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님만 바라보자 (행 03:11-16)

첨부 1


유명한 부흥사인 빌리 그레함(Billy Graham)목사님에게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산악지대에 살았기 때문에 그 산의 지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젊은 시절에 하루는 등산을 하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길을 잃고 헤메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산속의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노인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는데, 노인은 그에게 다음꽈 같이 말했습니다. “젊은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얼른 내려가서 동리나 길을 찾으려고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곧 죽는 길이라오.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라오.”라고 충고해 주었다고 합니다.
왜,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위로 올라가서 자기의 위치를 발견하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느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 만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아래를 내려다 보고 아래로 내려가면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위를 바라보고 위로 올라가면 살게 되고, 은혜를 받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본문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은과 금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은 돈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돈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걸인이었습니다.
돈을 바라보면 돈을 의지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바라봄의 원리에 의해서 그렇게 되어지는 것인데,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의해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바라보면 돈의 종이 되는 것이고, 음란한 생각을 갖고 여인을 바라보면 음란한 인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높은 꿈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처럼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돈의 종이 되면 하나님의 사람, 즉 진실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의 종이 되면 믿음에서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주님 곁을 떠나고, 또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돈의 종이 되면 많은 근심을 갖게 됩니다. 자기를 찔렀다. 즉 패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사랑하여 물질로 범죄한 자들은 용서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면 다른 죄를 지은 사람들이 참회하고, 통곡하고 회개할 때에 용서받은 사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로 범죄한 자들은 용서받은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에서는 물질을 사랑해서 팥죽 한 그릇을 받고 장자권을 팔아먹고 후회를 했지만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롯의 처는 물질에 대해서 너무나도 집착이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피땀흘려 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가구들을 들여 놓고, 금고 안에 값진 보배들을 가득 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비오듯 쏟아져서 그 아까운 재산이 모조리 불타 버렸습니다. 그러자 뒤돌아 보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물질 때문에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아간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 성안에 있는 물건을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을 어기고 외투 한벌과 은 이백세겔과 금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감추어 두다가 결국 돌에 맞아 죽는 심판을 당하였습니다.
게하시는 은 한푼도 받지 말라고 당부한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외면하고 나아만 장군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았습니다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갸룟 유다는 은 30이 탐나서 사랑하는 스승을 팔아먹고 스스로 목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명예심 때문에 헌금을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다가 하나님의명령을 어기게 되어 에덴 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또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가시에 찔려서 고통당하는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잘 될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다가 에덴동산, 즉 행복한 곳에서 추방되어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물질을 횡령한 사람들은 복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온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 온전히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으키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와! 굉장한 사람이다. 사십년 동안 앉은뱅이로 고통당하던 사람을 벌떡 일으키는 것을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다. 정말 놀라운 권능과 경건을 소유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사람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은 이와 같은 능력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것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數)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144편 4절에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허망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 코에 호흡이 끊겨질 때에 허무감에 사로잡히고, 결국 낙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8절과 9절에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백이란 권세가, 장관, 국회의원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장관 친척이나 국회의원 친척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머지 않아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권력가들을 의지하지 마시고 하나님만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과 같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만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는 메시야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 구원을 받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미가는 미가서 7장 7절에서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조국이 바벨론 침공으로 멸망당했을 때에 도성이 처참하게 폐허가 된 것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외쳤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시골에서 부자로 잘 살았다고 합니다. 여섯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만 고등학교 까지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다섯 아들은 일류대학 공부를 시켰습니다. 짝을 지어주고, 아파트도 마련해 주는, 부모의 역할을 훌륭히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어머니를 모른척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자녀들은 모른척하고, 손주 하나가 매월 용돈으로 오만원 씩을 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람 바라보고 사람 의지하면 실망하게 되어집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면 늘 구원을 체험하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구원을 받게 되고, 사망과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새힘을 얻습니다.
이사야 40장 30절로 31절 까지의 말씀을 보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약하여 쓰러지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하이든(Haydn, 1732-1809)은 주님을 잘 믿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늘 열정적인 힘과 지칠 줄 모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은 지칠 줄 모르는 힘과 열정이 계속 솟아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하이든이 “예! 우리집에는 조그만 골방이 하나 있는데, 내가 지치고 피곤할 때는 언제나 그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오.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나를 시망시키는 일이 없었다오”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이든이 기도를 통하여 주님을 바라봄으로 새힘을 얻었던 것처럼 이날 아침에도 주님을 바라봄으로 새힘을 얻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또한, 주님을 바라보면 고침을 받습니다.

본문 16절에 ‘그 이름을 믿으므로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고통당하던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구세주가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신 신유의 주님도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주님을 앙망하면 마음의 상처와 영혼의 병을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병, 육신의 질병도 깨끗하게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의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곳과 터진 곳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다”라고 예언하였는데, 그 예언의 말씀이 우리 민족에게 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 떼강도와 폭력배가 날뛰고 있습니다. 오렌지족이 밤거리를 누비고 있고, 사기꾼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고, 각종 신흥범죄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병, 국가의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였던 것처럼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성한 곳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 상하고 터진 곳 뿐입니다. 새로 맞은 흔적 뿐입니다.
사이비 집단을 파헤치던 탁명환 소장이 괴한에 의해 피습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오대양 사건을 파헤치기도 하였는데, 최근에 MBC TV의 P.D 수첩을 통해서 “영생교 승리제단”의 비리를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에 “너, 죽여버리겠어”라고 하는 많은 협박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저께 밤(1994년 2월 18일)에 괴한에 의해서 목숨을 잃고 만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폭력배가 날뛰고, 떼강도가 날뛰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국가의 병, 민족의 병을 고침받을 줄로 믿습니다.
호세아 4장 2절에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詐僞)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기와 도적질이 난무하고, 간음이 날로 더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이고 죽고 하는 연속적인 보복, 살인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위의 두 말씀이 우리 민족에게 그대로 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병든 민족, 병든 나라를 누가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살아계신 예수님 한분 외에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만병의 의사가 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만이 이 병든 영혼, 병든 심령, 병든 민족,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어 있는 이 민족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복음을 열심히 전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병든 이 민족을 기필코 치료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음을 받는 새로운 민족이 되어지도록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돈을 바라보다가는 시몬처럼 돈과 함께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다가는 그 의지했던 사람의 호흡이 그 코에서 끊어질 때에 허무함을 느끼고 좌절하고 실망하게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는 구원받게 되어지고,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소망이 넘치게 되고 나음을 입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날 아침에 우리 모두는 주님 만을 바라봄으로 능력받아 몸된 교회에 충성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