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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양심이 증거되어 (롬 0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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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증거되어
이방인이나 유대인 할 것 없이 범죄한 사람은 누구라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한 자들은 마음의 법을 따라 심판받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고소나 변명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살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율법을 가지고도 범죄한자는 그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므로 심판받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어김없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은 듣고 알아서 감격하고 감동받 데에 쓰여지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듣고 은혜받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면 구약의 율법주의자와 별로 다를게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지고한 수준이 자신에게 율법이 되어 자신을 정죄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식적인 만족을 즐기기 위해 말씀을 대하지는 않습니까

모독받는 하나님의 이름 (17-24절)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받았던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 때문이었다고 바울은 서러명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입어 율법을 받았다고 자랑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에 선한 것이 어떤 것인줄을 잘알고 자칭 소경의 인도자요 빛이며 선생이라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모세 율법을 통달하고 정확하게 가르쳤다라도 정작 자신은 율법을 제디로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법에 지고한 가치를 두지 않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오랫동안 교회 생활을 하였거나 훌륭한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각종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여러 집회에 참여해서 우수한 신학 강의를 들었다고 해도 그의 삶과 인격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으면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과 교회로 하여금 모독받게 할 뿐입니다.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25-29절)
할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특별한 증표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할례받은 유대인들이 언약을 따라 율법을 지켜 행하여야만 할례가 의미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할례없는 이방인일지라도 율법을 지켜 행하면 할례받은 것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참 유대인의 표징은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아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식적이거나 외형적인 변화나 그에 따른 교회적 증표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비록 세례를 받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았어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마음의 변화가 없으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에 합당한 정신과 삶이 뒤따라야 합니다. 받은 세례가 의미있고 효과가 있을 만큼 우리의 내적인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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