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모압군 섬멸 (왕하 03:21-27)

첨부 1


모압 사람들이 아침 해의 갉은 빚이 비치는 골짜기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들은 물을 피로 잘못 보고 살벌한 싸움이 동맹국들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생각에 의하여 지나치게 대담하게 되었고, 그들은 무모하게 적진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비참하게 패하였습니다. 그 패배는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 침략군들은 그들의 모든 땅을 빼앗고 메사의 수도 키르하셋(오늘의 Kgrak)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고의로 파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사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18절).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포위를 당한 메사 왕은 처음에는 그의 자연적인 맹우인 북쪽의 앗수루 왕과 합세하기 위하여 공격자들의 전선을 뚫고 나가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까지도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잔인한 미신의 행위로서 도피처를 찾았습니다. 때때로 히브리 사람들까지도 포함하여 고대의 많은 민족들과 같이 모압 사람들은 제물을 바칠 수 있는 모든 제사 가운데서 자신의 아이, 특히 맏아들을 드리는 제사가 가장 완벽하고 효과적이라고 믿었습니다. 보통 때는 인간의 제물을 드리지 않는 비교적 진보된 사람들도 모든 다른 의지가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때에는 그러한 충동을 받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메사는 그의 맏아들이며 지정된 계승자를 그 포위한 군대가 다 보는 가운데 성벽 위에서 완전한 번제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준 영향은 파멸적이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 가운데서 일반 민중들의 종교는 본질적으로 이웃 나라들의 종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던지 우상 숭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맹군들의 군인들이 이 끔찍한 제사를 봤을 때 그들 사이에 공포가 생겨 그들의 나라로 각각 도망하여 간 것입니다. 우리의 성서가 사람의 제사, 그것도 이방인의 신인 모압의 그모스에게 드리는 제사의 효과에 대한 신앙을 확증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명기의 역사가들의 정직성과 그들의 재료들을 사용함에 있어서의 성실성의 또 하나의 뚜렷한 한 조각의 증거입니다. 그들은 통속신학의 표현으로 주어진 이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포함시켰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분명히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 이스라엘이 모압을 이김(21-25절) 이 전쟁에서 모압의 패전 원인은 그들의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실패케 하실 때에는 그들의 판단력도 어두워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엘리사로 말미암아 약속한 것들, 곧 물과 승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내려지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모든 물, 궁창 아래 있거나 위에 있는 모든 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일시에 풍부한 물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그들에게 두 가지 역활을 하였습니다. (1) 첫째, 그 물은 죽음 일보 직전에 있던 동맹군들을 살려냈습니다(20절). 그리고 괄목할만한 일은 이 구원이 명백한 시기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시기, 즉 예루살렘 제단 위에서 “아침 소제가 드려지는 그 때”에 맞추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사는 그 때를 자기의 “기도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성전 예배와 교제를 가지고 있으며 저의 제사(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이 무시하고 있던 매일의 제사 시각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 때를 자비의 시간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를 바로 “아침 소제 때”에 응답하셨습니다(단 9:2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우신 제도들을 인정하시기 때문에 그 때에 맞춰서 응답 하시는 것입니다. (2) 둘째, 그 물은 적을 기만시켰습니다. 적들은 이스라엘이 파멸하여, 곧 승리할 줄로 생각 하였습니다. 모압군은 동맹군이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갑옷 입을만한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변방 지역에 배치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에돔 광야로 거쳐 오는 동안 지칠대로 지친 이스라엘 군대야 쉽사리 해치울 수 있다고 자만하면서 그들에게 멋진 환영을 해 줄 작정이었습니다(21절). 1)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망상에 완전히 속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자기 기만적 단계를 살펴봅시다. 그들은 이스라엘군이 주둔해 있는 골짜기에 물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이 피라고 착각하게 되었습니다(22절). 그 이유는 그 계곡이 마른 골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그것이 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계곡 위에 비치었을 때 그 빚 때문에 하늘이 붉어 있었고 비가 올듯한 날씨 같았습니다(마 16:3). 이것 때문에 그물이 붉게 보였고 그 환상은 “이것은 피다”라는 생각을 확신하게끔 만들었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은 그들이 스스로 속도록 버려두신 것입니다. 그들의 진영에 이렇게 피가 가득하다련 “그 왕들은 필경 쓰러졌을 것이며 그들은 서로 쳐 죽였을 것이다(23절).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그들을 죽였겠느냐”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이 서로 쳐서 죽였다면 이제 노획물을 나눠 가지는 것 밖에는 우리로서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이 남들보다 더 현명하고 좋은 생각을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사실로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멸망 당할 자들은 먼저 속임을 당하는 법입니다. 2) 이리하여 그들은 속고 자기들의 멸망을 재촉했습니다. 그들은 무작정 이스라엘 진영으로 나아갔습니다. 약탈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늦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들은 엘리사에게 승리를 확신케 해 주는 용기를 얻어 맹렬히 나아가 그들을 치고 본국으로 쫓았습니다(24절). 그리고는 그 땅까지도 황무하게 하고 도성들을 파괴하며 전답을 못쓰게 했고 우물을 막고 나무를 베어 넘겼습니다. 단지 왕성만은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위의 성곽은 크게 손상시켰습니다. 이것은 모압이 이스라엘을 거역하여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2. 모압 왕의 만행(26-27절) 본문은 모압 왕은 자신들이 완전히 포위되었고, 자기의 수도는 그들의 손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극한 상황을 보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그는 대담하고 용감스런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700명을 뽑아서 그들과 함께 에돔 왕의 참호 속으로 도망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에돔 왕은 돈을 받고 고용된 용병이니 자기가 맹공격을 하면 크게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곳을 탈주로로 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에돔 왕은 그에게는 적수였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모압 왕은 물러나게 되었습니다(26절). (2) 이 시도가 실패하자 그는 잔인하고 야만스런 짓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들, 그것도 왕위를 물려받을 장자(그 아들은 그를 위해 서나 그 백성들에게 가장 귀중한 존재였다.)를 취하여 27절에 보면 “성 위에서 그를 번제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에 대하여 27절 하반절에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이 임하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크게 통분함”이란 말은 “큰 진노”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가증한 일을 행하고, 범죄한 자는 모압 왕인데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까요 여기에 난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난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모압 왕이 자기의 맏아들을 산채로 자신의 신에게 번제로 드린 사건 후에 이스라엘이 어떤 과오를 범한 일이 있어서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하던 전세가 불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자기들의 가장 귀중한 것이 그 신들에게 더 잘 열납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제사를 드릴 때는 그 신들을 위해서 자녀들을 불살라 드렸던 것입니다. 모압 왕은 항복을 하기 보다도 차라리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불사하리라는 결심을 알게 하며, 자기의 성과 생명을 얼마나 값비싼 댓가인지 보여주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 부하들이 적군을 극도로 미위하고 그들에게 대하여 분노하도록 만들려 했습니다. 실로 그것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결국 그가 비상수단을 다하여 “이스라엘에 곧 분노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포위를 풀고 돌아갔습니다. 부드럽고 관대한 사람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남을 극도로 괴롭게 하거나 절망케 하는 짓은 행치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