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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예배에 있어서 방언과 예언 (고전 1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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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언이 방언보다 더 분명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예배에 있어서 방언보다 예언이 더 유용하다는 관점에서 논지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예배가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적인 경험의 차원에 놓여 있다면교회를 유익하게도 못하며 세우지도 못하며 아 직 은사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을 이해 시킬 수도 없을것 이라고 말합니다(12절).

방언과 예언과 관련하여 예배는 어떻게 드려져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하 는 것입니다.

 1.그리스도인의 예배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드려져야 합니다(6-12절).

 바울은 본문 6절을 통하여 구경꾼이 아니라 기여자가 되려는 심정으로 예배에 관하여 말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 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 희에게 무었이 유익하리요"(6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배를 돕는 최선의 방법과 교회를 세우는 유일한 방법이 명료한 계시전달임을 말 하고 있습니다. 예배에서 계시의 말씀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중요합니 다. 그런데 그 계시의 말씀이 마치 불협화음을 내는 악기들과 같아서 도무 지 지금 무슨 소리를 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냐는 것입니다(7-11절).

방언도 소리의 일종이요, 예언도 소리의 일종입니다. 그 소리가 예배에 있어서 뜻없이 허공에다 해대는 소리에 불과 하다면 그것은 야만적인 행위 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9-11절). 그러므로 예배에 있서는 복음의 의 미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에 예배는 어느 특정 개인이나 몇몇 사람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드 려져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다 복음의 진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리로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에 방언과 예언중 에서 예언이 훨신 더 효과적으로 성도들 모두를 이해시키는 은사인 것입니 다. 진리되는 예언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행20:20-32).

그렇다고 방언이 전혀 무가치 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방언이 예배에 있 어서 가치있게 되려면 반드시 질서를 지켜 통역이 되어져야 하는 과정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서 신령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은사를 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그리스도인의 예배는 명료해야 합니다(13-20절).

 이제 바울은 13절 부터 방언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 관해서 교훈을 줍니다. 예배에 있어서는 명료함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므로 방언하는 자 들은 통역할 능력도 함께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방언하는 자들이 자기가 한 방언을 이해애야 함은 물 론 다른 사람이 하는 방언도 해석할 수 있는 통역의 은사를 구함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알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언이 지성을 초월는 경험으로서 개인적인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방언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대화하고 싶어하는 욕구의 일환으로서, 사람의 내면에 긴장을 풀어주고 어떤 기쁨을 주며,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셔 축복 하신다는 강렬한 생각을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방언은 다 음과 같은 한계를 지닙니니다.

첫째, 방언이 마음의 열매는 맺히지 못합니다(14절). 본문 14절에서 방언 은 그 사람의 영이 기도하는 것으로서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하 였습니다. 다시말해 방언을 말할때 마음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오직 영 만 이 하나님과 교제하므로 그 영 만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 기도하는 자들은 방언 기도만 하여서는 안됩니다(15절).마음 과 영이 모두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본문 15절 말씀처럼 영으로도 기도하 고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음이 열매를 맺게 하려면 방언 찬송만 하지말고 마음으로 드려지는 평상적인 찬송도 드 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방언하는 자들이 방언만을 사용하지 말고 마음으로 하는 기도 와 찬송을 해야 하는가 하면 만일 우리의 영과 마음이 균형있게 열매를 맺 지 못하면 그로인해 곧 우리의 신앙이 파행적으로 치닫게 될것이기 때문입 니다. 다시말해 불건전하고 불균형한 신앙인으로 바뀔 위험성이 있다는 것 입니다.

둘째로, 방언의 한계는 주위의 성도들이 우리의 방언에 적절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습니다. 다시말해 방언하는 자가 방언으로 말하고 축복할때에 그 의미를 알아듣고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16절). 아멘으로 화답할 때에 비로소 남이 빌어준 축복이 나의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시에나 남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할 때에는 될수 있는데로 방언으로 하지말고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여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게 된다면 본문 17절 말씀처럼 "너는 감사는 잘 하였으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방언의 한계는 가르치는데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적합치 않 습니다(19절). 그래서 본문 19절에서 바울은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더 낫다고 하였 습니다. 그러므로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남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소 귀에 경읽기 식이 되어 받는 자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의미한 수많은 말보다 진실하고 사랑이 담긴 분명한 말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방언하는 자는 방언을 통해 강압적 인 권위로 누르며 신비적인 말로 형제를 현혹시키기 보다 뜨거운 사랑의 분명한 말로 교육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변화와 감동을 주는 힘을 가지 는 것입니다.

 3.그리스도인의 예배는 깨달음과 변화와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20-25절).

 예배에서 깨달음과 변화와 성장을 가져다 주는 데에는 예언이 더 효과적 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이라고 하면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으로 이해되 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언의 은사나 예언은 미래의 일을 알리는 일 뿐만 아니라, 현재에 대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 타난 예언은 미래의 사건을 말하기 보다 오히려 현재의 상활을 다루며 그 것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이 사용되어 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 지로 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의 지금 현재의 구체적인 삶 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뜻이 무었인가 하는 것을 영감을 받 아 말하는 것이 이 은사를 가진 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제 예언의 은사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게 만드는 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합니다(24절). 본문 24절에서 말씀한 "책망을 들으며"라는 말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죄가 있음 을 깨닫게 하고회개에 이르게 한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우물가에 물길러 갔던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의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9)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 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심판 하신다(요3:20)고 하였습니다.

둘째, 예언은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24절). 본문 24절에서 "판단 을 받고"하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과실을 발 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심판의 자리 를 기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셋째, 예언은 마음의 숨은 일을 드러나게 해 줍니다(25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결코 스스로 보이려고 하지 않습 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으려는 은폐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자기 자신의 결점이나 죄된 인간성을 발견하고서 열등의 식이나 소외감의 늪 속에 빠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릇된 이해는 심 각한 방황을 부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속담에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눈먼 장님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참 인간은 '나는 누구 인가'를 바로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 만이 가능합니다. 왜냐면 인간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예언된 계시의 말씀 앞에 설때에 비로소 죄로 오염된 나 의 참 모습을 알게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신 십자가를 지셔야 할 만 큼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예언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게 합니다(25절). 본문 25절에서 "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경배하게 합니다. 기독교는 여기에 서 시작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 소이 다"라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죄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 진정한 예배와 경배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모든 은사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예배하게 하는데에 기여 하여야 합니 다. 은사가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기는 커녕 자신의 유익이나 영광을 챙기는 은사라면 그것은 스스로 받은 은사가 거짓이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방언도 예언도 모두 하 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며 예배하게 하는데에 기여하는 은사여야 하는 것입 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은사의 사용을 하되 사랑을 따라하여야 하는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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