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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강권하는 사랑 (고후 0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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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이야기다. 한 잘 생긴 젊은 미국인 하나가 오사카에서 나 카사키로 향하는 배를 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일본 선교사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랜 동안 훈련을 받고 이제 임지로 부임하는 중 이었다. 그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만나서 구원할 영혼들 을 향해서 사랑을 느끼면서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잠자기 위해서 자기 의 숙소로 내려갔다.

 그 밤은 비가 몹시 쏟아졌다. 잠자리에 든 청년은 무엇인가 좋지 않 은 느낌이 들었다. 배가 기울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구명대를 메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곧 이어 배는 침몰하고 폭풍 속에 몸이 잠겼다.

그는 바로 앞에서 허우적 거리는 여자를 보았다. 웬 할머니였다. 구명 대는 일등 선실에 탄 사람들만 배당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구명대 를 벗어서 할머니에게 입혔다.

 그리고는 임지에서 최초요 마지작인 설교를 한다. "할머니 나중에 구 출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하시오. 내가 할머니 대신으로 죽 고 내 생명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되어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었고 자기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의 이 름이 예수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말을 마친 뒤에 청년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후에 할머니는 구출되었다. 그리고는 방방곡곡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이야기 했다. "나는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 대신 죽은 그 청년 이야기가 그분이 내 죄를 위해서 그 청년처럼 죽었 다고 합니다." 그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울었다. 그후에 그녀는 성 경을 읽어서 스스로 전도인이 된다. 청년만 생각하면 그 뜨거운 사랑 이 압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강권한다. 너무도 큰 사랑을 받으면 말문이 막히는 법, 할 말 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슴은 벅차게 된다. 생각해 보라. 베드로 는 예수를 부인했다. 수제자로 여겨주어 모든 것을 주었다.그러나 자 기 선생이 잡힐 때 도망했다. 얼마 후에 정신이 들어 멀직이서 거리를 두고 잡혀간 선생의 뒤를 따랐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불을 쪼이면 서 사람들 앞에서 숨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말한다. "당신 나사렛 예수와 한패 아니오" 기겁을 해서 부인했다.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거기서도 같은 질문 을 받는다. 그는 계속 예수를 모른다고 했다.이제는 계집종이 그를 알 아보고 한패라고 외친다. 베드로는 예수를 저주하며 욕을 퍼부으며 부 정했다. 그때 심문을 받던 그의 스승은 못난 제자를 바라보았다. 베드 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운다.

 예수가 죽은 뒤에 베드로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예전처럼 고 기를 잡고 있었다.그때 부활한 예수는 포기한 제자를 부른다. 베드로 는 예수인줄 멀리서 알아보고 겉옷을 급히 입고는 물 속에 뛰어내려 달려온다. 예수는 그를 품에 안았다. 아무런 비난이 없었다. 베드로는 그때 스승의 사랑을 알아 본다. 스승의 사랑은 그를 압도하였다.베드 로는 자기 속에 그 힘을 느낀다.

 그때 스승은 물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는 베드로의 사랑의 농도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베드로야 너는 내가 준 이 사랑 이 네 속에 있음을 지금 느끼느냐"는 것이다. 스승은 세번이나 이 말 을 확인시킨다. 베드로은 목이 메어 말한다.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 는줄 주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오늘의 주제이다. 우리 속에 솟아나는 주의 사랑이다.

 많은 사람들은 복받고 능력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내가 열심을 내어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도 내게 복을 주리라고 믿는다. 이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다. 베드로도 사랑을 다해서 주를 섬 겼다. 나중에 주가 체포될 때 인간적인 열심으로 칼을 빼서 대제사장 부하의 귀를 짤랐다. 여기까지가 그 한계였다. 주가 잡히자 그의 사랑 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남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안다. 아무리 세기적인 연애 끝에 결혼한 여인도 남자가 한 시간만 때리면 징그럽게 생각하게 된 다. 남편이 무능하고 못나면 싫어진다. 병들어서 여러 해를 지나면 사 랑은 다 사라지고 오로지 의무감한 남게 된다. 먼저 번의 사랑은 어디 로 갔는가 아니 어디로 간것이 아니라 그 사랑의 길이가 짧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일뿐이다.

 스승이 제자를 사랑하고 제자가 스승을 사랑하는 것도 본다. 친구와 친구 사이의 사랑도 아름답다.그러나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것이 쉽게 불륜의 관계로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수도 있다. 너무 도 감정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좀 더 오래 가는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지만 그것도 완전한 것은 될 수 없다. 서로 미워하고 심지 어는 의를 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간 속에서 나온 모든 사랑은 인간적인 차원으로 그칠 것이다. 인간 의 차원에서 그치는 사랑이라고 그만 두라고 가르치면 안된다. 그것이 외형적인 질서로는 유익을 줄 것이다. 그것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 한 것이다. 그리고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그래야 이 삭막한 세상이 조 금이라도 질서가 잡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깨달아 지면 버려지고 말 것이다.

 아무리 전등이 밝아도 태양만큼이나 되겠는가 세상의 모든 빛이 태 양의 한 작은 부분인 것처럼 인간의 선한 뜻도 하나님에 비하면 그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인간적인 사랑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다. 더 사랑하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는 인간의 어떠한 사랑도 하나님의 사 랑에 비교나 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랑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것이다. 이 사랑이 천지를 창조 하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것이다. 이 사랑은 단지 오냐오냐하고 용 서만 하지 않는다. 질서를 주고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한 없이 쏟아 주는 것이다. 이 사랑의 파도에 잡히면 그때부터 삶은 생기를 얻게 되 고 봄의 힘이 일어나게 된다. 이 사랑이 위대한 생을 만든다. 거지건 가난한 사람이건 위대하게 된다.

 보라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 주어 위대한 삶을 보여주었는 가 그리스도의 삶은 사랑 그 자체였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했던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로 죽었다는 말이다.

그 사랑이 그를 우리의 대표로 만들어 벌을 받게 했다는 말이다. 그 사랑을 받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다.

 내 마음에 양심은 묻는다. 그리고 율법도 묻는다. "네가 하나님 앞에 명령대로 살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가" 죄인은 말한다. "아 니요. 나는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혹시 행동으로는 안했 다. 해도 마음으로 말로 나는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러면 너는 죄 인이다. 그런데 죄인에게 해당되는 형벌을 받았는가 세상에서 당하지 만 더욱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한다."

나는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형벌를 다 받았고 죽음까지 지불 했습니다.","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너는 죽지 않고 잘 살아있지 않느 냐" 그러나 나는 다시 대답한다. "아니요 나는 죽었습니다. 예루살렘 밖의 갈보리 언덕에서 만인이 보는 가운데, 그리스도가 나의 대표로 그리고 나의 대신으로 확실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형벌받을 수 없습니다.

 그때 양심과 율법은 말한다. "그리스도가 대표로 그리고 대신으로 죽 었다면 더 이상의 형벌을 요구할 수 없다. 나는 무섭게 따지지만 그리 스도가 대신 죽어주신 사람을 위해서는 할 말이 없다. 네 모든 저주는 그쳤다." 자칫 잘못하면 이것이 별 현실감 없는 이야기로 그칠 수 있 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밀려오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다면 모든 이야기는 실감나게 경험된다.

 그러나 아직도 여기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하는자가 있다. 바로 마귀 다. 그는 이러한 내용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네가 무엇인 가 해야 그 댓가로 구원을 얻는 것이지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이요 이것이 바로 속임수이다. 이러한 속 임수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공로로 매달리게 만든다. 이게 바로 베드로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마귀는 말할 것이다. "아직도 너는 사랑이 부족하다. 보아라.너는 열 심히 섬기지 못하지 않느냐. 너는 이웃을 위해서 무얼 했느냐네 사랑 이 그만하면 신자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이렇게 해서 우리는 다 시 우리의 인간적인 차원으로 떨어지게 되고 자기가 사랑이 부족하다 는 현실을 보고 좌절한다 그렇게 믿음에서 떨어진다. 우리가 믿을 것 이 인간적인 우리의 사랑인가

그저 우리가 할 찬송은 이것뿐.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줄 알고 버리네 " 육신의 힘으로 서 보 겠다는 것이 세상의 욕심이다."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 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교만은 결심하고 노력해 서 없어지지 않는다. 그의 공로를 알때 그의 사랑이 밀려듬을 느끼고 교만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셨다. 자기 자리에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 자리에 자기를 두셨다. 그리하여 우리 이름을 하늘에 기록하고 자기 이름을 지옥에 던져두었다. 우리의 대표로 그는 이 일 을 하셨다. 대표가 죽었기에 우리 모두는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이 대표는 자기의 몸을 이용해서 나의 삶을 대신 그것도 너무도 진하 고 분명하게 살아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 있지 않은가! 인간의 모든 약점을 그 대로 짊어진채로 세상에 남아있다.그리스도 당시의 사람들이 고린도의 거리를 걷듯이 우리는 청담동의 거리를 걷는다. 그저 매일의 삶을 살 며 직장에 일하며 가정을 돌본다. 우리도 아이들도 시험을 보고 싸우 고 돈 더 벌려고 하고 욕심을 낸다. 도대체 하나도 다른 것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다른게 무언가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선언한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 굉 장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도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산다.

우리도 육신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전혀 새로운 삶 의 방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전에는 순전히 우리 자신의 육신을 위해 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 이보다 더 큰 변화가 세 상에서 더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제부터 또 다른 위대한 생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가 우 리의 저주스런 삶을 자기 몸에다 가져가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가 우리 몸을 통해서 자기의 영광스런 삼을 살기 원하는 것이다. 이것 이 복음이다. 단지 우리의 몸을 빌릴뿐이지만 그는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완비하고 사랑으로 물밀듯이 들어오신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을 통 해서 황태자의 삶이 시작된다.

 이제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 그 삶이 우리 속에서 펼쳐지기 시 작한다. 이것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억지로 펼치는 사랑이 아니다. 가 족이나 친구처럼 자기에게 유익한 사람들만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다.

태양이 원수를 향해서 뜨겁게 비치듯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속에 서부터 솟아나오게 된다. 단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져서 우리 속에 있음을 알기만하면.

 이 사랑은 마음 속에서 밀려나온다. 사람들은 마음과는 다르게 외형 적으로만 선행한다. 예배도 찬송도 금식도 모두 억지로 할 수 잇다.그 러나 이 사랑은 이것들을 진심으로 하게 한다. 어떻게"그날 후에 내 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소 게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 성이 될 것이라."(렘 31:33).

 1968년 미국의 초게정 푸에불로 호가 원산 앞 바다 공해상에서 정보 를 수집하다가 북한측에 피랍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11개월의 모진 학대와 고문끝에 82명의 승무원은 풀려난다.그들은 자기들의 영해 침 범 사실을 고백하고 정보를 제출하도록 고문을 받게 되었다. 거의 일 년을 지옥 속에서 지내는 무서운 경험이었다.후에 승무원들에 의해서 공개된 이야기가 있다.

 열 세명의 핵심 요원은 각자 자기의 이름을 적은 의자에 둥그렇게 둘 러 앉도록 만들어졌다. 몇 시간 동안 지루하게 기다린다.그러다 별안 간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와서는 문 옆에 앉은 사람을 개머리 판으로 잔인하게 팬다. 그의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하는 동안 나머지 는 공포로 고문당한다. 다음 날 같은 사람이 같은 방법으로 당한다.

이 일은 그 다음 날도 계속되었다.

 공포심을 일으켜 정보를 캐내려는 방법이었다. 계속 맞은 사람은 거 의 죽음에 이르렀다. 다음날 다시 문이 열리고 같은 자리의 사람은 죽 도록 맞는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한 그리스도인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그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맞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 돌아가며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문의 방법은 바뀌고 포로들은 사랑의 새 경험으로 강해진다.

 그렇다 사랑은 받으면 강해지고 용기를 얻는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 는지 살펴보자.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음을 확인하라. 그리고 내 힘 이 아니라 그 힘으로 사랑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아가자. 밀물 처럼 조건없이 모든 사람에게 펼쳐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 권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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