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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에는 질투가 없다 (고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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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질투를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 부족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질투가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질투를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 습니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어른이 된 다음에도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나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 질투를 느낍니다. 그 사람에 대해 험담하기도 하고 불평하 기도 하고 공격과 비난을 하기도 하고 때로 질투심이 극도에 달하 면 심지어 살인도 저지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여자 혹은 남자와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 저 사람 왜 저러지?, 날 사랑하지 않는가봐라고 하면서 질투를 느낀 적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투 때 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어떤 사람은 질투라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니까 질투하지, 사랑하지 않으면 왜 질투하겠나? 라고 합니다. 즉, 사랑은 질투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데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개념에서는 맞지 않 습니다. 오히려 사랑이 없어서 질투하지 사랑 때문에 질투하는 것 은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질투가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질투란 사랑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랑에 서부터 질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 다. 그런데 질투가 사랑의 동생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마귀가 천 사의 동생이라고 하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 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질투란 사랑이 없는 데서 나오 지 사랑의 또다른 일면이 결코 아닙니다.

 질투는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질투는 무서운 병입니다.

질투의 병에 걸린 사람은 자기가 걸린 병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 니다. 그것은 인간이 걸릴 수 있는 병 가운데 질투라는 병이 제 일 추잡한 병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다 보면 자연히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고 무시합니다. 성경에도 가인이 아벨을 질투해서 죽인 사건과 사울이 다윗을 질투해서 몇 차례씩 죽이려고 들었던 사건이 나와 있습니 다. 질투의 병에 걸린 사울은 결국 정신 이상을 일으켜 시달리다 가 마침내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질투는 참으로 무서운 병입니다.

 질투의 근원 질투는 어디서부터 생기는 것일까요? 사실 어릴 때는 누구나 질투 를 경험합니다. 동생이 생기면 곧 질투라는 병이 나타납니다. 동 생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어머니와 아버지, 삼촌과 할머니, 할아버 지가 전부 다 나를 돌봐 주고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생겨서 그 모든 사랑과 관 심을 다 가로채어 가 버립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는 첫째 아이를 집중적으로 돌볼 수 있었지만 갑자기 둘째 아이가 생기면서 그 아이를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서 첫째 아이를 돌볼 시간적인 여유도 정신적인 여유도 건강도 힘도 없어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첫아이는 좀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고 거기서 질투가 생깁니다.

엄마가 돌봐 줄 겨를이 없다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 봐 줘서 계속적인 사랑을 받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그런 일은 우리가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이제 질투의 근원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지나친 경쟁심이 있을 때 학교 성적, 용모, 예체능 등에서 특출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기대 를 크게 걸고 그 아이들에게 경쟁 심리를 불어넣습니다. 남과 경 쟁하는 과정에서 질투심은 크게 촉발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 어 딜 가도 우리보다 좀더 잘하는 사람, 좀더 잘생긴 사람, 좀더 능력 있는 사람, 좀더 부잣집에서 난 사람, 좀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사랑이 부족하면 질 투병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질투병에 걸리면 평생 불안과 초조감, 긴장에 시달리고 짜증을 잘 내고 늘 불안정한 상태에 살게 됩니 다. 그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가니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또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니까 늘 불안정한 삶을 사 는 악순환을 겪습니다.

 둘째/비교 의식이 있을 때 심한 경쟁심 뿐만 아니라 비교 의식 또한 질투의 원인이 됩니다.

동생과 형을 비교할 때 여기에서 질투가 생깁니다. 우리도 무의 식 중에 둘째 아이에게 애, 너는 어째서 형처럼 말을 똑똑히 못 하니, 너는 어째서 형처럼 빨리빨리 일어나지 못하니, 어째서 네 형처럼 공부를 잘하지 못하냐고 추궁합니다. 이때 동생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가만히 보면, 질투는 비슷한 사람 사이에 나타납니다. 여자가 남 자를 질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여자들끼리 질투합니다. 조 금 좋은 옷 입은 사람을 보고 저 옷 참 이쁘지?라고 하면 여자들은 대개 『저거 싸구려야』라고 대꾸합니다. 다른 여자가 더 돋보이는 것이 공연히 싫기 때문입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집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사람끼리 질투합니다. 의사가 운동 선수를 질투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운동 선수끼리 질투하는 일은 비일비 재합니다. 특히 서로 질투가 심한 직업인은 음악가들입니다. 조금 만 자기보다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질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교회마다 음악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합 니다. 질투는 동료들 사이에 생기는 것입니다. 목사가 사업가를 질투하는 법은 별로 없습니다. 목사는 목사끼리 질투합니다.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상에게는 질투를 느끼지 않습니다. 비슷 한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비교를 하다가 질투를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누군가가 편애할 때 목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교우는 더 좋고 어떤 교우는 좀 덜 좋고 그렇습니다. 그 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 해서 다른 교우들 앞에서 좋아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면 반드시 질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저는 교인들을 함부로 우리 집에 초청하지 않습니다. 초청하여 그 분이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면, 당장 그 구역에 가서 내가 어저께 우리 목사님 집에서 사모님이 초밥해 준 것 먹었어 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당장 『어째서 그 목사님은 당신만 초 청했냐?』는 질문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전통적으로 부모들은 장남, 장녀, 곧 첫아이를 좋아합니다. 첫아 이가 웃으면 이 세상에서 그 아이가 모든 아이들 가운데서 제일 처음 웃는 것 같습니다. 또 첫아이가 가나다라만 해도 이 아 이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가나다라 하는 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게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이 아이가 똑바로 드러누웠다가 조 금만 배쪽으로 드러누워도 참 신통합니다. 엄마의 엄자만 발음해도 엄마라고 분명히 말한 것같이 들립니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미 첫아이 때 다 경험했 던 일들이기 때문에 둘째 아이가 재롱 부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자연히 둘째 아이는 질투심에서 부모님에게 잘 보이려 고 애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후에 첫째 아이보다 더 잘되는 경우 도 있습니다. 이것을 미국 사람들은 둘째 증후군(세컨드 신드 롬)이라고 합니다. 야곱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가슴에 질투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또한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그럴 때에 부모들은 그 아이에게 따로 시간을 내주는 것이 좋습니 다. 만약에 자녀들 가운데 질투 때문에 늘 불안정하고 울기 잘하 고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 그 아 이에게 특별히 맛있는 것을 사 주거나 그 아이와만 시간을 몇 번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너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아이는 불안감과 열등감과 초조 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꾸만 비교하고 계속 경쟁을 시키고 또 편애하면 정신적으로 또 영적으로도 그 아이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할 능력이 없어집니다.

질투는 열등감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다른 사람이 내가 이루지 못하고 원하던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 입니다.

 넷째/비판이나 비웃음을 살 때 자기의 단점이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비웃음을 살 때, 비판 을 많이 받고 심한 벌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많은 실망을 주었다 고 생각할 때, 거기에서도 질투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잘 키우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가끔 아이들이 실망을 시킵니다. 도둑질과 같이 상상도 못 했던 일을 아이들이 할 때 실망합니다. 그랬을 때 그 아이에게 나는 너한테 정말 실망했 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내가 교회에서 너를 위해 얼 마나 기도하고 너를 신앙적으로 키우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글 쎄 네가 어떻하다가 남의 것을 훔쳤냐? 너무너무 실망했다라고 하면서 그 실망감을 표현합니다. 자기 실수에 대해서 부모가 실망 했다는 사실을 느낄 때 그 아이는 나는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 줬고 우리 아버지를 실망시킨 자식이다라고 생각하면서 , 부모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은 다른 형제들을 보고 질투를 느낍 니다.

 다섯째/영적으로 자기 자신을 계발하지 못했을 때 우리 모든 인간의 가슴 속에는 죄된 성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 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어느 한 사람도 죄성(罪性)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 리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 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로 영접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그 선한 성품을 우리 가슴에 넣어 주십니다. 그 성품을 받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랑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죄의 성품 , 인간적인 성품, 세속적인 성품만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이 없으 면, 얼마든지 질투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질투 뿐만 아니라 성 급함, 교만과 같은 많은 악한 성품들도 드러납니다. 영적인 계발 이 되어 있을 때, 곧 우리의 성품과 생각을 날마다 예수 그리스 도가 통제하게 하고, 성령께서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내 감정을 순간순간 통제하게 하는 훈련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질투를 제 거할 수 있고 사랑으로 질투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이 세상을 사랑할 때 이 세상을 사랑해도 질투가 생깁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 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 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좋은 집이나 좋은 옷, 지위나 명예 같은 것들을 삶에서 중심된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런 것들이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을 사 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성화(聖化)되어 인내와 겸손과 온유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 씀을 통하여 인식할 때, 우리들은 질투하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남들이 잘될 때 그것을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질투에 대한 해결책 질투를 극복하는 데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로, 자기 자신에 대해 건전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나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나 나보다 좋은 환경에 태어난 사 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다음 말에 귀기울여 보십시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 5:10).

건전한 자아상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겸손하려고 지나치게 자기를 비하시키기도 합니다.

목사님, 저는 절대 그런 일은 못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형편없 고 연약해서 못합니다. 벌레 같은 내가 어떻게 그런 걸 다….

 지나친 겸손은 옳지 못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 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나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 고, 하나님이 주신 용모와 목소리와 지능과 재능을 그저 그대로 수용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절대자 하나 님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지 아니하고 바로 지금의 나 로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아이들에게도 이 렇게 기도를 시키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저처럼 만들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사울은 질투가 많았습니다. 다윗을 질투하여 일곱 번이나 죽이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사울은 정신병에 걸렸고 마침내 자살이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질투였 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을 질투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은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 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라고 고 백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의 동료나 친구, 형이나 동생 에게 질투를 느낍니까? 당신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으로 만 들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럴 때 질투가 없어지고 오히 려 사랑이 나타납니다.

 둘째로, 자기 자신의 제한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여러 가지 능력이 있는 동시에 또한 한계들도 있 습니다. 저도 공부하면서 A학점을 받아 보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 다. 어떤 때는 이번에는 전부 다 A를 받겠다며 이를 악물고 밤새워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잘되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럽게도 꼭 B가 하나씩 섞여서 나오는 때가 많았습니다. 국 민학교부터 대학까지 늘 A만 받던 사람이 의과 대학에 들어갔는데 , B학점을 하나 받자 자살한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조사한 것에 따르면, 전부 A학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의과 대학을 다니다 집어치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 목 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너무 높이 세워 계속 실패하는 경 험을 하다 보면 성격이 비뚤어지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 립니다.

 목표를 세울 때는 성취할 수 있는 만큼의 목표를 세워서 일단 성 취한 다음에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목표를 세우도록 하십시오.

그런 식으로 한 발짝씩 차근차근 나아가야지 처음부터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워서 계속 실패만 하다 보면 마음에 병이 들어서, 나보 다 잘하고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낍니다.

우리의 제한성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맡은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가만히 생각하면 이 모든 일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무 엇 하나 제대로 못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학교도, 선교원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래 가지고 어떻게 되겠냐 싶 어서 크게 낙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다 한계가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그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충성을 다한다면 이 다음에 우리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너에게 준 능력과 시간과 건강을 가지고 네가 최선을 다했구나 하는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너무 높은 목표를 세워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쓰라린 경험이 없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질투에서 벗어나 마음 의 평안과 사랑을 체험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장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잘 한다고 해서 또다른 어느 하나도 반드시 잘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 습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입니다. 장점이 한 가지 라도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자신을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주신 그 장점에 초점을 맞추기 바랍니 다. 난 그래도 이것 하나는 잘하지 않는가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질투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평안이 찾아듭니다.

건전한 자아상이 확립되면 대인관계 또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습 니다.

 넷째로, 영적인 면에서 계발을 해야 합니다.

영적(靈的)인 것을 육적(肉的)인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 겸손한 것, 온유하고 인내하는 것과 같은 영적인 자질을 이 세상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계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세상 것 때문에 질투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다섯째로,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주께서도 그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 12:15).

1979년 미국의 루 브락이라는 야구 선수는 다음 날 자신의 도 루 신기록을 깨게 될 리키 핸더슨 선수를 공개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칭찬했던 사실로 유명합니다.

나는 그간 리키 핸더슨이 도루하는 것을 잘 지켜보았다. 이제 드디어 그는 내일 시합에서 내 기록을 깨게 될 것이다. 나는 절 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 광경을 볼 것이다. 나는 19년이 나 걸려서 기록을 세웠지만, 리키 핸더슨이라는 사람은 12년 만 에, 즉 나보다 7년이나 먼저 나의 기록을 깼으니 이 사람이야말 로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가!

당신의 가슴에 아직도 질투의 씨가 남아 있습니까? 친구 때문에, 동창생 때문에, 언니 때문에, 동생 때문에, 직장 동료 때문에 질투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투하지 않으려고 해서 질투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속이 하나님의 사 랑으로 가득 채워지면 질투는 저절로 없어집니다. 질투는 마치 어 두움과 같습니다. 어두움을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불을 켜면 됩니다. 즉, 사랑의 불을 켜면 질투라는 어두움은 사라집니다.

초조와 불안과 열등감과 경쟁 의식과 비교 의식 속에 헤매게 만 들던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당신의 가슴 속에, 풍족히 심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함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불안과 질투와 시기와 곤혹을 당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높은 지위와 권력과 큰 재산과 명예보다도 사랑을 더하여 주옵소 서. 그리하여 사랑으로 세상을 밝힐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들의 가정에 평화와 행복이 있게 하시고 직장 동 료간에 사랑의 풍성함이 배나 더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 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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