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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예수 (요 20: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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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 저녁에 있은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날 새벽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가 보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과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달려가 무덤 속에 예수님의 머리에 쌌던 수건과 삼베가 한 구석에 따로 개켜져 있는 것을 보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던대로 부활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돌아갔 으나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뵙지 못해서 무덤 밖에서 울고 있다가 부활하 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모르고 달려가 제자들이 있 는 곳에 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난 일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날 저녁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들이 모여 있 는 집의 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제자들 한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간단히 말씀하시면 세 마디 말씀입니 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 워서 자기들이 모인 집의 문을 모두 잠그고 있었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지 못해서 불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 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자들은 다음 차례에 자기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 올 것을 예감하면서 두려워하 고 있었습니다. 모여 있던 집의 문을 잠그고는, 아마 말 한마디 못하고 숨 을 죽여 가면서 바깥의 조그마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 런 긴박한 상황 가운데 있는 제자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안녕하십니까'하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유대인들 은 지금도 만날 때, 헤어질 때 같은 말을 씁니다. '샬롬', '평안하십니 까', '평안하십시요'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주 신 이 말씀은 단순히 인사만이 아니라 좀 더 깊은 뜻이 있읍니다.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이런 공포 속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는 말씀만이 아니라 "하나님게서 너희에게 모든 선한 것을 주시기를 바란다"는 그런 뜻 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평화는 우리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또 가장 갈급히 채는 것 이 평화입니다. 그런데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평화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예수님 나실 때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은 천군 천사들이 부르 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 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주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참 평안이 있습니 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고별 설 교 말씀 중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아니합니다. 참되고 영원 한 평안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동안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예수 님의 제자들 사이에도 누가 높으냐 하는 것 때문에 서로 시기하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의 첫 말씀이 '평안'을 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툼이 있는 곳에는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불안과 초조의 연속입니다. 악한 마음이 자라게 됩니다. 남을 미워 하게까지 됩니다. 요즈음 우리 현실과 같이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서로 자기가 제일 이라고 하는 교만한 사람들로 가득찬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 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못박히신 열 十자로 되어있는 十字架를 보면 위에서 아래는 하나님과 사람, 左에서 右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눈을 들어 주님의 두 손의 못자국을, 옆구리의 창자국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님의 평안을 누리십시다.

 "내가 너희를 보낸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 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엇하러 보내셨습니까 마태복음 20:28에 주님 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되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사 실 주님은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섬김을 받는 종교가 아 니라 섬기는 종교입니다.

 이웃을 위한 가장 큰 봉사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 인지 아십니까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해서 구원받게하는 것입니다. 하 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병고치기 위해서도 아니요, 배고픈 이들의 배나 부르게 하시려고 보내신 것도 아니고, 이적과 기사로 사람들의 눈요기나 하게 해 주시려고 보내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를 구원의 소식을 전파하라고 보내십니다. 마태 복음 2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 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친히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주시는 말씀은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우리만을 보내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비겁한 영이 아니라 권능과 사랑과 절제의 영입니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하 여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 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고 있는 분을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게 맡겨진 것을 그날까지 지켜주실 수 있으리라는 것도 확신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시간도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망 권세밑에 있는 겨례를 위하여 내가 너희를 보내노라. 두려워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파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주 시는 능력 속에서 어디든지 가오리다 하는 믿음으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 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실 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는데, 아마 사도 요한은 창세기 2:에 있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기록한 듯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빚어서 만든 다음 코에다 생기를 불어 넣어 생명이 있게 하셨습니 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상징적으로 출생에 대해 전통적으로 이해하 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태어 날 때 처음 '으앙'하고 크게 우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코에 바람을 넣는다 고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 때부터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전의 생 명은 어머니에게 의존되었던 생명이고 코에 바람이 들어가는 그 때부터가 독립된 생명이라고 이스라엘 사라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만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영을 불어 넣어야 하는데, 그 영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야 중생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에스겔 37:에 보아도 같은 사실을 채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 람 에스겔이 죽음의 골짜기를 맛보았습니다. 마른 뼈를 보았습니다. 하나 님께서 바람에게 명하라는 말씀을 에스겔이 듣고 말했습니다. "주 여호와 의 말씀에 생기가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하 라 하셨다 하라" 그 때 생기가 생기고 그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 그들이 살 아서 일어나 서는데, 지극히 큰 군대가 됩니다. 이것 역시 생명의 문제를 성령의 문제와 연관시켜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우리들이 사명을 다하려면 성령 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 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 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 를 주라 시인할 수도 없을 뿐더러 증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 뿐만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교회가 교회로써의 맡은 바 사명을 바로 충실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부흥의 물결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두가지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있습 니다.

 사랑이 어디서 옵니까 기쁨이 어디에서 생깁니까 평안이 어떻게 만 들어집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성령이 충만할 때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내가 회개해서 하나님 이 용서를 받고 이웃이 허물을 사하여 줄 때입니다. 사도행전 2:37,38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가로되 '너희 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 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이 제자된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낸다"(내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성령을 받으라"(그래서 새로와지고 능력있는 종이 되라)

말씀 그대로 여러분들에게 은혜가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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