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 탄 자 (슥 01:7-17)

첨부 1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스가랴서를 가리켜 ‘예언서들의 정수(精髓)’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스가랴서의 예언 속에는 구약 여러 선지자들의 예언이 모두 집성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이란 뜻으로, 그는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입니다(슥1:1. 7). 그는 제사장 가문의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소명되어 사명을 받았습니다(느12:1-4, 슥2:4). 그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인도로 바벨론 포로지에서 귀환할 때 함께 고국으로 돌아 온 사람입니다(느12:4, 10-16 ; B. C 538). 그는 학개 선지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으나(스5:1, 6:14). 그는 학개 선지자보다 오랫동안 장기 사역을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슥1:1, 7:1, 학1:1, 느12:1-6).
B. C 538년에 페르시아의 군주 고레스 왕의 해방령을 받고 돌아온 유대인들은 B. C 536년 2월에 예루살렘 성전의 기초를 놓았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를 받아 거의 15년간이나 성전 공사가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B. C 521년, 다리오가 페르사아 왕위에 오르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다시 중단된 성전 공사 재건을 독촉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이 성전 재건 역사를 직접 지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가랴 1장 7절로 6장 8절은 스가랴가 받은 8대 환상(계시)입니다. 이 8대 환상의 주제는 ‘새로운 희망과 용기’ 즉 이스라엘을 향한 비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 공사의 중단과 함께 저들은 실의와 실망에 빠져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용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을 때였습니다.
이런 때야말로 ‘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곤과 실의의 밤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스가랴를 통하여 그 실의와 낙담의 밤을 깨우는 8대 환상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 8대 환상은 다리오왕 2년 11월, 곧 스밧월 24일 밤에 받았다고 하므로 이 환상의 역사성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슥1:7).
바로 그날은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한지 꼭 5개월째 되던 날입니다(학1:15). 그 밤에 스가랴는 첫 번째 환상에서 화석류나무 사이에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자들 서신 예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1장 8절에 내가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내가 보니......라는 말은 ‘내가 계시를 받았다’는 뜻이 됩니다(행10:10, 11:5, 사30:10).

Ⅰ.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의 정체(1:8-10)

1. 그가 누구일까
1장 8절에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1장 9절에 주라고 하였습니다. 1장 11절에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1장 12절에도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렇게 표현된 여호와의 사자는 하갈에게 나타났습니다(창16:7, 9, 10, 11). 아브람에게도 나타났습니다(창22:11, 12, 15). 모세에게도 나타났습니다(출3:4, 14). 야곱에게도 나타났습니다(창28:12, 31:11, 13, 48:16). 저 사사 시대의 농부 마노아에게 나타났던 기묘자였습니다(삿13:15-20). 바로 삼위(三位) 중에 인성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화육강세하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 홍마를 타고 나타나신 예수였습니다.
1장 8절에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붉은 빛을 띠고 있는 말인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원수들을 심판하실 주님으로 나타났음을 보여 줍니다. 오렐리(Orelli)는 ‘말탄 지휘자는 동시에 말씀의 지도자이시다’고 하므로, 악인에게 심판을, 택자에게 구원의 복음을 갖고 계시는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3.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계신 예수였습니다.
1장 8절이 또 말하기를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라고 하였습니다. 10절에도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화석류나무’는 ‘이스라엘 선민’을 상징하였습니다. ‘골짜기 속’이라 함은 그 나무가 자라는 산골짜기를 뜻함인데 ‘어두운 그늘’ 혹은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것’ 이란 뜻을 가졌다고 볼 때 고난 당하는 이스라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골짜기의 백합화’와 비슷한 말입니다.
‘서서’ 있다 함은 어떤 중요한 기지를 점령하고 파수하고 있는 깨어 있는 병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살아 계신 주님이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하는 예루살렘 현장에 직접 저들을 보호하고, 위로하고, 감독하고, 격려하고 계시는 자기 임재를 보여주는 계시 표현입니다.

4. 홍마(紅馬)와 자마(紫馬)와 백마(白馬) 탄 다른 천사를 거느리는 예수였습니다(1:8-10).
주님은 홍마 탄 다른 천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쟁과 복수와 심판과 진노를 주관하는 영물입니다. 자마(紫馬) 탄 천사는 적색과 백색의 혼합의 빛깔로서 심판과 구원을 주관하는 영물입니다. ‘백마’ 탄 천사란 기쁨과 승리를 주관하는 영물을 가리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구원과 이스라엘 성전 공사 재건의 성공을 위하여 이렇게 필요한 영물들을 거느리고 신속한 행동을 취할 만전 태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5. 온 세계를 두루 감찰하시는 예수였습니다(1:9-10)
스가랴 선지자는 홍마를 타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예수에게 이 세 말탄 천사들이 누구며 무엇 하는 자들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답하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라(1:10) 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자신이 화석류 나무 사이에 자리(기지)를 잡고 전 세계(온 땅 1:1)를 감찰하고 계시는 우주적 주권자요 통치자임을 보여 줍니다.

Ⅱ.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선 예수의 중보기도(1:11-12)

1. 수종 천사들의 보고(1:11)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 말 탄 천사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받고, 온 땅(전 우주, 1:11)을 두루 살펴 본 결과는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15절에는 ‘안일한 열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당시 세계 제국인 페르시아를 위시한 그의 모든 맹주국들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예수의 중보기도를 봅니다.
1장 1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중보기도는 분명합니다.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징치기간 70년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야 될 때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인 온 땅(열국)은 태평성대를 누리는데, 유독히도 예루살렘만이, 성전 재건이 이루어지지 않고 성곽도 무너진 채로 있어서 이방 원수들의 협공을 받고 있는 처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야 되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Ⅲ.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예수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은 축복의 복음(1:13-17)
이 때 하나님은 그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던 중보자 예수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 곧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첫째, 위로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크게 사랑하고 있다’는 응답이었습니다.
1장 13절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질투(χιρ 카나)는 단순한 ‘시기’라는 뜻보다 ‘열심을 내다’ ‘열정을 발휘하다’는 뜻으로 곧 뜨겁게, 크게,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신다는 말은 바로 그 백성을 크게 사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질투는 사랑의 변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둘째, 위로의 복음은 이스라엘의 대적(열국)을 향하여 심히 진노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1장 15절에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의 진노가 ‘조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70년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큰 진노(계6:10-17)는 악인의 영원한 형벌이 아닌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조금만 노해서 약간만 때렸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의 대적은 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위로의 복음은 애정의 복구였습니다.
1장 16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사랑 관계가 회복된 애정의 복구가 아닌가 하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왔으니 이제 살길이 생기지 않았는가

넷째, 위로의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1장 16절에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성취를 알려 주는 복음이 아닌가 이는 종교적 복구이기도 합니다.
다섯째, 위로의 복음은 예루살렘 성곽의 재건이었습니다.
1장 16절 중에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먹줄은 건축에 사용되는 척량줄을 가리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의 복구를 뜻함입니다. 이는 정치적 복구이기도 합니다.

여섯째, 위로의 복음은 번영의 축복입니다.
1장 17절에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가정과 자녀와 물질 축복의 복구를 나타내는 예언입니다. 이는 경제적 복구이기도 합니다.

일곱째, 위로의 복음은 예루살렘의 복구입니다.
1장 17절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배의 복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경 표현은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지기 선택이 저들의 죄로 인하여 취소되었다가 다시 복구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본래 뜻하신 계획과 목적대로 시온 곧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경배와 찬양의 중심지로 복구된다는 말입니다. 세계 가운데 하나님 섬기는 경배와 찬양의 중심지로 복구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17절 중에 다시라고 하는 말이 네번이나 반복된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시고, 그 가운데 서 계신 분은 바로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현현(christphany)입니다.
화석류는 아름다운 관목입니다. 비록 골짜기 속에 자리잡은 나무일지라도 그 잎사귀들은 윤기 넘치고, 그 향기로운 꽃송이들은 희고, 별처럼 생겼습니다. 특별히 이 나무의 파란 잎사귀들이 상처를 입을 땐 물씬 향기를 토합니다. 바로 골짜기 산 속 화석류나무는 열강 세력들 가운데 자리잡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바로 오늘 세상 속에 자리잡은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교회를 보여 줍니다. 중대한 진리는 그 화석류 사이에 우리 주 예수께서 홍마를 타시고 서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악인을 심판하고, 선민을 보호하고, 구원하고, 축복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의 현장에 자기 기지를 삼고 서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의 부리는 영으로 세계의 정황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도록 중보기도를 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 보좌 앞에 살아 계셔서(롬8:34),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히7:25).
그리고 그의 중보기도로 말미암아 새 역사를 창조하는 이스라엘은 7대 축복, 승리의 복음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 자기 애정의 복구,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 성취, 예루살렘 성곽의 복구, 이스라엘 백성의 번영, 그리고 신령한 예배의 복구를 약속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온의 영광은 빛나는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향한 전 우주적 경배의 성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오늘 교회 중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쏟아 주시는 축복의 약속이 아닌가 교회 중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 그 분 때문에 지상의 교회는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복의 승리 말입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