님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바울은 앞에서 지적한 위험(2:2) 즉 그의 이름을 도용한 위조 편지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암시적으로 경계시키고 있다(Calvin). 당시 거짓 교사들이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해 위조 편지를 발송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교회에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수신자들이 이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친필로 마지막 부분을 쓰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 지어다-본절은 그의 다른 서신서 마지막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축도이다. 이 축도는 그가 데살로니가에 첫 번째 보낸 서신(살전 5:28)과 비교해 볼 때 '무리'앞에 '모든'이 첨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동일하다. 그런데 어떤 사본에는 '모든'을 의미하는 헬라어 '판톤'()이 삽입되어 있다.

 (결론)1)재림과 말세와 기도 생활의 연관 관계는...

2)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가(도고 기도의 중요성) 3)말세의 생활 가운데 규모 잇는 생활과 아닌 생활은 어떤 것인지 말해보라 4)서로 문안하고 인사하는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가

제목:바울의 기도와 권면(데살로니가후서3;1-17절) (서론)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관심사였던 재림의 교리를 2장에서 다시 밝힌 저자는 3장에 와서는 기도에 관한 말씀과 실제 생활에 있어서의 교훈을 준다 본문은 기도와 생활의 권 면을 말하고 있다

1.기도 생활(3:1-7절)1)바울의 기도 요청(1절) 2)바울의 기도의 요청의 목적(1-2)

3)바울의 기도의 결과

4)바울의 기도의 부탁

2.규모 있는 삶(3:6-18절)1)수고하며 일하는 삶(3:8-12)

2)선을 행하고 낙심치 않는 삶(3:13-14)

3)불순종자들을 권 징하고 권하는 삶(3:14-15)

3.결론(3:16-18절)1)평 강의 하나님(주)께서 성도에게 평 강을 주시기를 기원하였고

2)평 강의 하나님 (주)께서 성도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였고

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원 하엿다 (결론)1)재림과 말세와 기도 생활의 연관 관계는...

2)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가(도고 기도의 중요성) 3)말세의 생활 가운데 규모 잇는 생활과 아닌 생활은 어떤 것인지 말해보라 4)서로 문안하고 인사하는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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