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드러운 마음 (겔 11:14-21)

첨부 1


모든 소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모든 사람이 권리와 선을 사랑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서로에 대해서 의와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새로운 번영에 대한 약속이 새로운 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약속은 중요하고 기초적인 것입니다. 백성은 올바른 백성이 되어야 하고 올바른 마음과 새로운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번영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한 백성이 국가적인 번영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 국가의 성품이 기대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서야 합니다. “의가 국가를 존귀하게 합니다.”그 민족의 건전한 의를 약화시키고 신앙을 경시하고 모범이 될 존경과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사람들은 국가의 번영을 침식시키는 일에 협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감정을 향한 종교의 호소 지성과 감정은 상호반목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지성은 감정, 즉 마음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과 활력의 최고의 상태내에 이 두 가지가 모두 있게 해야 합니다. 지성과 감정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하나를 희생시키고 다른 하나를 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치우친다면 마음 즉 감정이 지배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에는 이성은 양심과 마음에 이르는 길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올바른 지식은 그 자체를 위해서도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지식만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마귀가 될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성은 마귀의 한 특징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왜 감정은 이같이 중요합니까 (1) 인간은 감정의 지배를 받기 재문입니다. 인간은 백에 아흔 아홉은 인간 자신의 감정에 의해 그의 기분에 의해 그리고 그의 기호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인간 나름대로 자기가 이성에 의해 산다고 우쭐대지만 감정은 이성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던 것도 이러한 감정에서였습니다. 감정이 인간생활에 가장 적극적인 힘으로 인식됩니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감정들로 하여금 의의 도움을 구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진리를 보내 올바른 감정을 갖게 하십니다. 신 6:5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요 21:16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 감정은 신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성은 매우 미약합니다.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잘 구비되고 잘 훈련된 지성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강한 감정을 소유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하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모든 계층 사람들이 거의 동일한 말로 규정할 수 있는 그러한 일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감정이 성패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최고의 시험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에게 특별한 주장을 하는 모든 선행이 가장 행복한 상태로 그의 삶 가운데 구체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마음을 가짐으로써 감정을 깨우치고 자극하여 그 감정에 지시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수고를 인식합니다. 복음의 원리, 기독교의 논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한 마음의 약속이 유배당한 자들에게 어떻게 이행되는가를 에스라서와 느혜미야서를 통해서 살펴봅니다. 그러한 문제들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 부드러운 마음 권고와 약속이 여기서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먼저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을 주실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협력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약속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제하여야 할 마음을 제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드러운 마음을 갖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결과를 주실 것입니다. 19절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빌 2:5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벧전 1:18에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인간의 마음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의지 굳은 마음, 온유한 마음, 자비한 마음, 의로운 마음, 부드러운 마음…… 이런 좋은 마음도 있고 또 미워하는 마음, 가벼운 마음, 완악한 마음, 차가운 마음, 강퍅한 마음 등…… 나쁜 마음도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1) 온유한 마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고기와 같은 마음이라 번역할 수 있습니다. 피가 통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 5:11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6:11에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갈 5:23에 성령의 열매중 하나가 온유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온유는 약한 것을 가리우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가림대가 아닙니다. 얼마든지 강함이 있고 실력행사를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나 밖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수심이 깊은 물은 요동이 없는 것 같이 든든함이 있는 마음입니다. 조급하지 아니하고 경솔하지 아니하고 포학하지 아니하고 강퍅하지 아니하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유화하며 따뜻하여 강하면서도 보들보들합니다. 그러므로 온유는 약자의 도덕이 아니라 강자의 도덕입니다. 이런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축복의 사람입니다. 현대인은 온유하지 못한 것이 큰 결점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경쟁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기계에 쫓기는 사이에 따뜻한 정의 사람은 사라지고 극히 사무적인 인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속이고 속이는 사이에 피차에 불신의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소유하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온유한 주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그를 따르며 그를 배우는 길 밖에 없습니다. (2) 넓은 마음입니다. 시 119:32에 “주께서 내마음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 가리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좁은 마음을 넓혀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이 딛고선 대지는 광활한대 인간의 마음은 바늘귀 같이 좁은 것임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조금만 더 넓으면 이해되고 해결될 문제들이 마음이 좁은 탓으로 꾀이는 일들을 많이 봅니다. 세례 요한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주고 있을 때 그의 제자들이 자기를 떠나 다른 이에게로 간다는 뜻은 분명 마음 상하는 일이었으나 그는 오히려 기뻐하면서 요3:30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중국 송나라의 학자 장자가 임종을 할 때 제자들과 주고 받은 얘기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장례식을 성대히 거행하겠다고 제안하자 장자는 “하늘과 땅이 나의 널(시체넣는 관)이요 해와 달과 별은 보배 그릇이요 만물은 장례식에 모인 조객인 것이다. 이 이상의 장례식이 없을 터이니 나의 시신을 산에 버려두기를 바란다.” 이 말을 제자들이 듣고 “그렇게 되면 선생님의 몸을 까마귀와 솔개가 먹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니 장자가 답하기를 “땅 위에 버려 두어 새에게 먹히나 땅 속에 뭍혀서 벌레에게 먹히나 마찬가지가 아니냐”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의 마음 의 폭이 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넓은 마음입니다. 넓은 마음은 원수를 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관용심과 이해심이 풍부하여 오른빰을 맞고 왼편빰까지 돌려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원수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창조한 우주보다 더 넓은 마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그 넓은 마음 그 부드러운 마음을 배워야겠습니다. (3) 수정의 가능성이 있는 마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수정이 가능합니다. 딱딱한 돌은 반죽을 할 수 없습니다. 부드러운 진흙은 물을 주어 반죽을 쉽게 할 수 있으므로 토기장이는 원하는대로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목이 곧고 완악한 마음은 좀체로 고쳐지지를 않습니다. 스데반이 순교직전에 행한 설교중에 행 7:51에 “목이 곧 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목이 곧고 완악한 사람들은 성령을 거스리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이 사람들은 완악한사람들이라 설교에 감화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강퍅해져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이 부드러웠으면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 좋은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렘 26:13에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마음 바탕이 부드러워야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고치시려 하실 때 쉽게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사 주님 앞에 겸손 하십시다. 우리들의 마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굳어져 갈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아집과 세상풍조를 본받아 굳어진 길바닥 같이 수정의 여지가 안보일 때가 있음을 자각합니다. 진리에 순응하여 우리 자신들을 주께 맡겨 주님의 형상대로 주물러 재창조하실 수 있도록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