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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아픈 마음 (호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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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서 전장의 흐름은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떠나려고 애를 써도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 굴복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됩니다.

호세아서의 또 하나의 흐름은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11장에서 14장까지 마지박 부분은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다고 하는 것을 보여 주는데 특히 11장은 이스라엘의 관거와 현제가 어떠하며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다릅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도 다르고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도 다릅니다.

인간들의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아무리 아룸답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무리 훌륭해도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이기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다가 조금 불편하면 불쾌해 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이고 아기를 안고 가다가 돌이 날아오면 아기로 막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너나 할 것 없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그 차원이 다르고 질이 다릅니다.

 1.이스라엘의 복받는 과거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11:1)

이스라엘은 과거에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복받은 과거입니다.

하나님이 팔로 안아 주시고 걸음마을 시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 사랑을 어느 개인, 어느 가정, 어느 민족보다 많이 받은 이스라엘입니다.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다’ 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셨고 그들은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은 인간 사랑의 극치입니다.

아버지가 도셔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감사의 은혜는 언제든지 연결 되어 있습니다.

감사의 기초는 받은바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은 기억에 있습니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으므로 감사의 기초는 기억입니다.

우리의 건강은 하나님 께서 주신 것입니다.

두 눈을 감고 자니는 사람을 볼 때마다 내게 두 눈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며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절름발이를 볼 때마다 두 다리가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발가락 다섯개가 있어서 나를 받쳐 주는 것이 고맙고, 눈썹이 찌르지 않고 나를 도와주는 것이 감사합니다.

혓바닥이 있어서 밥을 먹고 코가 있어서 숨을 쉬고 혈압과 심장이 제대로 박동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의 줄로 끌고 멍에를 벗기고 먹을 것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데도 감사가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비린 것입니다.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녀를 통해 노년이 편안하기 위해서 뒤바라지를 하고 있습니까.

이기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나라를 위하여 재목으로 가꿉시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자녀도 재물도 마음도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받은 자, 복받은 자의 감사의 표현입니다.

은혜를 기억하는 자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불러 주신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역사적인 부르심입니다.

둘째, 죄악에서의 부르심입니다.

셋째, 아들의 신분으로 부르심니다.

‘내 아들’이라는 말은 선택이 깊이 설명되고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나를 부르신 근거는 그의 사랑입니다.(신7:8) 넷째, 성도로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할 수 있는 성도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큰 사랑과 이 큰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 처음 믿던 날 정말 중생의 채험을 처음 하던 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을 받던 그 감격, 그 첫 사랑을 잊을 길이 없습니다.

그 때를 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처음 믿을 때의 그 믿음과 그 사랑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2.거역하는 현재 “저희가 애굽 땅으로 다시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11:5)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그 아들 이스라엘을 사랑으로 불러내셔서 안아 주시고 키워 주시고 보호해 주셨건만 이스라엘은 무반응이요 감사치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신하고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이같은 무지는 그들의 모든 고난을 물리쳐주시는 자를 몰라보는 배은망덕이요 죄의 죽음에서 건져주신 구원자를 몰라보신 우매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모든 은혜를다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멀리멀리 떠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신 사랑 때문에 죄가 간과 되지는 않습니다.

죄를 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사랑의 방망이가 바로 앗수르 입니다.

이 말씀은 주전 721년에 역사선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의 요청을 거절하다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던 것입니다.

 3. 회복하는 미래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놓겟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11:8)

하나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신 그 이스라엘이 심판 받고 망하고 말것인가.

이스라엘의 현재가 이러하다고 하나님이 포기하시겠는가.

자식이 나쁜 짓 했다고 내 자식이 아니라고 쫓아낼 부모는 없습니다.

정말로 아버지가 매를 들어 쫓아 낸 자식은 그 아들 나간 다음에 아버지의 마음은 더 아프고 쓰린 것입니다.

병신 자식에 대한 애정은 성한 자식보다 더한 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이 하나님을 더나고 매를 맞는 모습을 불 때에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수록 하나님의 마음은 이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를 가하셨으나 그렇다고 아주 버리지 않는다는 말씀이 8-9절의 말씀입니다.

놀라운 사랑입니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이 파렴치한 배반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대신에 자비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9절)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이스라엘이여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11:8). 이 구절은 호세아서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말씀은 확증도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신 그 신부를, 여러 세기 동안 돌보신 그 백성을 비록 범죄했어도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번 실수하면 그렇게 금슬이 좋다가도 이혼으로 끝장을 내고 맙니다.

그러나 놓지 않는 이것이 곧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이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고덩어리 아들에 대해서 부모의 마음이 더욱 연민에 불붙듯이 배반하고 떠나가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은 긍휼로 불붙습니다.(8하).

‘긍휼’ 이라는 말은 히부리 말로 ‘카스헷’으로 자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불붙듯이 일어나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무엘 루터 포드는 “오 그리스도, 주는 깊고도 달콤한 사랑의 샘일세” 라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심판을 몰아내셨습니다.

하나님으 자비에 응답하여 남은 자들이 애굽에서 앗수르에서 새 같이 비들기 같이 떨며 나아올 거입니다.

저희에게 심판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모으시겠다는 말씀이 10-11절에 아타납니다.

여호와께서 안돌아 올래 한 번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 부터 덜며 오고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울며 오고 앗수르에서 비둘기 같이 두려워 떨며 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니믄 그 보상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루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대속의 죽음입니다.

내가 죽어야 하고 내가 당해야 할 멸시를 주님이 대신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돌아올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애굽에서 아들로, 성도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금 돌아옵니다.

사업실패, 질병, 재난 이 모든 것은 사자처럼 부르짖는 여호와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우리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붙는 심령을 묵상해 봅시다.

내 심령도 불붙을 것입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새같이 울며, 비둘기같이 떨며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힘없어 뒤로 물러가지도 말고 악한 마음 때문에 주님을 대적하지도 말고 범한 죄때문에 낙심하지도 말고 오직 주님께로 돌아올 것 밖에 없습니다.

주여 저희를 돌이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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