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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어디로부터 (요일 04: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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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대해 세미나를 끝내고 나오는데 한 청년이 개인적으로 질문을 하고 싶다고 찾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사랑하고 싶지만 그 감정이 생기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내 생활이 바뀔 수 있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는 사랑을 자기가 하려고 애쓰는 군요. 그리고 자신이 사랑했다가 감정적으로 손해 볼까봐 두려워 하는군요. 그래서 자신이 사랑할 때 그 사랑을 기쁨으로 받아 줄 특별한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형제의 감정에 모두에게 대한 사랑의 감정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나 사랑한다는 것은, 특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 아닙니까 그 구분을 할 수 없는 것이 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 자체가 특별한 것이라는 것을 형제가 알았을 때 마음의 짐을 벗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돌아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사랑의 가치관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보편적인 대상과 특별한 한 사람, 혹은 소수의 몇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질적인 면에서 달라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랑을 구분하고 살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나누려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 사랑할 수 있도록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해 보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사랑에 대해 갈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에 가치관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랑의 시작(요일4:19)
여러분들에게 내가 여러분은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이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평생 진정한 사랑을 한 번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을 열망할 능력은 있어도 사랑할 능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이후로 죄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 하셨음이라” 사랑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비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의 기회를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사랑을 열망하나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사랑할 능력을 주셨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랑을 살아가는 동안 증언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을 받았는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강도가 우리의 모든 가치관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죄된 모습을 더욱 확실하게 보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누군가를 사랑할 만한 능력이 전혀 나에게는 없다는 절망을 보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원하나 사랑할 인격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욕심에 지배받고 있는 정욕에 매인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방식의 사랑은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아픔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갈2:20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는 것은 내 안에 사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자의 증거(요일4:20-21)
성경은 우리의 연약함에 호소를 냉정하게 거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은 모두를 사랑할 수 없다고 스스로를 변호합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고 확신있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성경은 우리보다 훨씬 더 논리적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형제는 사랑하기 어렵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모순을 오히려 거부감 없이 받아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 드러난 삶의 모습을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현실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라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그리고 그 사랑을 고백할 지식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의 부족함을 변호할 만큼으로 당당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가슴 쪼개지는 회개와 안타까움이 우리의 양심을 정화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서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은 사랑으로 포장된 또 하나의 이기적인 욕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랑의 방법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적용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도, 남편을 향한 사랑도, 자녀에 대한 사랑도, 그리고 우리들의 형제와 자매에 대한 사랑도 똑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사도의 결론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는 이 강력한 사랑의 멧세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주는 말씀일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사도 요한의 신앙이며 가르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사랑의 짐속에 헐떡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듯이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또 다른 이들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겸손한 통로가 되었을 때 여러분은 누려지는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주님을 보여주는 신앙의 통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내가 죽는 그 순간의 경험이 바로 주님이 일하시는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내 경험을 갖고 싶은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경험시키는 그 순간이 신앙의 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자신을 다시한번 포기하는 겸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형제 자매의 교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음성을 듣고자 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를 들을 수 있는 형제 자매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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