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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구에게 무엇을 감사할까? (고전 1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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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셋째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11월 한달동안 감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누가,누구에게,무엇을,왜,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이것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본문의 바울의 고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감사.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고, 걸어온 자취자취 돌아보고, 그리고 현재 자기의 위치를 생각할 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된것이라고 감사.감격에 벅차 외친 영혼의 고백이 바로 본문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두 주 앞둔 오늘, 바울의 심정을 가다듬어 이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 모두 감사로 머리가 꽉 차시기를, 감사로 가슴이 뜨거워 지시기를, 감사로 눈물머금어 질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감사로 내일부터는 이렇게 살리라는 다짐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진정한 성도의 감격은 다 이러해야 합니다.“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구원얻은 하나님의 아들 딸들의 감정은 모두 이러해야 합니다.
찬송가 405장의 작시자 죤.뉴턴-그는 죄라는 죄는 안지어본 죄가 없을 정도로 탕아였고 노예상인이었고 방탕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구원함을 받아 감격에 벅차 읊은 시가 바로 저 유명한 “Amazing grace”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와 나처음 믿은 그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이 찬송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지난 세월을 돌아봅시다. 목석이 아니라면, 소나 말과 돼지같은 짐승이 아니라면 가슴속에 뭉클하는 감사가 한 두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먼저 주위를 둘러 봅시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자식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굶어 죽지 않도록 땀흘려 일할 수 있는 직장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감사의 조건들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땅에 이렇게 서 있는것, 나혼자 가능했을까요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감사는 이정도의 차원의 감사가 아닙니다. 더 깊은 감사입니다. 어느모로 말하면 바울의 파란만장했던 한평생은 이 감사를 갚고자 하는 마음에서 스스로, 그리고 즐겁게 선택한 일생이었습니다.
고전 9:19-22에 고백했던 것처럼 때로는 자존심도 다팽개치고 살았습니다. 어리석다고 비웃음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미련하게 살았습니다. 주변도 없고 고집도 없고 속도 없는 무골충과 같이 살았습니다. 왜그랬을까요 그 까닭은 고마우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의 은총을 생각할 때 “내까짓게 뭔데...”라는 고백이 안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죽어라고 자기를 포기하고 살았지만 하나님의 고마우심에 비해본다면 억만분의 일도 보답되지 않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너무 고마와 “어떻게 하면 보답하고 살까” 그것만 생각하고 살다보니 “나”라는 존재는 다 죽어 죽어 없어지고 주님만 남게 되었습니다.
고후 11:22-27까지 자기의 좋은 조건을 다 열거하면서 그러나 “이까짓게 뭔데...그 고마우심에 비해 본다면 자신이 박살이나 가루가 된다 한들 고마우신 하나님께 억만분의 일이든 보답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리할 수 있다면 자기 한 몸 불속에라도 던질 각오가 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심정을 잘 표현한 찬송이 아래 찬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웬말인가 날위하여 주 돌아가셨네 이벌레같은 날위해 큰 해받으셨네
나십자가 대할때에 그일이 고마와 내얼굴 감히 못들고 눈물흘립니다
늘울어도 눈물로서 못갚을 줄알아 몸밖에 드릴것 없어 이몸바칩니다.

이 고백의 깊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습니다. 이 고백의 온도는 너무나 뜨겁습니다. 빌3:4-8에 보니 자기가 천대받고 모욕받는 것, 최고의 것을 다 버리는 것, 그것이 고마움을 보답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도 그 고마움에 모자라 그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나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는 말뿐입니다.
천번 말을 하래도 이말밖에 없고 만번 말을 하래도 이말밖에 없습니다. 이 바울의 고백이 이 아침에 여러분의 간증과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러한 바울의 고백을 바탕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감사할까 를 세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나를 위해 창조하시고 섭리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늘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것이 없습니다. 창조로 부터 시작해서 그 세계를 섭리하신 오늘날까지 생각해 봅시다. 꽃피는 봄이 와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뒤 가고, 산록이 우거지고 모든 생물에게 성장을 주는 여름이 오고 가고,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이 오고 가고, 이제 안식의 겨울을 보내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외치기를 “창조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섭리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고 했습니다. 이 신비한 우주는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말해주는 산 증거입니다. 지구는 시속 1,000마일의 속도로 자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100마일로 돌아간다고 칩시다. 그러면 낮의 길이가 120시간이요 밤의 길이도 역시 120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낮의 뜨거운 햇빛아래 살아남을 생명이 몇이며 혹 살아난다고 해도 밤의 추위아래서 살아남을 생명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누가 시속 1,000마일로 결정하여 낮에는 따뜻하게 밤에는 시원하게 만드셨습니까 과학자들이 지구 속도가 1,000마일인 것은 알아냈지만 누가 어떻게 가장 이상적인 1,000마일의 속도로 결정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아예 창조때 부터 이렇게 배려해 주셨는데 어찌 감사가 없겠습니까 한 예를 더 들어봅시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24만 마일입니다. 바다의 조수 현상은 바로 달과 지구의 적당한 거리때문에 생겨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달과 지구의 거리가 24,000마일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동해 바닷물이 백두산까지 올라갔다가 쭉 빠져 내려가고 다시 쭉 올라갔다거 쭉 빠져 내려가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구상에 어떤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누가 달과 지구의 거리를 적당하게 24만 마일로 정하시매 바닷물이 찰랑 찻다가 찰랑 빠지게 하셨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는 이 우주 구석구석 안닿는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창조와 섭리속에 바로 나라고 하는 한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꺼꾸로 말하면 나라고 하는 한 생명을 위해서 하나님은 태초에 이렇게 지구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 감사함이 없겠습니까 보이는 것마다 감사요 느끼는 것마다 감사이여야 할 것입니다.
탕자가 탕자되기 전에는 밥상의 밥은 그저 밥이요 철마다 해주시는 의복도 그저 의복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탕자가 되어서 돌아온 후, 밥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했을 것이고 철마다 해주시는 옷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바로 우주는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그저 감사할 것 밖에 없게 됩니다.

2. 나를 구속해 주신 성자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입니까
나보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 더 많은데...,나보다 윤리적으로 깨끗한 사람 더 많은데..., 나보다 사회적으로 신사숙녀가 더 많은데... 왜 하필이면 만삭되지 못한 칠푼이 바보 병신같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말을 하겠습니까 그저 입이 있어 겨우 한마디 한다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뿐입니다.
다른 것 다 제쳐 두고서라도 우리는 이 이유 하나때문이라도 감사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을 포기하셨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순회복음전도대회’가 세계 4,000여명의 대표가 모여서 “성경이 말씀되게 하자” 라는 주제를 가지고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째 저녁 예배에 특별찬송을 위해 한 맹인 여가수가 안내원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 중앙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는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못하네
저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오셨네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산천초목 붓대삼고 모든 사람 서기관 삼는다 해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사랑 그 어찌 다쓸까 저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사랑은 측량다못하며 영원히 변치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4,000여 청중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라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마음에 감사에 대한 감동으로 가득찼습니다.
바로 이 여가수가 6.25 전쟁때 두눈을 잃고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한 한국인 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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