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옛 계약의 마지막 말씀 (말 03:13-4:6)

첨부 1


본문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소선지서는 끝으로 맺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말라기서가 구약의 마지막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선지서가 앞부분에 있고 역대하가 구약의 마지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마쳐라 학자들이 헬라어로 번역을 할 때 선지서를 마지막으로 빼내어 말라기서가 구약의 맨 뒤로 오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빌 게이트라고 하는 성경에서도 말라기서를 마지막으로 놓았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이나 우리말 성경에도 말라기서가 구약의 마지막에 있게 되었습니다.
마라기서의 마지막인 4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설교, 산상보훈 (마5,6,7장)의 마지막에도 심판에 대한 말씀으로 설교가 마쳐집니다.
그러므로 구약이 저주에 대한 말씀으로 끝을 맺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것이 아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라기서의 부분의 말씀을 통해서 꼭 기억해야 할 몇 가지 교훈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백성들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말3:14)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어 변함이 없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자꾸만 변해야 합니다.
변한다는 말은 회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실컷 대적하고도 “그러면 안된다. 회개하고 내게로 도라오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언제 하나님을 대적했느냐고 핑계하며 변명을 하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도 내리시고 환난도 주시고 시험도 주시는가 하면 달래기도 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말씀을 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과 앗수르의 군대까지 동원하시어 남과 북을 다 멸절하였으나 아직도 기본적인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친구간 형제간 부부간 혹은 부모 자식간에 잘못된 관계에 있을 때에 가만히 생각해 보십이오, 아무개가 큰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개가 큰일난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이들한테 교훈할 때에 가끔 그런 말을 합니다.
“너 때문이야 하고 상대편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면 다섯 손가락 중에서 엄지와 검지는 상대방을 향하는데 나머지 세손 가락은 자신을 향합니다. 그러니까 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입니다.”
저도 주일학교 때 들은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잊어버리지를 않습니다.
결국 매사에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변하지 못하는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변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 머리만 돌려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온 몸과 온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야 됩니다.

2.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3:6)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하나님을 섬겨 봐야 유익은 없고 오히려 교만한 자가 복음을 받고 자기 길 가는 사람들이 성공하더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자기를 섬기는 자에게 복을 주시고 자기를 떠난 자에게는 저주를 주신다고 하는 것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비록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이 편치 않고 그 때가 연기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십니다.
그런데 정작 바뀌어야 할 인간들이 오히려 불변하신 하나님을 바꾸어 놓으려고 합니다.
불변하신 하나님을 사람의 수준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하고 사람의 입장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설득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3.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오고야 만다

“보라 극렬한 풀무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4:1상)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대상은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로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란 결국 같은 뜻으로 자기 자신을 절대적이라고 정당하며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자이니 이 교만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높이며 살뿐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연기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더 많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참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벌써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4.하나님의 법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너희는...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4:4)

하나님의 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폐기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법은 수시로 변하고 폐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됩니다.
제가 대학에 책임을 지고 있을 때에 문교부에서 공문이 하루에도 몇 장씩 날라 옵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또 어떤 때는 그것이 뒤바뀌어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때는 대학이 문교부라면 절절맬 때입니다.
대학의 총장들 사이에는 서로 전화를 하면서 “큰일이다. 어떻게 하면 좋으나, 그래도 해야지” 하면서 할 수 없이 문교부를 따라갑니다.
저는 양보하지 못할 부분은 양심을 굽히면서까지 할 수 없다고 내일 그만 두더라도 못할 것은 못한다고 자꾸 거절을 하면서 60% 정도는 따라가고 40% 정도는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문교부에서는 이총장 안되겠다고 난리입니다.
그러면 저는 “내가 총장이냐 목사지 자르려면 잘라라, 나도 입이 있고 붓이 있다” 항의합니다.
한 번은 문교부에서 서명 교수에게는 연구비 주지 말라고 공문이 내려 왔습니다.
서명이라는 것이 별 것도 아니고 유신헌법 틀렸다고 서명한 것을 가지고 연구비 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명 교수도 순서가 되면 연구비 주었습니다.
문교부에서는 왜 그런 교수에게 연구비를 주었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런데 1,2개월 지나서 또 공문이 왔습니다.
서명 교수에게도 연구비 지급하라고 합니다.
세상 법이 이렇습니다. 자꾸 바뀝니다.
세상 것을 다 따라가려면 정신이 없습니다.
이 사람 말듣고 저 사람 말듣고 일 쏠리고 저리 쏠리고 그런 사람을 보고 귀가 엷다고 합니다.
“목사님 목사님 큰일났어요”
“뭐가 큰일입니까, 가만히 개세요, 급하지 않습니다. 며칠 있으면 다 지나갑니다.”
세상 바뀌는 것을 따라가다가는 더 큰일이 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변치를 않습니다.
하나님도 변치를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심판도 변치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도 변치 않습니다.

5.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합니다.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하)

선지자 엘리야는 신약에 와서 세례요한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면 저주로 땅을 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서는 이와 같이 놀라운 심판의 선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피차 위로도 하고 복을 빌어 주기도 해야 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빼놓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두려운 심정으로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시며 그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 안에서 이 말씀을 배우며 이 말씀이 주시는 모든 은혜와 복을 누리시고 이 말씀 밖에서 살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소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