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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결혼관1 (창 0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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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은총입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결혼생활에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자녀의 효도를 받아본들 거기에 얼마 만큼의 기쁨이 있겠으며, 결혼생활을 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부모님께 효도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고 긴요한 것이 부부생활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보셨다고 했습니다.

한문의 좋을 호(好)는 여자와 남자를 붙여놓은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사는 것, 남편과 아내가 서로 있어서 사랑하고 사는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한자의 평안할 안(安)자는 갓머리밑에다 계집 여(女)한 것입니다. 집안에 여자가 없으면 편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있다는 것보다 좋은 복이 없습니다. 반대로, 남자끼리만 모여 있거나 여자끼리만 모여 있는 것은 좋은 것이 못됩니다.

결혼생활은 샘물이 솟아나는 샘과 같은 것입니다. 평생동안 그 우물속에서 물을 길러 먹고 사는 것입니다. 결혼생활 한지가 몇십년이 되었는지 남편들은 아내라는 우물속에서 늘 새로운 물을 마시며, 아내들은 남편이라는 우물속에서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며 삽니다. 그래서 인생의 갈증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물질과 지위와 명예를 다 갖추었다고 해도 아내라는 샘물, 남편이라는 우물속에서 마시는 샘물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은 뭔가 부족한 것이고 인생의 갈증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결혼에 대한 명확한 말씀을 해주고 있는 곳이 창세기 2장과 마태복음 19:5이하의 말씀, 마가복음 10:7-9말씀 그리고 에베소서 5장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결혼에 대해 기록된 네 군데의 말씀 가운데 네 곳에 빠지지 않고 다 기록된 말씀이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이 결혼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째는 부모를 떠나는 것 둘째는 아내와 연합하는 것 셋째는 한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에 대한 원리입니다.

그 첫번째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결혼식을 할 때에 보면, 신랑이 먼저 주례자 앞에 걸어 나옵니다. 이것은 이제 부모를 떠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신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해서 신랑에게 손을 내밀어요. 이것은 공적으로, 법적으로 이제는 부모를 떠났다고 하는 선언입니다. 결혼식은 법적으로 부모를 떠났다고 하는 선언 합니다. 떠난다고 하는 것은 결혼생활의 행복을 위하여 치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지불금입니다. 탯줄이 끊어지지 않는 아기가 태어날수 없듯이,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에게 붙어있는 정신적인 탯줄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분명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 한 결혼생활이 발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특히 딸이 시집갈 때 부모들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시집가는 딸도 떠날 때 웁니다. 이별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탯줄을 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부모를 떠난다고 하는 의식이 희박한 것 같아요. 주례를 해보면 가관입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하고... 물론 결혼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만 자기를 길러준 부모님과 정신적으로 완전히 단절한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깔깔대고 웃습니다.

그리고 부모들도 딸을 시집보내면 완전히 끊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식이 없어서 딸을 시집보내 놓고도 계속해서 정신적인 탯줄을 붙여놓고 정신적인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옛날에는 딸 시집보내면 완전히 끝나는데 요사이에는 장모들이 더 설칩니다. 그래서 "훌륭한 아들 뒤에는 훌륭한 장모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결혼생활에 조그만 어려움이 있어도 딸은 보따리를 싸서 친정으로 가 버립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남편과 아내가 갈등속에서 극복과 조화를 이뤄나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여자는 결혼을 하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떠나는데 남자는 그렇지 못해요. 아들이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완전히 떠나 보내지 못해서 생긴 것이 고부지간의
갈등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일방적으로 희생을 당하고 강요를 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딸을 시집보냈습니까 정신적인 탯줄을 딱 끊어야 합니다.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거가에 참견을 해서 사랑하는 자녀의 결혼 생활에 파탄을 가져오는 어리석은 부모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아들을 장가 보냈습니까 남편없이 혼자서 키운 하나 아들이라도 결혼시키면 완전히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단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결혼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대부분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간섭을 하고 못살게 굴고 시누이들이 올캐에게 간섭합니다. 완전히 떠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자녀들이 결혼을 했거든 저들 두 사람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고 이겨나갈 수 있도록 배후에서 기도해주고 잘 살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지 정신적인 탯줄을 그대로 붙여놓으면 결혼생활이 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떠난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결혼은 과거와의 단절, 과거와의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결혼이 시작됩니다.

두번째는 [연합한다]는 말은 풀로 종이 두 장을 딱 붙인다는 말입니다. 종이 두 장을 풀로 붙여서 마르고 난 뒤에는 그 종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아이들이 있다면 그들도 역시 엄청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은 마치 톱을 가지고 한 사람을 반으로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마가복음 10:8-9 말씀에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둘이 한몸이 될찌어다. 이러 한즉 이제는 둘이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고 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아교로 붙여 놓은 존재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사이인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출장이나 어떤 일로 출타해서 오래 있다가 남편이 돌아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이들은 "아빠!"하고 쫓아 나가고 아내도 "여보"하고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러면 누구를 먼저 안아줍니까 한국의 남편들은 전부 아이들을 안아줍니다. 그리고 아내를 못본척합니다.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먼길에서 돌아오면 아이들 보다도 아내에게 먼저 사랑의 표시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가장 특별한 사이임을 알게 하고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 난 후, 탈선을 하고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이 언제인가 하면 아내가 아기를 낳고 키울 때입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히 아내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여자가 아기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 남편은 뒷전에 있고 온통 아기에게만 정성을 쏟기 때문에 남편은 언제나 이방인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과 아내의 사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랑은 특별한 사랑입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선택하고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선택하여 사랑하기로 결정을 내린 그러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더이상의 사랑을 추구하거나 더이상의 사랑을 찾지 않는 것이 남편과 아내의 사랑인 것입니다. 연합한 사랑은 충실하게 한 사람에게 남아 있기로 결정을 하고 이 한 사람과 전생애를 나누기로 결심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부부의 사랑을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 이상의 사랑도 없고 그 이하의 사랑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랑이 있어야 부모를 떠날 수가 있고 또 부모를 떠나야 이 사랑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육체적인 면, 결혼의 성적인 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의 법적인 문제, 개인의 사랑의 문제만큼 육체적인 결합이라는 것이 부부생활에 아주 중요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부부 관계, 성 관계, 육체 관계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래서 성적인 결합의 문제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며 그런 이야기하는 자체가 더럽고 추하고 음란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성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모도 딸과 아들에게 성 교육을 시키지 아니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숨어서 합니다. 그러다보니 모두 잘못된 성 인식을 가지고 결혼을 합니다. 자연히 결혼생활에서 성적인 부조화를 너무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의 육체적인 결합에 대해서 말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만약 교회에서 남편의 성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엉뚱한 곳에서 비정상적인 곳에서 배우게 되고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이라는 말은 입밖에 낼 수 없을만큼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입밖에 낼 수도 없을만큼 부끄럽고 부정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면 부부생활을 했는데 남편과 아내의 성 관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결혼생활을 시작해서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제서야 올바른 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한몸을 이룬다]고 한 말은 단순히 육체적인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재산, 소유, 사상, 감정 즐거움, 고뇌, 희망, 두려움, 성공, 실패, 죽음까지도 서로 나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것을 함께 서로 나눈다고 하는 것의
극치가 한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적인 결합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것 없이 단순한 육체적인 결합만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것은 성 생활의 신비를 놓쳐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은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이용당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전부 나눈다는 어떤 완전한 정신적인, 육체적인 하나가 되는 느낌이 바로 육체적인 결합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보면 결혼생활은 완전히 부모곁을 떠나는 것과 사랑과 애정으로 개인적으로 연합하는 것과 육체적으로 한 몸을 이룰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완전한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부부가 결혼생활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 자녀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결혼한 가정에 자녀를 얻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결혼생활에 보너스로 보태어주는 축복이예요.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고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결혼생활은 충분한 것입니다.

임신하지 못하는 것이 이혼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없는 가정을 가만히 보면, 주위에서 입방아를 자꾸 찧어서 그 결혼생활에 금이 가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부모를 떠나고 사랑으로 아내와 남편과 연합하고 신비한 육체적인 결합, 아담이 그 아내를 향하여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라고 했던 것처럼 뼈를 나누고 살을 나누는 존재라는 고백이 있는 가정에 결혼생활이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마지막에 [그러므로 아담과 그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서로가 벌거벗은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준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결혼생활의 신비입니다. 아내의 성격이나 모습 그대로, 남편의 모습 그대로를 서로 기꺼이 받아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현재의 결혼생활을 생각해 보면서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어 서로의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를 진실로 받아주고 사랑하는 그러한 생활속에 인생의 행복이 있고, 하나님이 그러한 부부의 삶을 보시고 기버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결혼생활 하다가 남편이나 아내중 한 사람이 먼저 죽게 될텐데, 그때 먼저 떠나간 남편이 남겨준 사랑, 아내가 남겨준 사랑 가지고 남편 없이도 아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부부의 비밀을 가지고 복되게 살아가는 우리의 가정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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