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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체의 사명 (고전 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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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국 은행의 여자 행원 알아두기 제 1장, 제 1조에 보면 “당신은 이제 은행원이 되셨습니다. 은행이라는 큰 기계 중에 하나의 톱니바퀴가 된 것입니다. 보잘것없는 작은 톱니가 될 지 모르나 톱니바퀴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 톱니바퀴 하나가 빠져도 전체의 일은 더디거나 혹 정지되거나 합니다. 꼭 맞는 톱니바퀴가 됩시다. 잘 맞지 않는 톱니바귀는 번거로운 소리를 낼 뿐더러 전체의 능률을 저하시킵니다.” 그리고 제 2조에는 “은행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하루하루를 부드럽게 돌아가는 기계입니다. 이 기계가 고장없이 굴러가는 데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규칙을 지키고 그 외 직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자유 행동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고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은행의 책임 한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계약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일의 옳고 그른 것은 뒤로 미루고 이와 같은 것은 한 은행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처하여 살고 있는 사회 전체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일정한 기구 안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간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한 개성을 지닌 존재로서 하나의 톱니 바퀴와도 같다고 할 것입니다. 이 은행은 자기 직원들이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의 하루하루를 부드럽게 돌아가는 기계입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이 은행이라고 하는 사회의 생명없는 기계는 톱니바퀴가 고장이 나면 아주 쉽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생명이 있는 톱니바퀴라고 할 경우에는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 인생은 단 한번뿐인 인생으로 아무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몇십 억이라는 인간이 있어도 나라는 인간은 오직 하나뿐으로서 절대적으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곧 “나” 라는 인간은 대용품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진실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있는 사회에 자무도 대신할 수 없는 톱니바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 말씀 속에서 오늘의 교회의 무기력한 원인을 봅니다. 신앙, 축복, 천국도 나 하나만을 위하여 구하기 때문에,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 리 없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존재할 리 없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을 추구하기 위해 온 것뿐이기에 교회 전체는 활기차지 못하고 이기주의 속에서 무기력하게 침체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리 폭발사고(78년 1월)에 비유해 보고자 합니다. 이 대형사고는 우리에게 화약 하나가 잘못 발화되면 자신을 포함한 수천 명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과실로 화약을 실은 기차가 폭발하여 많은 피해를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나와 너라는 관계가 올바로 정립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와 너의 관계가 맺어져서 생기는 운명적인 결합체입니다. 이렇게 인간이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산다는 것은 다른 이와 관계지어져서 서로 기대어 어울려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고립체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라는 것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오늘의 본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지체를 가진 한 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눈과 손과 발 그리고 그밖에 몸에 있는 다른 지체들이 의논을 하였습니다. 자신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먹는데 밥집(위)만은 가만히 놀고 먹으니 이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히 동맹 파업하기로 하였습니다. 밥통(위)을 좀 골려줄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굶었습니다. 위에게 한번 혼나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눈이 잘보이지 않고 헛그림자가 보입니다. 귀가 멍멍합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몸은 식은 땀이 줄줄 납니다. 다리는 휘청휘청합니다. 눈은 손을 향하여, 귀는 다리를 향하여, 다리는 손을 향하여, 각각 자신의 이상한 증세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위가 비로소 오랜 침묵을 깨뜨리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야말로 다른 이들이 일할 때나, 쉴 때나 그 어느 순간도 쉬지 않고 활동하여 각 기관에 영양을 골고루 나누어 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기관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모두가 깨달으면서 제각기 다시 활동하여 건강을 회복하고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먼저 톱니바퀴 인생을 소개한바 있는데 생명 없는 기계의 톱니바퀴는 오래 사용하면 닳고 못쓰게 되지만 생명있는 기관의 톱니바퀴는 이와는 정반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무디어져서 폐품이 되는가 하면, 사용하면 할수록 찬란하고 또 능률을 더욱 내게 됩니다. 자동차가 폐차되는 것처럼 그 인생이 폐품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전 10:10에 “무딘 철 연장 날은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고 전도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한 자가 가난한 자의 곁에서, 배부른 자가 배고픈 자의 곁에서, 건강한 자가 병든 자의 곁에서 홀로 만족하며 나눔의 책임을 자각하지 않는 생활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시기함으로 사랑하여야 할 동생을 죽여 땅 속에 묻고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물으심에 형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무책임하게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처럼 또한 “대체 무슨 나쁜 일을 하였기에 그러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허물을 찾지 못했소” 하면서 예수의 무죄함을 인정하면서도 총독이란 지위보존 때문에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그대들이 알아서 하오” 하며 무책임하게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준 빌라도와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책임하고 무관심한일이 우리에게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위기는, 그리고 국가의 위기는 또한 그 땅에 처한 교회 자체의 위기인 것입니다. 곧 교회는 이 세상의 타락과 곤궁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들의 자손들, 우리들의 행위의 계승자가 될, 오고 가는 장래의 세대를 위하여 오늘에 처한 우리들의 책임은 실로 중대한 것입니다. 주 안에 몸은 하나요 지체는 여럿입니다. 그러나 서로 합동하여 주 앞에 충성할 때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헌신이 생기고 이 사회와 국가는 올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주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잘 감당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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