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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적 (고후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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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표적은 무엇인가 하는 일마다 잘된느 것인가 불치의 병이 낫고, 감옥에 갈 사람이 안가고, 부도가 별안간 메꾸어지는 것인가무엇인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소원하는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인가 사실 이런 일들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임재로서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고 믿게 된다. 과연 이것이 신앙의 표적인가

사도는 자기의 표적을 말한다. 모든 참음과 기사와 능력이라는 것이 다. 분명히 신앙인은 이적과 기사를 만든다.그러나 그것들 앞에 나오 는 것은 모든 참음이다. 이 참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적과 기 사가 나타나려면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을 베푸는 사도의 성품이 여러 면에서 참음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억지 참음이 아니어야 한다.

 자 여기서 신자의 참된 표적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신자의 참된 표 적은 사도만큼은 못되어도 그에 준하는 모든 참음과 기적이다. 신자에 게는 많건 적건 이러한 모습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만약 신자 에게 참을성이 없다면 그 인격을 보고 누가 신자라고 할 것이가만약 신자의 삶에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힘이 함께 있음을 무 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어떤 청년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그래서 그는 바르게 살기로 결심 했다.그는 과수원을 개발해 보려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투자하였다.

그는 과거의 악한 삶을 버리고 열심히 예배하며 시자로서의 삶을 살 아나갔다. 이제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앞길이 훤하게 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나타나서 빚을 다 갚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봄날 된 서리가 내렸다. 일대의 모든 복숭아꽃이 다 떨어져 버 렸다.그의 복숭아 나무는 어떠했을까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만을 구 원했던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심은 복숭아 나무의 꽃들도 다른 과수 원처럼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실망했다. 주일이 되었지만 교회에 가지 않았다. 다음 주일에도 그 다음에도 그는 가지 않았다. 이렇게 되기가 여러 날이 지났다.

 염려가 된 목사는 그를 방문했다. 청년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서리 맞혀 복숭아 농사를 망쳐버리게 하는 하나님을 내가 왜 예배해야 합 니까 하나님이 정말 있기나 한 겁니까" 목사는 대답했다. "하나님은 복숭아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십니다. 복숭아 꽃은 서리 맞으면 떨어지 지만 위대한 사람은 반드시 서리를 맞으면서 됩니다. 그분은 복숭아가 아니라 당신을 키우시는 것입니다."

청년은 깨달았다."그렇다! 아무리 서리를 맞아도 꽃이 떨어지지 않는 다면 될 것이다." 그 꽃은 마음에 피어있었고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 다. 그후에 그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 일을 생각했다. "복숭아 꽃은 떨어져도 내 마음의 꽃은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마음의 꽃으로 복숭아를 열게할 것이다." 그는 미국 전체에 체인을 가진 과수 원계의 거물로 성장한다.

 여기서 기적은 이 사람이다. 그저 평범한 한 청년, 그 사람이 바로 기적이었다. 복숭아 꽃이 떨어져도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끄덕하지 않고 계속 성장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게 작은 자 본과 시간을 가지고 이처럼 빠르게 대 기업을 만든다. 이 삶은 바로 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이처럼 빠르게 대 기업을 만든다. 이 삶 은 바로 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그러한 사람으로부터 그러한 일 이 나타난다. 그것이 기적이다.

 신자들 가운데서 복권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목사는 교회를 짓기 위해서 기도하고 계속해서 복권을 샀다고 한다.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교회를 지어주시겠는가 물론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도 일하실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지어주시는대 관심이 있는게 아니다.그 교회에 들어갈 사람들을 만드 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적과 마술의 의미를 정의해 보자. 누구나 신앙이 있으면 기 적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나 자신은 그냥 그대로 있는데 신앙이 풍선 의 바람처럼 들어오면 산이 움직이고 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는가 이것은 마술의 개념이다. 자신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단지 문제만 해 결되고 하나님은 실력을 발휘하고 영광 받으시면 된다.그러면 얼마든 지 헌금을 바치고 감사할 것이다.

 이것이 무당의 종교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무당의 종교에는 도덕의 개념이 전혀 없다. 단지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가가 가장 중요한 일이 다. 신을 향해서 드리는 모든 물건들이 모조품이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일 뿐이다. 무당을 오래 섬기면 선하게 산다든지, 인격이 훌륭해진 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는가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믿음과 인격의 변화가 없이 그저 일회적으로 나타나는 기적은 마술같 은 것이다. 그것이 병나음일수도 있고 문제의 기저적인 해결이수도 있 다. 나는 불치의 병이 나은 뒤에 문제가 해결을 본 뒤에 다시 세상으 로 돌아간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다. 기적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의 죄 악을 고백하라.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해서 자신이 바뀔 것을 요구하 라. 이것이 참된 기적이다.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자기 문제 해결만을 요구하는 이가 주위 에 얼마든지 있다. 기적을 강조하고 능력을 강조하는 이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죄악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거의 무감각이된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정성을 드려서 신을 마음껏 움직여 나오 는 모든 결과가 마술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다면 아무리 교회에 나와 도 인격은 절대로 변화가 없다.

 기적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통해서 일어난다. 그러나 기적은 그에 합 당한 믿음이 따라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그의 말 씀에 복음에 그의 사고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하 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적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기적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져 간다면 그의 삶은 일회적 기적이 아니라 전체 가 기적으로 화하고 말 것이다.

 어떤 분의 간증을 들었다."하나님은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신'(라틴 어:deus ex machina)처럼 내 사업을 일으키지 않으셨다. 먼저 나를 변 화시켜 죄에서 나오게 하셨다. 그리고 나를 이 방법 저 방법으로 훈련 시켜서 키우고는 거기에 합당한 일을 주셨다. 믿음도 자라고 경험도 자라면서 내 삶은 더욱 더 신비한 경험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성경의 기적과 기사가 있는곳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가 있었다.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을 자기 속에 모신 사람들에게 일어났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무엇인가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적과 기사지만 이 미 그는 이적과 기사를 만드는 사람으로 변하고 성장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믿음과 인격의 사람이 움직이는 곳에는 이적과 기사가 당연한 것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는 기적이란 단어가 몇 없다. 기적이란 단어 대 신 표적, 기사 등으로 표현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에게 무슨 기적이 있겠는가 그래서 단지 기이한 일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기막힌 작품을 만들어내고 위대한 장군이 어떠한 전투에서도 이기는 것처럼 신자도 영적인 싸움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적과 기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기적 그 자체였다.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 을 만드셨다. 그렇게 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들은 하나 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막힌 조화 속에 모든 개체 는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보기에 좋았다고 하셨 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 무엇인가바로 인간이었다. 보기 에 심히 좋다고 하였으니.

 그렇다고 이제 세상에 다니는 인간을 향해서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그들은 모두다 걸작품의 자리에서 타락한 존재들일 뿐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존재는 더 이상 아니다. 그냥 좋 은 존재도 아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고약한 존재로 바뀌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고통과 슬픔이 그치지 않고 기 저처럼 저주가 임하는 것이다.

 이제 무엇이 하나님의 놀라운 걸작품이 되겠는가 바로 우리들이다.

원수된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눈보 다 더 희고 태양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셨다. 썩어질 육 체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사신다. 이 아니 걸작품인가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아직 없을 뿐이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보기에 심히 심히 좋다고 하시지 않는가!

자 이제 확실하게 밝히자 기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렇게 세상 사 람들 가운데 불리워져 새롭게 창조된 존재가 아닌가! 이제 그리스도가 스스로 본을 보이시면서 하나님에게까지 성장하도록 인도하고 계시지 않는가! 어떤 역경에도 하나님처럼 일어나는 그 사람이 바로 기적 아 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길 하나님의 표적은 바로 자신임을 알아야 한 다. 내가 바로 기적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알고 인정하는 그 분 량만큼 삶도 그 수준을 달리하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에게 천지가 복종하고 그 자리를 양보하듯, 이렇게 자신이 기적임을 확인하는 사람 들, 그래서 계속적으로 기적의 성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세상은 그 자리를 내줄 수 없는 것이다. 밖에 피는게 아니라 믿음의 마음에 피는 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질 대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 신임을 알아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 내 욕망에 문제, 모두다 그 수 준에 맞도록 움직여 나간다. 그 사람의 크기에 따라서 환경도 변해 나 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감옥에서 밖을 본다. 한 사람은 별을, 한 사람은 진흙을, 별을 보는 사람은 별이 경험되고 진흙을 보는 사람은 진흙을 경험하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불신자와 그리스도가 한다고 생각해 보라. 함께 잡아서 고통을 주고 모욕을 준다고 치자. 두 사람의 경험이 같을 것인가아니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드는 사건의 결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불신자는 자기의 죄악에 따라서 사건에 휘말릴 것이고 그리스 도는 필요하면 기적을 나타낼 것이다.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기적의 삶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당하면 반응하라.그래서 이적과 기사의 사람처럼 믿음으로 대처하라. 그러면 거기 맞는 경험이 나올 것이다. 모든 참 음,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분과 자신의 능력을 알 기에 절로 나오는 표적이다. 그에게 이적과 기사는 저절로 따라온다.

그러기에 언제나 확인할 것이 자신의 믿음이다. 그리스도가 안에 있고 그 마음을 가졌는가 확인하라.

 40대에 눈병이 난 사람이 있었다. 의사를 찾아 갔지만 그들은 모두다 그를 뉴욕의 가장 훌륭하다는 안과 전문의에게로 보냈다. 많은 검사와 치료 끝에 그는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력의 약 화를 막을 길은 전혀없는 것 같이 보였다. 호텔로 돌아온 그는 절망에 빠져서 창문 밖을 내다 보았다. 30층에서 몸을 날리면 단 몇 초면 모 든 고민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무엇인가 자기 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미 여러 해동안 자기 안에 저장해 놓은 그 무엇이었다. 고민 거리와 맞싸울 수 있는 그 힘이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받쳐 주었던 그 힘을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비록 다시는 전처럼 시력을 되찾지 못한다해도 그는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생겨 났다. 그는 행복하였다.

 이 힘이 그의 시력을 살려낼 수 있었다. 이 힘이 그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밀어올릴 수 있다. 이 힘이 신자의 전유물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공급하는 것이 바로 이 힘이 아닌가! 만약 이 힘을 무시한다 면 우리의 삶은 세상 사람들보다도 못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기적은 바로 이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그리고 이 힘에서 보면 기적이 아 니라 그저 기이한 일일뿐이다.

 우리가 짧은 기도를 할 때 이 힘이 섬광처럼 일어난다. 사람들을 만 날 때 이 힘을 보내 보자. 거리에서, 식당에서,버스에서, 직장 손님 중에 근심이 있어 보이거나 피로하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에게 기도를 보내는 것이다. 때때로 그런 사람들이 얼굴에 환한 빛을 띄우고 이쪽 으로 놀란 시선을 보내는 것을 경험해 보는가! 그렇게까지 안되고 기 도가 닿은 표시는 나타나지 않던가!

믿음으로 사는 삶은 전체가 기이한 일 투성이다.믿음의 세계는 보통 세상과 함께 있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신자에게 준다. 세상 사람들이 알면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기적이라고 보기도 하고 당연한 것으로 버기도 한다.그러나 신자들은 그저 자기의 일상 세상을 차츰 하늘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뿐이다.그렇게 몇 해를 살다보면 믿음의 세계는 자 연스러운 것이 된다.

 무엇이 사도의 표던가 오래참음과 이적과 기사이다. 무엇이 신자의 표적인가마술이 아니라 기적이다. 그 사람 자체가 바로 기적인 것이 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대단한 것이다. 신자는 모든 참음으로 대 표되는 그리스도의 마음과 힘을 가졌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다. 그리 고 그 기적은 계속적으로 자라고 외적인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 적과 기사는 그 외적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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