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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 가운데서도 기도하라 (시 5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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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할 당시, 친한 친구였던 아히도벨의 배반을 보고 비탄에 잠겨 하나님께 간구하는 다윗의 비탄시이다.(삼하15장)
다윗은 이 비극적인 위기에서 놀라운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1. 근심이 떠나가지 않는 세상(1-2).

오랫동안 사울 왕에게 도망다니며 생명 부지를 위하여 고난을 겪었던 다윗이 이제는 다시, 아들 압살롬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도성을 떠나 좇겨 나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
격동 세월을 보냈던 다윗에게는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부귀영화가 아니라, 편히 쉴만한 곳, 근심이 없는 안정이 필요하였다.
누가 이 절망에서 누가 건질 수 있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바라고 있다.
이 세상은 염려와 근심이 될만한 원인들이 너무도 많다.
이 염려와 근심이 사람을 찾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인본주의가 동원되면 곤란하다. 오직 주만 의뢰토록 하자!

2. 육신의 곤고함이 찾아올 때 기도하자!(3,9-11)

다윗은 자신이 주께 부르짖는 이유가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3절)고 하였다.
또한 다윗은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9절)라고 했다. 또한 11절에서는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고 하였다.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압살롬은 모사 아히도벨을 대장으로 삼고 다윗 군대를 추격할 방도를 간구하였다.
한때, 다윗의 모사로서 다윗과 가까이 하며 충성을 다한 아히도벨인 지라, 그는 누구보다 다윗의 방법과 전략에 능통하였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안은 다윗의 잔여 세력을 공략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중에 있었다.
아히도벨은 다윗이 전열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말고, 속전속결로 기습공격 하자고 하였다.
이런 아히도벨의 판단은 매우 정확하였다.
이리하여 다윗의 뒤를 추격하여 다윗을 생포하기 위한 모의는 하나하나 착착 진행되어 나갔다.
(물론 이 작전은 항복한 다윗의 다윗의 친구 후새의 음모에 의해 무시되었지만). 이렇게 다윗의 목을 죄는 위기가 점점 다윗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다윗은 왕의 신분에 지명수배자가 되어 두루 방랑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의 생명을 헤치려는 모의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으니 다윗이 입은 육신의 곤고함이 어떠했겠는가 이제 다윗은 완전히 인생의 패배자가 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태고부터 계시던 하나님(19),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않으시는 하나님(21절)을 바라보며 주께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이다(1-2,16)
여기서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으신 것이다.
(사40:27-29)“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28)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 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3. 심령이 피폐하고 낙망될 때 기도하자(4-5, 12-14, 20)

다윗이 처한 고통은 단순한 육체적인 곤고함 그 이상이었다.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추방되었고, 게다가 친한 친구의 배신이 더욱 낙망스럽게 만들었다.
12절에서 다윗은 말하기를 자신이 책망하며 한탄하는 대상이 차라리 원수였으면 더욱 좋을 뻔하였다고 했다.
평소에 미워하던 자라면 차라리 피해서 숨을 지언정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다윗을 대적한 아히도벨은 평소에 아주 친숙한 자였던 것이다(13).
그는 다윗이 주의 장막을 찾을 때에도 함께 동행하였던 자였다(14).
이런 자가 다윗을 배신한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었다.
자신이 애정을 다해 기른 사냥개에 물린 심정이었다.
이때 다윗이 누구를 붙잡고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한탄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다윗은 전쟁에서의 승리도 원치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잊고 비둘기처럼 훨훨 날아가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고 하였다(6).
그리고 물도 없고, 서늘한 그늘도 없는 광야라도 좋으니 그곳으로 달려달라고 하였다(7).
그러니까, 반란을 진압하는 것도, 다윗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저 주님 앞에서 안식하고 싶고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을 뿐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주님께 토로하였다.

4. 모든 문제의 짐을 기도로 맡겨 버리라!(22-23)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인간의 연약성과 부족성과 나약성 때문에 더욱 잘 넘어진다.
우리의 마음과 생을 짖누르는 무거운 짐이 있거든 무엇이든지, 모두 다 주님께맡겨야 할 것이다.
왜냐면 모든 것이 주님의 능하신 손에 있기 때문이다. 완전하신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맡길 때는 믿음으로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맡겨야 한다.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이는 무엇이든지 올바로 맡길 수 없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결코 파멸과 고생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다.
다 맡기면 22절에 ‘너를 붙드시고’라고 하였다.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것이다. 세상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지 않으시면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릴 때 가치가 있고, 승리와 영광이 있다.
그리고 다 맡기면, ‘영영히 요동치 않게 하신다’(22) 하나님께 내 인생의 짐을 맡기면 우리를 영영히 요동치 않게 하신다는 약속이다.
다시말해,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고 요동하는 세상에 동요되지 않고 든든히 서가는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마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시37:5)“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잠16: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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