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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하뇨? (마 2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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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 말의 의미는 유행 이상의 공감대를 갖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 말은 하바드대학의 경제적 교수인 갈브레이스가 쓴 경제역사를 다룬 책의 제목인데 우리에 게 여러부문에 걸쳐 생각케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불확실속에서 확실하게 알수있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함 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발달되었으며, 대량생산과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지 구촌 곳곳에서는 빈곤과 기아에서 허덕이고 "도시 빈민층"이라는 새로운 빈곤 계층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신앙적 입장에서도 우리도 비슷합니다. 그 옛날 쪽복음 하나만 가지고 믿을때 순교하는 신앙,자신,이웃, 심지어 사회와 이데올로기 까지도 움 직여 갔는데 오늘 홍수같이 쏟아지는 성경, 말씀, 테이프 및 각종 홍보 매체속에서 얼마나 기독교의 진리 ,믿음 이것이 움직여가고 있는지 오히려 진리는 상대화되어서 이렇게 멸하고 저렇게 멸하는 시대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어떻게 믿고 있다고 해야 내 믿음의 확실성을 나타낼수 있겠 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부활의 사실, 빈 무덤앞에서 제자들에게 알게하려고 달려가다가 주님으로부터 "평안 하뇨" 하는 질문성이 있는 인사를 받습니다.

과연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여인들이 달려가는 길이 "확실" 이 아니고"불확실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기쁨"이 공존하는 갈등, 모순 속에서 달려가고 있었 습니다.

오늘 우리속에는 언제나 이러한 모습들이 양립하고 있음을 봅니다.

믿음을 말하면서 불신앙이, 죽음과 생명사이, 죽음의 불신과 부활의 신앙, 빈무덤의 절망과 부활의 소망 , 무서움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여인들처 럼 우리도, 인간들도 달려갑니다.

이 길목에서 주님은 "평안하뇨" 물으십니다.

이 말씀은 헬라어 "카이레테" (Kailete)라는 말인데 "기쁘뇨" "정말 기 쁘냐"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속에서 추구하시는 신앙의 깨우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사실이 진실이 되어야 함을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평안 한가 정말 기쁜가 내 삶의 사실 내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실속에 진실 한 평안,기쁨이 있는가 혹 이중적은 아닌가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평안 하뇨 질문을 받으면 내믿음은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기도, 거룩, 헌신, 헌금 이런 것이 무수합니까 아닙니다.

믿는다는 사실, 믿는 모습이 많을 경우 회칠한 모습으로 달려가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하뇨" 이 속에는 바로 우리 믿음의 가식과 체 면 ,허기속에서 진실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이후 제자공동체는 바로 두려움을 몰아내고 진정한 평안 , 기쁨이 필요 했습니다 . 이 진실한 기쁨이 부활의 증인이 되게하는 것이며 부활의 기쁨 과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말 평안하다"하는 고백으로 고백하며 승리하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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