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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 두 제자를 보내신 예수님 (눅 09:1-9)

첨부 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우사 전도 훈련을 보내시며 강한 전도자로 키우시고져 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영접한 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길리움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Ⅰ.열 두 제자를 보내신 예수님(1-6)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습니다. 열 두 제자는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롯 유다(마10:1-4) 였습니다.
이들을 불러 모아 마가복음에는 둘씩 둘씩 짝을 지어 전도 여행을 보냈습니다.(막6:7) 3년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친 제자들을 실제로 이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론 교육에서 현장 교육(Field Work Training)으로 훈련을 강화하시고 자립적으로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또 이렇게 12제자들을 파송한 동기는 마태복음 대로는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보시면서 민망히 여기신대 있습니다.(마9:36)
1)능력과 권세를 주신 예수님(1,2)
예수님은 현장 교육을 내보내시면서 제자들에게 ① 귀신을 제어하며 ②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③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내보내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 내보냄과 같도다(마10:16)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잘 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나약함을 아시기에 영적인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능력이란 사단의 세력을 파할 수 있는 힘(Power)입니다. 권세란 예수님의 사도로서의 분명한 권위(Authority)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고, 앓는 자를 낳게 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신 것을 사용하면 되는 줄로 압니다.
초대 한국 교회 어느 선교사가 석유를 발라 병을 고쳤더라는 일화(一話)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5:13-14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 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으나 기름이 없어서 당시 호롱불을 사용하던 시절이라 석유를 머리에 몇방울 붓고 기도하였더니 나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음을 순수하게 믿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며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선교 보고를 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명하니까 귀신들이 항복을 하고 나가더이다” 하며 자랑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10:17-20) 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땅에 묻어 두지 말고 사용하면 하나님이 더욱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영적인 권세를 덧입혀 주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악령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음 역사를 훼방하고 이간질시키고 양 떼들의 마음속에 불신을 심고, 양 떼를 사로잡고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앞장 서서 일하는 일꾼들이나 양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주의 약속을 믿고 꾸준히 복음 역사에 힘을 기울이면 주의 영광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2)전도자에게 주신 메시지(3-6)
3-5절을 보십시오.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하셨습니다.
① 지팡이나
② 주머니나
③ 양식이나
④ 돈이나
⑤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 하셨습니다.
전도 여행을 할 때는 가벼운 옷차림이 좋습니다. 전도자에게 짐이 많으면 그 짐 때문에 거기에 신경 쓰느라 전도 여행에 지장이 있습니다. 짐이 너무 많아 무거우면 안됩니다. 잘 다니지 못합니다. 전도자는 물질적 준비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이는 빵이나 의복을 넣는 여행 가방입니다.)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 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들 가운데 돈 많은 목사님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분도 있었고, 자신이 공직이나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번 분이 목회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대개가 실패를 합니다. 예수님은 가지지 말라 했는데 가져서 그것을 관리하고 그것에 신경을 쓰느라 목회에 실패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또, 있는 재산을 의지하느라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지 않으므로 간절한 기도나 하나님 없으면 안된다는 애절함이 없으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므로 목회를 하려는 분은 잘 살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 돈이 다 떨어져야 제대로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잘 살려면 목회자는 하지 마십시오. 목사는 못살게 되있어요.
하나님이 구약에 레위 지파는 기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신10:9)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요 분깃”입니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한가지 방법 뿐이었습니다. 발로 걸어가서 말로 전하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신문도 없었습니다. 책도 없었습니다. 방송 매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행에 먼길을 걸어야 하므로 간편하게 입만 가져가도록 한 것입니다. 지팡이도, 주머니도, 두 벌 옷도, 양식이나, 돈도 준비해서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 준비는 누가 하라는 말입니까 결론적으로 성도님들이 하라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하였고, 마가복음에는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든지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막6:10) 하였고, 마태복음에는 전도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아무 성이나 촌(村)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날 때까지 거기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거시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려라(마10:11-15) 했습니다.
이 말씀의 깊은 내용은 이러하다고 봅니다. 복음 전하는 전도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권세까지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무하고 성도님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돈을 벌어서 밀어 주고 불편 없이 도우라는 것이겠습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가정에 복을 빌고 평안하기를 위해 기도하라 했습니다. 합당하면 그 빈 복이 그 집에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복음 사역에는 두 그룹이 있습니다.
나가는 Going Group이 있고, 또 내보내는 Sending Group이 있습니다. 이 Giong Group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무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Sending Group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모아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지팡이도, 돈도, 두 벌 옷도, 주머니도, 양식도 가지지 않은 Going Group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보면 이런 일들을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4절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무하고 일곱 집사를 택하여 충성 봉사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했을 때,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흥황하여 갔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빌립보 교회 자주 장사 루디아는 복음을 받아 드리고 저와 온 집이 세례를 받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바울과 실라 그리고 전도자들의 숙식을 제공하고 선교 비용을 전담했습니다.(행16:14,15)
또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이였는데, 바울이 아덴에서 선교 사역에 실패하고 고린도에 와서 천막 짓는 일을 해 가면서, 쉽게 말하면 돈을 벌어 가면서 복음을 사역하니까 이들 부부는 그 내용상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당신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무하시오(행18;5) 우리는 천막 짓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바울이 천막 짓는 일을 했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서로 가면 에베소로, 예루살렘에 가면 예루살렘에, 로마로 가면 로마로 어디든지 따라가며 복음을 전하도록 전적으로 협력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 부부는 바울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놓았다고 로마서 16:4절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스데바나의 집이 있고(고전16:15), 예루살렘에는 마가 요한(막14:13-16)의 집이 있습니다.

제가 이 강단에서 지금까지 이것을 가르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교역자들이 하는 일과 성도님들이 하는 달란트가 각각 다른 줄로 압니다. 성경에 착한 종은 달란트를 잘 활용하는 종이고,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는 종이 악한 종입니다. 교역자들의 달란트는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달란트입니다. 그러면 교우님들은 부지런히 돈을 벌고, 엿새 동안 힘써 일을 하여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하도록 돕는 것이 축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돈을 벌면 활용하고, 땅에 묻지 않고 주의 나라를 위해 내놓고 활용하라고 가르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런 내용으로 말씀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제자들을 파송 하시면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일군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셨습니다. 딤후 2:6절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리라 하십니다. 이렇게 목회자들은 복음에 전무하기 위해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또, 이 복음을 받는 성도들은 루디아와 같이, 브리스길라, 아굴라와 같이, 디도 유스도 같이, 스데바나 같이, 예루살렘의 마가 요한의 집같이 주의 이름으로 제자를 영접하면 제자의 상(賞)을 받고,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賞)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1,42) 저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마10:40)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돈을 쓰세요. 땅에 묻어 두려고 하지 마세요. 땅에 묻어 두면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합니다.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쓰면 하나님은 더 남기고 잘하는 자에게는 더욱더 주시고 땅에 묻은 자의 것을 빼앗아 주십니다.
당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유대 사회의 풍습이었고, 더욱이 전도자를 대접하는 것은 산 자들의 의무요, 주님께서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은 그 가정을 위해 평안을 빌라(마10:12) 하였습니다. 그 평안을 빌면 그 가정에 평안이 머물고 합당치 않으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편지를 쓰면서 끝에는 언제나 이 복을 빌었습니다.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를 기뻐하노니 저희가 너희 부족한 것을 도왔느니라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고전16:17,18)
“누구누구에게 문안하라 이들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 늘 복을 비는 것을 봅니다. 제가 신앙하기에 이것이 주님의 약속이므로 복을 빌고 평안을 빌고 합당하면 그대로 임하는 줄 믿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참 깨끗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교역자를 도와 주님을 섬기는 성도님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주여 저 가정에 복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이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각 촌에 두루 행하여 곳곳마다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습니다.(6) 주님의 능력과 권능을 받아 그대로 잘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영접하고 보내는 Sending Group도 잘 한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2:3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전대(纏帶)나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없었나이다”고 제자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이 제자들을 잘 영접하고 전적으로 도왔다는 것이 됩니다. 제가 바라기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열심히 죄가 되지 않는 일이면 부지런히 돈을 벌어 주의 일을 하는데 뒤를 척척 밀어 주는 성도님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Ⅱ. 헤롯의 두려움입니다.(7-9)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자 예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전도 여행 나가서 자기들의 이름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사도로서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로 온 갈릴리에 예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식이 헤롯의 궁까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헤롯은 대단히 놀라서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고 심히 당황하였습니다.
헤롯은 자기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을 안 세례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책망을 하자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나 하지 못한 것은 헤롯이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 하며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며 달게 들었습니다.
마침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잔치를 배설하였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여아에게 무어이든지 너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네게 주리라 맹세를 하되 네가 내게 구하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고 주흥이 올라서 망발을 한 것입니다. 이 딸이 나가서 제 어미에게 말하니까 이 어미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이 딸이 왕께 급히 들어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내게 주기를 원합니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어서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딸에게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고 하니, 또 이제는 요한과 같은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사방팔방에서 일어나 큰 권능으로 역사를 하니까 헤롯은 자기가 목을 베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피해 망상에 시달리고 아마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높은 왕상에 앉아 백성을 호령하는 대 헤롯이지만, 겉으로는 성공한 인생 같으나 그 내면은 공포에 떨고, 불안에 살아가는 비참한 생을 살아갑니다.
이 본문의 내용을 보아 제자들은 말씀을 영접하고 착실하게 빈 몸으로 각 성과 촌의 곳곳마다에 복음을 전하였고, 복음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같이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일에 동역을 하였습니다만, 결국 주의 일에 힘쓰지 않고 죄악만 저지르던 헤롯은 도적이 제 발 저리다고 무슨 일만 일어나도 불안한 것입니다.
비롯 가진 것은 없어도, 비록 높은 지위는 없어도 주님 내게 맡겨 준 일, 그것을 잘 감당하여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99

4.

8. 1

4.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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