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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왜 사랑을 긍정적으로 정의하지 아니하고 부정적으로 정의를 내렸을까요 즉 "사랑은 겸손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라고 하면 될텐데 굳이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고린도 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교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고쳐 주고자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를 한 것은 현재 우리가 행하고 있는 부정적인 행동들을 우선적으로 멈추게 하고자 한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사랑이란 어떤 굉장한 선행을 하기에 앞서 먼저 지금 잘못 행동하고 있는 것들을 중단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암시한 것입니다. 사실상 겸손한 것과 교만하지 아니한 것은 아주 같은 것은 아닙니다. 교만하지 아니하다고 해서 다 겸손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례히 행치 않는다고 해서 그가 다 예절 바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만하지 아니한 자리에서 겸손한 자리까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겸손이겠지만 우선 교만하지만 아니해도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다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그가 원하지만 우선 무례하게만 행치 않아도 사랑은 이미 시작된 것임을 가르치려고 한 것입니다. 다른 부정적인 정의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사랑의 최대치(最大値)를 말한 것이 아니라 최소치(最小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랑을 이렇게 최소한도로 정의를 내렸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쉽게 접근할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I.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한다.

먼저,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우선 교만을 버리는데서 부터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교만을 버리지 아니하고서는 사랑을 알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만이란 사람이 자신의 중요성이나 능력 또는 성취 따위를 추켜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자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말입니다.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바리새인들의 교만을 지적하셨습니다. 두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바리새인은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를 하였고,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내려갔다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보면,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타인을 멸시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습니다. 교만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항상 자신들을 성별된 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 이방인들을 멸시하여 왔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만 사랑하시고 이방인들은 사랑하지 아니하신다고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선택된 자의 교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선택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시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그 특권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작은 자와 자기를 동일시하시면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아지셨는데,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경멸하였던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멸시하고 경멸하는 마음이 바로 교만이요,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며 경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속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잘 지킨다든가 아니면 지식이나 재물을 가졌다든가 높은 지위에 있다든가 할 경우에 자연히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들의 경우에 오히려 교만하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처럼 오래된 교회일수록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교만함을 버리지 못한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낮아지는 대신에 오히려 높아지는 경향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잠시 왔다가는 떠나가 버리곤 합니다.
어느 교수님이 쓴 글에, 가정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정부들은 가능하면 믿는 사람 집은 잘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잔소리가 많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남에게 질세라 사랑과 구원에 대해서 말하지만 막상 가정부에게는 따뜻한 식사 한 끼나 헌 옷가지 하나 줄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베풀지 않는 것까지는 좋은데 말은 왜 그렇게 많으냐는 것입니다. 그 교수님은 새로 구한 가정부에게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고 한 집안 식구 같은 느낌을 가질 때까지 계속적인 사랑의 수고를 하였고, 모든 교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데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멸시하지 아니하고 친구처럼 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일수록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속에 와 계신 주님을 항상 생각하면서 작은 자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바로 사랑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32:23)고하였습니다. 잠언 말씀에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고하였습니다. 예수를 잘못 믿으면 오히려 교만해지고 그 교만은 그를 멸망으로 인도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앞서 본대로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을 하며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가 헛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능력들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그 교만이 우리에게서 사랑을 빼앗아 가 버리면 결국 그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이 되고 맙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에 보면,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할 때에 예수님은 저들에게 대답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업적을 주의 이름으로 행한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할까요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사랑이 없을까요 교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어떤 업적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서는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그것을 자랑하려 했던 것은 그가 얼마나 교만한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하였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결국 자기 자랑이요 자기 이름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사를 받아 봉사하는 일은 결코 자랑할 일이 되지를 못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행할 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한 일을 내세워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서려 하며, 대접을 받으려 할 때 그는 사랑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빠진 함정이 바로 이 업적주의였습니다. 이레에 두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내는 것은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율법을 잘 지켰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을 위해 일하지만 자랑 대신에 항상 무익한 종일 뿐이라고 늘 고백할 때 거기에 참사랑이 깃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은총이 높은 선반 위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오르기 위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물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 밑에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일 때 비로소 그 선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만을 버리지 아니하고는 사랑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자 되기를 힘쓸 때 거기에 진정한 사랑의 삶이 싹트게 될 것입니다.

II.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

다음으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례하다는 말은 "창피한 행동을 한다" "비열한 행동을 한다" "보기 흉한 짓을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열한 행동이나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랑이 있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사랑이 없는 사회인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을 볼 때 이들이 얼마나 비열하고 보기 흉하며 창피한 일들을 많이 행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그래서 <국회의원 윤리 강령>이라는 것을 만든 모양인데 그것을 통과시킨 지난번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여전히 욕들이 난무하였다고 합니다. 하도 그러니까 민망했던지 한 의원이 "그래도 방금 전에 윤리 강령을 통과시켰는데..."라고 하자 다른 의원이 바로 "윤리 강령 좋아하시네"라고 맞받았다고 보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회가 옛날부터 무례하기로 소문났지만 갈수록 태산이니 오늘의 사회가 규범 있는 사회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구원하시어서 법도와 예절을 알지 못한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광야로 이끌어 내셨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지켜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요청하셨던 것입니다. 무례하고 질서가 없는 이 백성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때로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기도 했던 것입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격(格)을 갖추지 못한 행위인 것입니다.
레위기를 통해서 보는 대로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으로 제사와 성결한 생활과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는 것은 단순히 예의를 지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도 하나님과 형제들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준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는 것은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아니하고,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아니하고 참석하므로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며, 십일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지키며 기도의 생활을 하는 일과같이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착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만이 예배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요소들을 빼 버리게 될 때 우리는 무례한 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형제들 간에 우리가 무례한 자가 되지 아니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앞서 말한 교만하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만하게 될 때에 자연 사람이 방자해지고 무례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 사이일지라도 지켜야 할 예절을 무시하게 되면 사랑에 금이 가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가 되었지만 그러기에 더욱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예의를 더욱 바르게 지키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부모와 자식간에 그리고 부부간에 지켜야 할 법도를 제시하였습니다.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고, 부모에게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들에게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였고, 남편들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법도를 지켜 나갈 때 사랑이 더욱 두터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직분들이 있습니다. 장로나 권사된 사람들은 더욱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기를 힘쓰고, 다른 사람들은 장로나 권사들을 존경하여 적절한 예우를 할 때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까운 사이일 수록 격과 법도를 지켜 나가는 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임을 알고 상대방의 인격에 상처를 주거나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말과 행동을 극히 조심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지극히 작은 자를 멸시하는 나쁜 습성들을 버리고, 오히려 작은 자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발견하고 서로 섬기며 존중해 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섬기며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사랑으로 격려해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도를 따라 행동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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