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랑의 관심 (고전 01:4-9)

첨부 1


에릭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에 관하여' (The Art of Loving)에서 사 랑을 관심이라 하였다. 우리는 이웃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질 때,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 해 보자.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한가지씩 궁극적 사랑의 관심을 갖고 산다. 돈, 지식, 명예, 권세, 향락, 애정 등... 어떤 사람에게는 친구, 부모, 조 국 등 여러가지 관심으로 나타낸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공산주의 사 회 실현을 궁극적 관심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궁극적 관심 (Ultimat Concern)이란 하나님이요 종교라고 폴 틸리히는 말하였 다.

 우리들의 생의 궁극적 대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임에 분명하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것과 같이 우리를 끝까지 견고케 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궁극적 관심은 본래 고기와 배, 그리고 그물이였으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가생 의 최고 관심사였다. 사람낚는 어부로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세번씩 부인한 후 다시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하 게 되었다. 하루종일 고기를 잡았으나 한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에 주님이 다시 찾아 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 다. 세번씩이나 육박해 오시는 주님의 도전 앞에 그는 사랑을 고백하 였다. 다시금 그의 궁극적 사랑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 예 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고난받고, 마침내 주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 려 죽은 아가페의 사람이 되었다.

 사랑의 고백을 하자 주님으니 이렇게 권고하셨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것이다. 양을 항상 사랑의 관심을 쏟으라는 말씀이 다. 요나는 니느훼 도성이 40일 후면 망할 것이라고 외치며 다녔다.

그러나 40일이 지나도 망하지 않고, 자기의 예언이 응하지 않은 것 때 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박넝쿨을 자 라게 하셔서 요나가 햇볕으로 인하여 피곤하게 된 움악에 큰 그늘을 이루게 하였다. 요나는 그 박넝쿨로 인하여 굉장히 기쁘고 즐거워 하 였다. 그러나 이튿날 하나님께서 그 박넝쿨을 시들어 죽게 하였다. 요 나는 그 박넝쿨이 죽은 것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와 하여 슬퍼하였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나야, 너는 이 박넝쿨 하나를 아 꼈거든, 지금 이 니느웨 도성에는 좌우를 분간치 못하는 자가 13만명 이니라." 고 하셨다. 박넝쿨에 대한 관심보다 니느웨 성민 13만명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의 호소를 하나님은 들어 주시고 살리신 것이 다. 우리들에게 좋은 경고의 말씀이다. 우리는 작은 것에 관해서는 관

심 가지면서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 가질 때가 많다.

돈과 물질에 대해서는 관심가지면서, 이웃과 교우들에게 대해서는 무 관심할 때가 많다.

 우리는 궁극적 관심, 궁극적 사랑을 예수께 두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관심갖는 만큼, 보이는 형제와 이웃에 대해 깊은 사랑의 관심을 갖고 볼 수 있어야 겟다. 내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고 아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을 돈과 이세상 것에 둘때, 세상을 사랑하고 돈에 관심 을 갖다가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하고야 말 것이다.다시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보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