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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께서(22-26) 이제는 광인의 마음을 잔잔케 하심이겠습니다.(27-39) 전자는 외적인 광풍을 잔잔케 하신 것이라면 후자는 내적인 광풍을 잔잔케 하심이겠습니다. 주께서 외적 광풍이나 내적 광풍을 다스리시므로 주님이 우주의 주관자가 되심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거라사의 광인을 고쳐 주신 사건인데 이 광인은 더러운 귀신이 들려 도시를 벗어나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옷을 입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거하였습니다. 쇠고랑을 채웠으나 그것을 끊고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막5:5) 이는 버려진 인생으로 아무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악령을 쫓아내 주시고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귀신에 시달리는 병든 인생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을 덧입기 바랍니다.

Ⅰ.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나오라 하셨음이라(27-28)

예수님의 하루 일과는 매우 바쁘시었습니다. ①각 성(城)과 촌(村)에 두루 다시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8:1) ②또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2) ③씨 뿌리는 자의 비유(4-9)를 하시고 ④씨 뿌리는 자의 해석(9-15)을 하시고 ⑤등불 비유(16-17)와 ⑥예수님을 찾아온 모친과 동생을 돌려보내고 ⑦좀 쉬시기 위해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셨습니다. 이렇게 건너갈 때 저녁이었습니다.(막4;25)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신 예수님은 피곤하여 배에서 잠이 드셨습니다. 이 때 바다에는 풍랑이 일어 배에 물이 들어오고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므로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하여졌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 바다를 건너 배에서 육지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귀신들린 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 인의 땅이겠습니다. 여기서 귀신들린 자를 만났는데 그는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더라(막5;5)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머리가 헝클어지고 수염은 깍지를 않아서 덥수룩하여 마치 짐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수술을 마치고 마취 상태에서 깨어날 때는 대게 헛소리를 하는데 전혀 뜻밖의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점잖은 사람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한다든지, 심지어는 잠재의식 속에 숨겨 두었던 비밀을 자신의 입으로 폭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수술하고 깨어날 때 봐야 그 사람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네 속에 무엇이 있느냐” 하고 물으면 “내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대답을 언제나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꽉 차 있습니까
제가 어릴 때, 박군(朴君)의 심정이라는 전도지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가운데 사단이 창을 들고 서 있고 그 주위에 돼지, 호랑이, 자라, 뱀, 염소, 공작 등이 들어 있습니다. 이 사단이 어떤 때는 호랑이를 내보내어 성격이 사납게 해서 죄를 짓게도 하고, 어떤 때는 공작을 내보내서 자랑하고 교만하게도 합니다. 중심 내부에 사단이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사람의 인격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이런 광경입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잡고 있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사람들이 제어하지를 못하고, 쇠고랑을 채우고 묶어 두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 그 맨 것을 풀고 끊어 버리고 집을 뛰처 나가 광야로 나갔습니다.(29)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요사이처럼 38-39℃를 오르내리는 더위에서 옷을 벗은 것이 아니고 정욕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옷을 입으면 속이 답답하고 열 불이 났던 것 같습니다. 옷이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기본 윤리요,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옷 입기를 거부하고 훌훌 벗어 던졌습니다. 이 거사라의 광인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전에 차를 몰고 시내를 한 바퀴 돌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옷을 입은 차림새에 깜짝 놀랐습니다. 허리를 다 내놓고 배꼽은 완전히 노출시켰더군요. 그리고 바지는 무릎 위에 한 뼘 정도 올려 입었는데 그것도 레이스를 너덜너덜 느려 뜨린 것을 보았습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몇 명을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것도 한낮예요. 요사이 “불 좀 꺼 주세요”란 연극이 돌풍을 일으킨다나요. 그 연극 장면에 옷을 몽땅 벗는 장면이 두어 번 나와서 관객들이 많이 관람하러 간다고 합니다. 노출을 시키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겠다고 아우성치며 몰려드는 사람들은 다 꼭 같은 사람들입니다.

팔레스틴 사람들의 무덤은 주로 동굴을 사용하고 빈집이나 자기가 살던 집에 그대로 시신을 넣어 둡니다. 애굽이나 팔레스틴 경내에 큰 마을 전체가 무덤 이였던 것을 보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이곳에서 이사를 못가고 그대로 살고 있음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은 집을 뛰쳐나와서 옷을 입지 않고 이런 무덤 사이 빈집에 들어가 자고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대로는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였다고 합니다.(막5;5)

언젠가 목욕을 갔는데 제 바로 곁에서 목욕하는 분의 몸에 구렁이가 온몸을 감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용이 몸을 감고 있었고 한 사람은 등에 해골을 그리고 그 가슴에는 큰 독수리를 새겼는데 곁에만 가도 오싹 하였습니다. 구렁이를 문신한 사람은 양다리로 감아 올려 뱀머리를 가슴 가운데에 그리고는 입을 벌린 채로 새겨 두었습니다. 그것도 색깔을 넣어서 문신을 했더군요. 그건 돌로 몸을 상하게 하는 거라사 광인보다 더했을 것 같습니다. 칼로, 바늘로, 주사기로 가기 몸을 온통 문신으로 새긴 것입니다. 그리고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이들이 술을 먹고 소리 소리를 지르면 누가 그들을 제어하겠습니까 이 폭력단들은 누가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경찰이 손을 대며 국가가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뭐 폭력과 전쟁을 선포하고 폭력단들을 소탕한다고 해도 그게 될 것 같습니까 손을 못됩니다. 그뿐입니까 요사이 중고등학생들이 담배를 뽑아 물고, 술을 마시는 것은 보통이랍니다. 학교에 책임 있는 분으로 부터 들었는데 상당한 남여 학생들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합니다. 이를 달래도 되지 않고, 때려도 안된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사람은 여러번 고랑과 쇠사슬에 메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리고 도망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아무 사람도 제어 할 만한 힘이 없었다(막5;5) 했습니다. 아무도 못 말렸습니다. 이가 이렇게 된 것은 오늘 성경대로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음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타락한 천사, 사단의 사자로서 악한 영들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이라고 하면 반드시 “귀신”이라는 단어 앞에 “더러운”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서 “더러운 귀신”(Evil spirit)이라고 부릅니다. 이 더러운 귀신은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러운 인격을 가지고 사람 몸에 들어가 살면서 그 사람을 조정하니까 더러운 인격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평소에 마음이 곱고 착실한 사람인데도 술만 들어가면 제정신을 못 차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들도 가끔 있습니다. 이 것은 술에 지배되어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배후에 더러운 귀신이 둥지를 틀고 앉아서 조종을 하고 그 조종을 받으니까 더러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귀신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더럽고(마10:1) 악하며(눅10:17,18) 질병을 일으키며(욥2:7) 범죄를 충동시키며(요13;2) 영혼과 육신을 파멸시키며(눅9;39) 사람을 괴롭히며 근심, 걱정을 가져다줍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배에서 육지에 내리시매 예수를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했습니다. 그는 멀리서도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알아보았습니다. 또 자기들을 무저갱으로 넣으실 심판의 주가 되심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고로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제자들은 3년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먹고, 자고, 배우고, 많은 이적과 기사를 체험을 했으면서도 예수님을 잘 몰라 쩔쩔매고 책망도 들었습니다만, 여기 귀신들린 자는 한 눈에 알아보았습니다. 한 눈에 알아보고 부르 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 했습니다. 이 거라사의 광인은 예수님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알거나 예수님의 얼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광인이 예수님을 한 눈에 알아 보고 엎드리고 외친 것은 그에게 들어 있는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입을 통해 하는 말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그는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악력에 사로잡힌 그는 예수님이 무저갱으로 넣는 심판의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 엎드리면서도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했습니다. 그는 자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대들었습니다.(왕상17:18, 삿11:12, 대상35:21)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은 전쟁 때, 적병에게 쓰는 용어로 예수님과 관계성을 맺기도 싫어하는 것입니다. 적병과 관계성을 맺으면 어떻게 됩니까 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귀신은 예수님과 관계성을 맺는 것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상관을 맺으려 하질 않습니다. 귀신은 예수님과 상관을 맺으면 자기는 쫓겨 나가고 망하니까 그 사람의 마음 문을 닫고 상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귀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 악령에 잡혀 있는 사람도 알 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서 악령에 사로 잡힌 자는 자기가 악령에 사로 잡힌 것을 발견하고 자유함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 귀신들린 자는 예수님을 잘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도 잘 모르는 예수님을 남달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장차는 사단, 마귀, 귀신들을 무저갱으로 보내는 심판의 주님이 되심도 잘 압니다. 이렇게 알고 본문에 보면 주 앞에 엎드리기도 합니다. 괴로워도 합니다. 이렇게 엎드리는 것은 경배하고자 함도 아니요 또, 예수님을 섬기기 위한 고백이 아니며 이런 형식적인 것으로 해서 그 광인에게 더 머물러 있어서 평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2:19절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잘 믿는 것 같고 두려워 떨기도 하며 엎드리니까 잘 모릅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못하는 것은 순종입니다. 귀신이 사람의 마음속에 둥지를 틀고 앉아서 순종을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도 하고 알기도 더 잘 알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순종을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일에 방해를 하고 상관을 맺으려 하지 않고 불평 불만을 털어놓고 순종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귀신이나 악령들을 퇴치시키며 악령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할까요 그것은 진리에 절대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진리에 순종해 나갈 때, 귀신이 떠나가며 악령이 발 붙일 곳이 없으므로 떠나가고 침범을 못합니다. 그러므로 진리 위에 걸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참 행복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참 행복은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어가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않았더라면 계속 파라다이스를 가졌을 것입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진리의 말씀에 자꾸 순종하여 걸어가면 “스위트홈”이 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이 말씀을 순종하여 아내된 이들이 자기 남편을 존중히 여기고 주님 대하듯이 대하고 복종하면 어느 남편이 그 아내를 무시하며, 폭력을 쓰겠습니까 남편 알기를 이상하게 알고 경히 여기기 때문에 가정 파탄이 옵니다.
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과 같이하라”(엡5;25) 이 말씀을 영접하고 아내를 사랑하면 “스위트홈”이 됩니다. 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여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 이 말씀을 영접하여 그대로 순종해 나가면 참으로 행복해 집니다. 주의 복이 있으므로 스위트홈이 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인격적인 말씀이므로 이 말씀에 순종하면 곧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악령의 다스리심을 받습니까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습니까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길은 진리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여기에 참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귀신이 발도 붙이지 못합니다.

Ⅱ.귀신을 쫓아내 주신 예수님(29-33)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 더러운 귀신만 쫓아 내주면 이 사람이 온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그 사람에게 나오라 명령을 하셨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이 괴로워하는 것은 자기의 정체가 발각되고 드러났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물어 보셨습니까
30절을 보면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예수님은 그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이름이란 자기의 인격과 성격, 자기 존재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의 이름을 물으신 것은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이 사람 속에 들어가 거하면서 자기의 존재를 숨기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귀신의 존재를 숨기고 이 사람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이름을 물음으로써 그 사람 속에 거하는 귀신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군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군대란 말은 영어로 Region(레기온)인데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당시 로마의 군사 용어로서 6,000명의 군대를 가리킵니다 이 사람에게는 6,000마리나 되는 떼 귀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자기의 정체가 드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람을 속일 수 없는 것을 알고, 나갈 생각을 합니다. 귀신이 자기 이름을 말할 때, 본인의 정신 상태는 멀쩡합니다. 그래서 자기 외에 어떤 영적인 존재가 자기 속에서 자기 입을 통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말하는 것을 본인이 듣고 있습니다. 이쯤만 되면 귀신 든 본인은 자기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귀신에게 속아서 생활한 것을 분해하며 이젠 말씀을 붙잡고 투쟁하려고 합니다.
이쯤 되면 귀신은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귀신은 자기들을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무저갱은 바닥이 없는 지옥으로 마귀들이 마지막 심판을 받아 들어갈 영벌의 장소입니다.(계20:1) 귀신들은 자기들의 마지막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또 예수께서 자기들을 무저갱 속으로 던져 넣으실 심판장이 되심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 있었습니다. 귀신들은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의 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그 돼지 떼가 2,000마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마리당 20만원을 계산해도 4억 원이나 됩니다. 4억 원이나 되는 거액이 삽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기를 허락 하였겠습니까1)첫째, 귀신들의 악한 본성을 들어내시기 위해서 입니다. 귀신은 항상 사람을 속입니다.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빛으로 가장해 나타나서 속이고 손해를 보입니다. 또 돼지 떼에 들어감으로서 생명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들어내셨습니다.
2)둘째, 이렇게 하심으로 한 생명이 2,000마리 돼지 떼보다 귀하다 하심을 증거 하시기 위함입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시기 때문에 2,000마리를 희생시키시고 한 생명을 구해 내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나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온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당신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시고 우리의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거라사 광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거라사 인이 가지고 있던 광적인 요소를 다가지고 있습니다. 정욕적이고 이기적이고 세상적이고 타락한 본성대로, 육신의 소욕대로 마귀의 종노릇 할 수 밖에 없었던 자들입니다. 이런 비천한 죄인들은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희생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Ⅲ.전도하는 광인(34-39)

동네 사람들이 병신 같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양돈업을 다 망쳐 버린 예수님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지방을 떠나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이들은 물질적인 가치관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이 거라사의 사건은 현대인의 축소판이겠습니다. 돈이면 부모도 칼로 찔러 죽이고, 친척을 약물로 죽여 보험금을 타내고, 돈이면 살인 청부도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 변화 받아 온전케 되는 것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이 교회에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돼지 2,000마리 잃은 손해 의식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오늘날도 이처럼 물질적인 손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예수님을 거절하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분들을 봅니다. 교회 부흥을 저지하는 분들을 봅니다. 거라사 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시기를 간구하매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 때,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시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했습니다.
이 거라사의 광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을 상하게 하고 닥치는 대로 때려부수고, 던지고, 사람을 헤치고 하니까 묶어 매고 쇠고랑에 채워도 소용이 없던 자기를 온전히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고마워 평생 주님을 따라다니며 제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따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하시니 그는 그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5;20절에 그는 그 근방 데가볼리에 전했다고 했습니다. 데가볼리는 10개 도시란 뜻으로 거라사, 가다라, 다메섹, 빌라델비아, 시도폴리스, 포스펠라, 리오스, 가아나, 라파니인데 여기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가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그곳에 남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보던 전도지 박군의 심정 두번째 장에는 이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니 돼지도, 호랑이도, 염소도, 자라도, 뱀도, 공작도 사람의 몸밖으로 나가 고개를 떨구고 죽은 것같이 되어 있고 그 박군의 심정 내부에는 주님께서 명령하시고 그 명령 순종하니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고 사랑과 희락과 자비와 양성과 온유와 충성, 절제, 성령의 열매들이 맺혀 갑니다. 박군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니까 사단이 물러가고 사단의 사자 졸개인 돼지, 염소, 뱀, 공작, 호랑이, 자라들이 죽은 듯이 되고 발도 못 붙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사도 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일평생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겸손히 일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사마리아 전도 지부장이 되었습니다.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귀신이 나가고, 죄 많던 자기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 예수님을 위해 평생을 예수님의 여제자로 살았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은 깨끗함을 받았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데가볼리 10도시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받은 바,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며 어떻게 사십니까

199

4.

7. 2

4.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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