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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과 미움 (요 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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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영화제목 같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고 키우시는 데는 두가지 방법을 사용하신다.

사랑과 미움이다.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서로 사랑해야 교회는 교회로 존재하고 교회 답게 성장한다.

그러나 또 교회에는 미움도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으로 부터 미움을 받아야만 교회로 존재되어지고,교회답게 성장한다.

 그러니까 교회는 서로 서로는 사랑하고,세상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아야만 한다.

 "사랑하고,미움 받고"-이 두가지 모두가 없으면 참성도가 아니다.열매 맺는 가지가 아니다. 주님의 참교회가 아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뜨뜻하고,깊은,그리고 묵직한 사랑을 찾아 보기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그것은 교회가 세상으로 부터 미움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랑과 미움은 서로 비례한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면 할수록 세상은 교회를 미워한다. 세상이 교회를 미워하면 할 수록 교회는 서로 서로 더 열심히 사랑한다.

 로마 시대 세상의미움을 받던 카타콤 교회가 서로 얼마나 사랑했던지.거리에서 만난 "물고기"표시한 자들 골목으로 숨어 들어가 두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로 함게 기도하고 위로하고(마라나타=주님이 곧 오신다),성도를 만났던 큰 기쁨 중에 헤어지곤 했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가 냉랭해진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세상으로 부터 미움을 받지 않아서이다. 세상으로부터 되게 미움을 받아야,아쿠 그래도 믿음의 형제들 밖에 없구나-!할 것인데,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장사꾼들로 부터 여기 저기서 환영을 받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서로의 사랑이 그리 필요하지도 그립지도 않게 되있다.

 교회는 세상의 미움을 받아야만 한다.그러니까 서로나 열심히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미움을 받는데 성도가 서로 사랑안하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가-교회 안에 간혹 있다.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면서 그런데 교회 안에서도 사랑을 못하고-. 불쌍하다.

그런데 더 불쌍한 교회는 세상에서도 미움 안받고 교회에서도 서로 사랑 안하는 교회이다.

 잘 안모이는 교회-세상에서 미움 받지 않는 교회,세상으로 부터 체질을 당해야 교회로 교회로 모이는 것이다.모이되 뜨겁게 모인다.

 군대에서 에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 받으면서 간신히 간신히 모여 ,다시 가서 얻어맞ㅂ을 사람들,예배드릴 때 얼마나 간절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몇십년 사귄 친구처럼 얼마나 정겨운지-.

 예배가 교회의 모든 활동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없다.그러나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란 모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제일 잘 나타내준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상당히 심각한 치료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예배 (1)구약의 성전 제사에서 형식은 버리고 그 정신을 배운다 (2)유대의 회당모임에서 성경읽기,설교,찬송,기도등의 형식을 배운다.

(3)예수님과 제자들의 다락방 모임을 그 모체로 한다.

 우리의 예배의 가장 중요한 어머니는 다락방 모임이다. 그 모임은 성찬과 세례가 중심이다. 그런데 그 두 예식 모두 그리스도의 한몸에 참여하여 서로 그 지체됨을 나눈다는데 강조점이 있다.

 그러므로 예배는 "본다"가 아니다.그리고 " 드린다"도 예배의 참뜻을 다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 예배는 "나누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사랑을 확인하고 나누는 것이 예배이다.

 오늘날 우리 예배에선 이러한 다락방 모임에서 배운 예배의 본질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오히려 구약 성전제사의 개념이나,유대 회당의 형식들만이 되풀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다락방 모임의 성찬식이나 세례식은 일년에 서너번으로 만족하고 있는데,아마 카톨릭의 미사에 대한 종교개혁자들의 반동 대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도 "서로 주의 사랑을 나누고,섬김을 확인"한다는 정신은 거의 생락되고,미리 조각 낸 성찬용 빵 조각처럼 개개인이 따로 따로 주님을 만나곤 만다. 횟수나 빙법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기둥만 남은 십자가와 같다. 수평관계가 상실된 오직 수직관계만 남은 십자가,교회의 모습,예배의 모습이 그렇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고 섬겨야만 교회가 된다.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이 모두 있어야 십자가이다.

 그런데 이처럼 교회가 서로의 관계에 무감각해진데에는 세상으로 부터 핍박과 미움을 받지 않아서라고 이미 말했다. 교회는 세상의 미움을 받아야 서로 뭉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는 스스로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세상의 미움을 받아야한다.

 그런데 미움도 종류가 있다.

어떤 전철에서의 싸움을 나무라면서-"여기가 교횐줄 알아!"

교회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이유:

당시 초대교회와 로마:(1)반역자들-큐리오스/롸마의 고아활한 영토 결속 시키는 구심점으로 황제 숭배 (2)식인종-성찬/내 피와 내 살을 (3)부도덕성-애찬=아가페,키스 (4)방화범들-벧후3:10,그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으리라,네로의 방화죄를 덮어 씌움.

(5)가정파괴자-실제로 일어난 일들

오늘날 우리는 무엇 대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아야 하는가

20,21절

1.이름/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서 미움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나기에 소속이 틀리다고 미움 받는다.

미군부대 소속,스미스 부대,아담즈 부대.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러나 소속이 틀리다고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이런 미움을 받아야 열매 맺는 참 제자가 된다.

 2.말씀/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하신다고 미움 받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입에 담고 그렇게 삶으로써 세상이 미워한다.이상한 사투리와 이상한 행습을 가졌다고 미워한다.이런 미움을 받을 때에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기뻐하고 크게 기뻐해라.

바로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참 제자이며,열매 맺는 가지이며,하늘에 받을 상이 크다는 증거이다!!

[결론] 예수님이 세상의 미움을 받은 것은 인품이 부족하거나,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서가 아니다.피할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었다.그에게 세상의 미움은 필연적이었다.

주인에게 그러했다면 우리 종들에게는 얼마나 더 그러하겠는가

성도간에는 뜨겁게 열심히 서로 사랑하고,세상으로부터는 미움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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